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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의 일상도 프로답게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이 말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성실히 책임감있게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끔 이 당연한 상식 앞에서 언론의 지나친 찬사가 쏟아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는 하루 아침에 사회적 영웅을 만든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에코는 이러한 사회와 언론을 꼬집는다.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영웅이 필요한 사회는 조용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일반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나의 말이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비판이다. 쉽게 말해 ‘프로 정신‘의 부족, 진정한 프로를 찾기 힘든 사회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떠나서 내 주변에서도 우리는 보통 이 영웅적 인물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찾으려 애쓰는 면이 있다. 이 험난한 시간을 벗어나게 할 그 누군가를 늘 그리워한다. 심지어 쓰레기 처리 문제 하나도 누군가의 해결을 기다린다. 사소한 것 하나지만, 그 누군가가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 같다. 각자의 쓰레기는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결코, 누군가가 해결할 수 없다. 내 손을 벗어나 누군가의 몫으로 떠 넘기는 식의 해결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넘치는 사회는 나의 잘못된 의식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에 자신을 맡기고 운전대를 놓고 있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내가 정신을 차릴 때가 있다. 책장을 넘길 때 갑자기 불편해 지거나 도끼 정도는 아니지만, 돌 맞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멈추고 나를 다시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누군가 아주 보란 듯이 올려 놓은 일회용 커피 용기를 보고 불편했던 기분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보통은 성격상 내가 그냥 치우고 만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남이 먹다 남은 컵을 만지는 것조차 꺼림직해 만지기 싫어 속으로 욕만 진탕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을읽다가 이 소제목을 보면서 이것 저것 연결고리가 만들어 진 것이다. 또 궁시렁거리면서 온라인 나의 서재에 풀고 있다. 책 후기도 아닌 개인적인 궁시렁거림
이 이 책을 계기로 제대로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에코의 언급처럼 이미 우리는 역사 속에서 증명된 불행한 사건,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담긴 이념을 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를 때 최악의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책임과 의무는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마치 대단한 의식을 안고 무언가 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나의 의식이다.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기본이고 상식이다. 일상도 프로답게 살아야한다.

삼일절이라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했다. 주절거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하루를 넘겨버렸다. 불편해진 마음으로 흥분을 퍼내고 있었더니 시간이...가끔, 책 읽으면서도 나는 열을 낸다.
여튼, 우리가 영웅을 찬사하고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에 대해 지금의 사회가 어떠한지를 생각해봐야 될 것이라는 에코의 말이 더 와닿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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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1 0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에코!
저도 빨리 이 책 봐야 하는데 줄 서 있는 책 본다고 미루고만 있네요. 삼일절은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지만 쉬는 날이기도 하죠. 편안한 휴일 되세요.

scott 2021-03-01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일절날에 읽는 에코옹이 말하는 미친세상을 이해하는법 ! 쵝오의 선택이네요 책커버 넘 예뻐서 뚫어지도록 봄 ㅋㅋ 빨간색 컵 커피향에서 고소한 향이~날것 같네요 전 파란색컵에 먹는데 빨간색에 담긴 커피가 더 맛나보임 ,이쁜호빵님 3월 월요일 휴일 평안하게 ^ㅎ^
 

나에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한눈팔기다




눈 덮힌 하얀색의 세상

˝세상은 그 많은 눈의 무게에 눌려 축 처져 있었다.˝

굽어 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주 많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한눈을 팔게 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도둑>은 그런 이야기다.

죽음의 신에게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한눈팔기‘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 곳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영혼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가끔 죽음의 신에게도 견딜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냉혹하고 서늘하고 온통 어둠으로 둘러싸인 죽음의 신, 이 책은 적어도 그런 생각을 일반화하지는 않았다.

책의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독일이다. 나치 독일의 어느 한 도시,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  그 속에 사는 독일인의 일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의 참혹한 면을 상상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전쟁 속의 피해자는 어느 한쪽에만 생기는 게 아니라는 또 한 번의 진실에 맞닥뜨리는 책이었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책은 2권이라는 분량 만큼 무겁다면 충분히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 마커스 주삭은 지나치게 이야기를 무겁게 몰고 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책도둑인 소녀의 행동보다 어른들의 세상은 더 나빴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은 오히려 세상을 도둑질 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현실에 대한 모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 앞에 일어나는 누군가의 불행과 아픔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대가 주는 공포와 처절한 상황은 아이들의 현실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소녀는  말의 의미를 배우면서 말의 힘을 느낀다. 또 그런 말의 힘을 원망한다.


˝인간 존재의 모순됨의 또 다른 증거였다. 이만큼의 선이 있으면,  이 만큼의 악이 있다. 그냥 물만 붓고 섞어 주어라.˝ p243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음의 신은 소녀가 그녀의 양부모가 될 사람들을 향해 가고 있는 기차 속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기억을 떠올린다. 동생의 죽음, 이 비극앞에서 죽음의 신과 소녀의 첫 만남은 이루어졌다. 죽음의 서늘함을 소녀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소녀는 처음으로 <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도둑질한다. 리젤 메밍거라고 부르는 이 소녀를 죽음의 신은 ‘책도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죽음의 신의 장점인 ‘한눈 팔기‘는 이 소녀에서 시작된 것이다. 소녀와 죽음의 신의 교차는 한 번이 아니었다. 죽음의 신은 소녀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책을 수백 번이나 읽으면서  그 아이가 본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살아남아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를 채워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죽음의 신의 호기심은 소녀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죽음의 신에게 소녀의 존재는 가치있는 기억으로 그에게 영원히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남은 기억을 꺼내어 죽음의 신은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뮌헨의 도시 외곽 지역 힘멜이라는 곳에서 양부모랑 살게 된다. 동생과 소녀를 맡는 대신 이들 부부는 약간의 수당을 받을 터였지만, 동생은 오는 도중에 죽음을 맞이 해야만 했다. 결국 소녀만 양부모 밑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

양부모 한스 후버만과 로자 후버만

한스 후버만은 제 1차 세계대전 부대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살아 남았다. 그는 전투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년의 시간에서도 죽음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운이 제법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소장품이 있었다. 아코디언이다. 전쟁 내내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아코디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한 친구의 유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게 아코디언을 배우기도 했다. 에릭 판덴부르크의 아코디언은 한스 후버만의 친구이자 삶의 의미였다. 시간이 지나 그의 아들 막스를 도와야 하는 의무감도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스에게 막스는 책임이자 의무였다. 그렇게 유대인 막스는 한스의 집 지하실에서 오랜 시간 보호를 받게 된다.
한스 후버만의 일은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면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공정성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에릭 판덴부르크는 유대인 독일인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였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는 히틀러를 따르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기에 독일인이지만 히틀러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  참혹하고 냉정한 전쟁 속에서도 그는 따뜻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쟁 말 독인이 전세에 밀려 위기에 빠졌을 때 한스에게 잠시 호황이 찾아왔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의 행복은 짧은 순간으로 사라진다.

전쟁의 아픔은 어느 한 쪽의 일상도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전쟁은 일반인에게 무방비 상태에 놓여지고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하지만 유대인과 독일인 어린 리젤의 불행한 시간에서 그래도 리젤은 유대인이 되는 것보다 나았다는 점이다. 유대인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다. 사람도 아니었다. 당시 유대인은 ‘유대인‘이었다. 독일인들은 그래도 살아갔다.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책은 어느 한쪽도 벗어날 수 없는 불행에서 이유없이 자신들의 삶이 무참히 짓밟혀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 속에서 어린 10대의 눈은 세상의 어떤 부조리함과 부당함을 발견한다. 이해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기차 안에서 목격한 동생의 죽음과 친엄마와의 헤어짐은 어린 소녀에게 충격이었고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밤마다 악몽으로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미쳐있는 세상에서 불안한 어린 소녀를 양아버지 한스가 지켰다.

소녀의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은 위기 속에서 강한 힘을 발하는 인물이다. 책의 표현처럼 ˝매일이 절뚝절뚝 지나갔다.˝
그런 시간에서 로자는 일의 순서를 제대로 인지하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양부모 한스와 로자는 히틀러를 지지하지 않는 10%의 독일인이다. 그래서 나치당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순수독일인 후버만 가족은 지하실에 유대인 막스를 숨겨주는 엄청난 모험을 한다.


리젤의 책도둑

책을 훔치는 것 리젤의 행동은 그래도 암묵적인 허락이 있었다. 그래서 진정으로 훔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달랐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도둑은 어른들이었다. 부자 나치들 그리고 군대였던 것이다. 그들은 내 아버지, 가족을 데려가는 가장 나쁜 도둑이었다.


힘멜의 거리가 폭탄과 함께 사라졌다.
소녀가 사랑한 친구 루디, 후버만 가족 그렇게 최고의 영혼들이 사라졌다.유일한 생존자 리젤은 최후의 한 명으로 살아 남는다.
굽어보는 자(죽음의 신) 조차도 이 상황이 눈물나게 슬프다.
남겨진 리젤의 아픔을 그저 바라만 봐야하는 안타까움에 더 슬퍼한다.
이제 리젤에게 말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세상의 가장 추악한 힘을 담고 있는 저주스러운 말이다. 글을 읽을 수 없었던 리젤에게 말이 주는 힘을 느끼게 했던 책 속의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리젤은 그 능력을 보았다. 하지만 사랑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던 날 말의 가혹함을 알게 되었다. 지젤은 그런 말을 증오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말이라는 것은 없었어야 한다고.

제2차 세계 대전의 하늘은 회색 빛의 하늘로 채워졌다.
찬란하게 빛을 발하던 태양도 푸르름을 자랑하던 자연도 다른 쪽을 보고 있었던 것처럼 세상은 온통 한 가지색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죽음의 신은 세상을 굽어본다. 하지만 신의 심장도 그 시간은 객관적일 수 없었다. 한 소녀의 아름다운 이야기, 회색빛 세상에서 그래도 인간적인 영혼을 보았던 죽음의 신은 자신의 장점인 한눈팔기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지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실 하나
오랫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젊은이들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마지막 덧
정말 죽음의 신이 존재한다면,  전쟁 중 그는 업무과다로 한계에 달할지도 모르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죽음의 신도 피해갈 수 없는 한계는 전시에 더 극으로 치닫지 않았을까
책의 앞 부분에 죽음의 신을 묘사하는데, 낫이 아닌 빗자루를 들고 있다는 부분이 생각났다. 갑작스럽게 빗자루를 든 죽음의 신이 상상되었다. 인간적인 죽음의 신 모습에 잠시 미소짓게 된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영화로 책도둑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이 여운을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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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28 0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뿐 호빵님 책도둑 완독 추카! 이책의 저자 부모님이 실제 겪은(호주로 이민오기전 고향 독일에서 목격함) 걸 작가가 쬐끔 픽션 허구를 섞어서 (아마도 ‘죽음의 신‘ )장면은 썼다고 합니다. 영화도 좋아요 아이들 넘 연기 잘하고 양부모의 연기도 잊을수가 없어요 ^.^

이뿐호빵 2021-02-28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먼저 감사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차분하고 잔잔하게 풀어내는 작가가 좋았습니다

늘 풍부하고 즐거운 스콧님과의 인연에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2-28 03: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잘 안나는데 이뿐호빵님 덕분에 다시 기억을 휘리릭 돌려봤습니다. ^^
 
빨강의 역사 - 인류는 왜 빨강에 열광하는가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선일 옮김 / 미술문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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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의 빨강

 

 

가장 원초적인 색, 빨강

 

<파랑의 역사>가 천천히 떠올라 뒷심을 자랑하는 인내의 역사라면, <빨강의 역사>는 열정적인 강렬함으로 극과 극을 오고 가는 역동적인 역사다. 튀지 않게 조용히 지금까지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 파랑에 비해, 빨강의 파란만장한 시간은 우리의 삶을 연상시킨다. 인생무상과 새옹지마. 빨강의 상징성은 날개 없이 추락하고 급변한다. 시대별 변화무쌍함에 과히 멀미가 날 정도다.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책의 자료에서도 <파랑의 역사>보다 압도적이다. 그래서 볼 것도 많고 흥미롭다. 신화적 이야기, 에피소드도 있어 책은 첫 부분부터 빠르게 흡인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파랑의 역사>를 읽은 후라 <빨강의 역사>는 그저 얻어 가는 부분이 제법 많아 더 가볍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늦은 후기에 뒷북치는 기분은 감출 수가 없다. 잠깐 푸념을 하자면, 이렇게 올해도 나의 다짐은 1월부터 무너졌다는 것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빨강의 역사는 다채롭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익숙한 자료와 로마 그리스 신화 이야기 속에 담긴 빨강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신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갔다. 여러 신의 상징물(아폴로, 마르스, 케레스, 메르쿠리우스)인 수탉은 예언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수탉은 로마인의 숭배 대상이었는데, 볏의 색은 빨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광과 승리를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빨강의 위치는 사람의 경우에서는 제외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했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졌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모욕적인 욕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다.

 


원초의 색 빨강은 불과 피를 연상케 한다. 빨강은 이처럼 생명의 색이었다. 그리고 과거 신성함과 지배적인 상징성을 표현하는 살아있는 색이었다. 성서에서 그리스도의 색으로 포도나무의 피는 포도주다. 고대 로마 화가들은 다른 어떤 색보다 다양한 색조의 빨강을 사용하였다. 로마 염료의 명성을 드높인 염료는 자주 조개다. 로마의 자주 조개 염료로 염색한 고품질의 모직물은 15 ~20배나 높은 가격을 받았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기행각은 당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동로마 시대 황제 직할의 사업으로 몇몇 특정 지역에서만 독점적으로 수확과 염료 제조 등을 할 수 있게 규제했다. 자주 조개 염료는 곧 황실 가족에게만 허용되었고 귀족들의 특권이 되었다.

 


성서에서 주조를 이루고 높이 평가되는 빨강 그리고 하양과 검정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꼬집었다. 성서 속 다양한 의미의 색채는 시뻘건 지옥과 어둠의 검정으로 하양의 순수와 순결이라는 단순한 상징만 남긴 잘못된 편견을 말하였다. 그리고 근대의 흑백 대비는 고대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색의 대립에서도 근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색의 이야기는 그 사회를 그대로 담고 있다. 빨강의 상징성은 일상 언어의 색을 나타내는 어휘뿐만 아니라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

금기를 어기고 모든 것을 건 카이사르는 레드 라인을 넘었다. 이는 로마 제국의 앞날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불경한 행동을 의미한다. ‘레드 라인금지된 경계선을 넘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루비콘 강의 지리적 의미보다 강의 상징성은 불그스름한 색의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카이사르의 시간을 담고 있다. 이 강을 건너면서 이야기한 카이사르의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도 함께 말이다. 빨강은 이렇게 역사를 바꾸는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색은 단지 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었다. 색은 추상적이고 색소와 염료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인정받아 개념화되었다는 점이다. 중세 교부들의 빨강에서도 풍요와 생명의 긍정적인 면과 인류 타락의 상징인 부정적인 면은 극을 달렸다. 파랑의 잔잔한 시간에 반해 빨강의 시간은 몰아치는 파도 같다. 빨강은 귀족층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성적인 색으로 남성적인 색으로 그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기도 하였다. 그래서 빨강의 이야기는 지루할 수 없는 다양함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용맹스럽게 때로는 잔인하게 또 때로는 영예로운 이야기로 말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빨강은 관능적이면서도 따뜻하다. 우아함과 매혹적인 빨강은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무언가를 욕망하는 색이기도 하다. 빨간 열매는 사랑의 상징물이 되었다. 특히 체리는 젊은이들이 사랑을 고백할 때 쓰였으며, 체리는 젊음이며 봄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빨강의 역사도 교회에선 속임수와 죄악의 상징성을 지니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세 채색 화가들의 그림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빨강의 옷을 입혔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로 붉은색 드레스나 망토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빨강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창녀라는 예전의 신분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제 독보적인 빨강의 위치는 막강한 경쟁자를 만나면서 무너지게 된다.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을 만큼 빨강의 시대는 화려했다. 하지만 파랑의 등장은 이 모든 것을 역전시킨다. <파랑의 역사>에서 이미 읽었지만, 12세기 중엽부터 13세기 초 사회적, 예술적, 종교적 삶의 모든 분야에서 파랑의 가치 상승은 빨강의 영광을 과거의 뒤안길로 보내 버렸다. 이렇게 파랑의 혁명은 시작되고 역사적인 신분 상승과 함께 파랑의 위치는 현대까지 이어졌다. 빨강과 파랑의 전쟁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염색업자들의 경쟁과 그들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사회적인 갈등이 생겨났다.

 


중세 봉건 시대의 빨강의 독보적 위치는 이제 배척당하고 추락한다. 이제 빨강은 모든 색 중 가장 추한 색 중의 하나로 포함되기도 한다. 흑사병 이후 빨강의 위기는 사치 단속령과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의한 색의 새로운 체제에서 버려짐으로 더 심해진다. 그리고 과학의 진보와 아이작 뉴턴의 스펙트럼 발견으로 빨강의 색의 단계는 점점 더 한쪽 끝으로 밀려났다. 빨강은 이제 지옥 불에서 악의 상징으로 남는다. 빨강과 악마는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아는 체스에서 빨강 말과 흰색 말의 대립은 체스가 유럽으로 넘어오면서 원래 빨강과 검정의 대비에서 바뀐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의 빨강은 죄의 색인 동시에 징벌의 색이었다. 그리고 낙인의 대명사 빨강은 글자에서도 줄을 긋는 것에서 상징성을 더했다. 이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금지에 관련된 빨강의 위치다.



화가의 팔레트에서 빨강은 매우 다양한 색조로 변조되었고 섬세하게 다뤄졌다. 17세기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색의 전환기였다. 이제 색의 영역에 과학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색은 곧 빛이며, 다양한 환경에서 빛은 물리적 변화를 겪으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제 색은 제어 가능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은 화가의 팔레트에서 그들의 호기심은 부풀어 올랐다. 18세기는 화려한 빛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밝고 선명한 색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유행에서 빠진 색이 있다. 바로 빨강이다. 18세기는 파랑의 시대였다. 빨강은 힘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빨강의 여러 색조 중 주목받지 못했던 색조인 분홍의 위상이 달라진다. 당시까지 분홍 색조를 명명하던 이름이 없었다. 고유의 이름이 없던 색 분홍은 아름답고 우아한 색이었다. 그리고 당시까지 색 배열에서 분홍은 빨강과 흰색의 조합이 아니었다. 분홍은 노랑 계열이었다는 점이다. 노랑의 연하고 우아한 버전으로 정의되었다. 18세기에 중엽에는 분홍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당시 분홍은 여자들의 색이 아니라 남자들의 색이었다. 여성화된 분홍으로 고착된 시기는 1930년대 이후로 그리고 1970년 바비인형이 분홍 옷을 입고 나타남으로써 여자아이들의 놀이와 함께 더 고착되었다.

 


18세기 귀족들은 투명한 하얀 얼굴 푸른색 피정맥이 보일 정도의 얼굴빛을 띠고 백연을 두껍게 발라 주름을 감추고 입술과 뺨에는 붉은색을 칠하지 않고서 나타나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프랑스어 루즈(rouge)는 당시 화장품을 가리키는 단어처럼 쓰였다. 프랑스 궁정의 남녀 모두가 사람들 앞에서 화장품을 휴대하여 덧발랐다. 화장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필수라는 사실에 별 놀랍지도 않지만, 비슷한 모습들의 오버랩은 늘 아이러니하다. 화장의 색조 계에서 빨강은 독보적이다. 19세기 조명과 새로운 사회에 맞춘 간결하고 세련된 화장법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빨강은 사회 질서 밖에서 예술가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색이 되었다. 진한 화장과 빨강의 상징성은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추었다. 빨강은 지금도 여전히 화장품 회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붉은 입술과 불그스름한 뺨은 젊음의 상징이고 건강의 상징이다.

 



1960년대 이후 색은 자유를 맞이한다. 그리고 빨강의 상징체계는 더 다양해진다. 정치적 색으로 빨강의 새로운 의미가 부가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 탄생한 정치적 빨강은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끊임없이 투쟁하였다. 20세기에는 국제적으로 다시 위상을 획득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급진파, 혁명파 등의 상징인 빨강은 이념의 색으로 강렬하게 남았다. 빨강은 유난히 정치적인 색이다. 그리고 분홍은 온건한 노선의 급진파의 색이 되었다. 빨강의 역사가 더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은 정치색이 짙어서 일지도 모른다. 유혈 사태를 연상케 하는 급진적인 색 빨강은 이렇게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 잡았다. 위험을 경고하는 빨강은 평화적인 상징이다. 빨강은 반항적이거나 폭력적인 색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경고를 알리는 신호였던 빨강은 구조를 위한 색이었다. 하지만 1791717일 혁명의 날, 분노한 백성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빨강 깃발은 억압받고 분노한 민중의 깃발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던 빨강은 전제군주제에 저항하는 투쟁의 색이기도 하였다.

 

 

시대를 지나면서 한 가지 사고의 흐름은 색의 다양한 상징성을 박탈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빨강의 상징성처럼 요즘에는 녹색이 그 뒤를 밟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열렬한 생태운동가들과 녹색은 또 다른 빨강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환원주의적 태도가 색의 상징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휩쓸림에서 살아남기는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한 가지 개념이 아니라 여러 개념의 다양한 표현을 가질 수 있는 색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일 것이다. 모두가 획일화된 사고방식으로 흘러갈 때, 그 사회는 극으로 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성격에 따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회, 색의 변화무쌍한 상징성을 허락하는 사회를 <빨강의 역사>를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인 색 이외에도 많은 상징성을 내포하는 빨강은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색이다. 금지와 경고를 알리는 빨강은 일상생활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존재다. 위험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의 빨강은 다소 금지의 의미인 부정적인 개념으로 많이 쓰이지만, 분명한 건 우리를 보호하는 색이다. 공포를 의미하는 빨강은 때론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지만, 이는 위험한 색만은 아니란 것이다. 무엇보다 빨강의 강렬함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색이다. 그래서 광고나 홍보에서 빠질 수 없는 색이다. 매우 감각적인 색으로 힘이 있는 색이다. 기쁨과 축제의 색, 공식 석상에서 레드 카펫은 대중을 압도하는 색이다. 빨강의 장엄함과 위엄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극과 극을 잇는 빨강의 극적인 역사는 역동적이고 파란만장하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위치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색이다. 그렇게 활력을 주는 빨강은 우리에게 자양강장제 같은 색이다. 빨강이 취향적으로 선호하는 색이 아닐지라도 분명 빨강은 우리에게 힘을 발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빨강의 역사>는 감당하기 무거울 수 있는 버거운 역사다. 하지만 파랑이든 빨강이든 우리의 삶에서 함께한 이들의 역사가 그 자신만의 역사가 아니란 점이다. 우리의 역사다. 그러기에 버겁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감당해야 하고 일상에서 나와 함께한 모든 것이 역사의 흔적이라 생각하면 빨강의 역사도 나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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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6 0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빨간색에 이토록 깊은 역사와의미가 있다니 정말 놀랍네요!ㅎ 그리고생각해보니 우리 민족도 빨강에 대해 상처, 오해, 낙인등이 찍혀있는듯 하여 서글프기도 하구요! 덕분에 주말 아침에 너무 좋은글 읽었어요! 즐건 휴일되십시요!ㅎ
 


 

모든 색에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책을 읽다 내 손에 쥔 책의 표지가 파란색이었고, 고개를 든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책들의 표지가 파란색이 많이 쓰였다는 것이었다. 무심코 이 파란색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쓸데없이 시작된 의지는 파란색에 관한 책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우연이지만, 필연적으로 내 손에 <파랑의 역사>가 쥐어졌다. 그리고 나에게 또 다른 색에 관한 책이 자연히 따라왔다. 또 한 권의 책 <빨강의 역사>는 이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파랑과 빨강의 대비, 색과 함께 지나온 과거는 또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증 유발로 책장을 넘겼다.

 

파랑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색채와 역사,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야는 회화 분야일 것이다. 색채 그러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그림들과 화가였고, 짧은 시간 대부분의 생각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파란색 계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파란색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대표적으로 좋아하는 색 중의 하나다. 무엇보다 3월의 탄생석 아쿠아마린의 영롱한 푸른색과 나의 연관성은 파란색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만든다. 파란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파랑은 매우 친숙하다. 그리고 시원하고 평화스러운 색으로 인식된다. 또한, 중립적이고 때로는 몽환적인 신비로움을 주는 색으로 묘함을 선사하는 색이기도 하다. 파랑을 떠 올리며 생각하는 대부분의 생각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파랑의 역사>는 말 그대로 역사 책이다. 저자 미셸 파스투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중세사 연구자이며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파랑의 역사>는 파란색의 역사를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함께 고찰해 나간다. 파스투로는 색은 사회적 현상으로 색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색은 무엇보다 우선 사회 현상으로 정의된다.” 그렇기에 색의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한 시대에 녹아있는 특정한 문화가 어떻게 색의 역사적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지, 통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신석기 시대부터 20세기까지 파랑의 역사를 주요 맥락으로 삼는다.

파란색은 태초부터 자연에 널리 퍼져 있는 색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이 파랑을 아주 뒤늦게야 인식하고 재현하고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시대의 옷감과 의복은 우리가 색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파스투로는 그 시대에 사용됐던 용어들이나 예술, 혹은 회화에 관한 자료들 보다 옷감과 의복은 훨씬 풍부하고 다채로운 정보를 준다고 말한다. 직물은 당시의 기술과 경제, 사회, 사상, 상징 등 모든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색에 대한 문제들을 거의 다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염색물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것이다. 유럽의 염색물은 기원전 4000년 말엽 붉은색이 전부다. 수천 년 동안 직물 염색은 단연 붉은색 염색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중세까지 색의 중심은 흰색, 검은색, 붉은색으로 파란색은 보이지 않는 색이었다. 사회적 차원에서 상징적으로 파란색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 사회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색과 우리에게 인식되는 색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름 붙여진 색 사이에서도 아주 엄청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로마 사람에게는 파랑은 켈트족이나 게르만족 같은 미개인의 색으로 취급되었고, 심지어 파란 눈을 가진 사람도 추하게 취급 받았다. 그리고 로마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당시 무지개에 파란색이 없는 4가지 색으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많은 학자의 사색과 논증에도 파란색은 빠져있었다. 중세 초까지 파랑의 상징성은 별 것 아닌 것, 보이지 않는 색이었다. 흰색, 검정색, 빨간색 위주였다. 그리고 녹색은 세 가지 중심 색을 연결해 주는 중간색 정도로 취급되었다. 일상생활에 파랑이 쓰이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궁정의 귀족들에게는 버림받은 색이었지만, 농부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한테서 사용되었고, 이는 12세기까지 이어졌다. 파랑의 사회적 인식이나 상징성이 너무 약해서 역사적으로 보이지 않는 색이 된 것이다.

 

 

 

파랑의 가치 상승

 

12세기부터는 파랑은 이제 서양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별것 없는 색이 아니었다. 이제 파랑은 유행하고 귀족적인 색으로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작가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칭송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파랑의 지위 상승은 의복으로 나타났으며 예술 창조 활동 등으로 급속히 번져 나갔다. 파랑의 가치 상승은 사회적으로 그 상징성을 부여했고, 색 체계를 새롭게 재편성 하였다. 색의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생겨난 것이다.

 

12세기에 이르러 성모마리아의 겉옷이나 드레스의 색상에 파랑이 쓰였다는 점이다. 이는 파랑이 사회적으로 급부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파랑의 가치 상승과 함께 사회 전반에 파랑의 유행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문학 작품에서도 색의 암시 체계를 볼 수 있었다. 14세기 중반 즈음에 쓰인 작품에서 파랑이 등장한다. 용감하고 충성스럽고 성실한 인물의 파랑의 기사가 등장하였으며, 이를 예찬하는 궁정 시인들도 등장하게 된다. 카페 왕조는 서양에서 최초로 문장(紋章)에 청색을 사용한 왕조다. 왕이 파랑을 사용한다는 것, 이는 파랑의 인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파랑의 등장은 경제적으로도 큰 파급효과를 만들었다.

빨강을 염색하는 염색 전문가는 파랑을 염색할 수 없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도시의 염색 업자들은 아주 엄밀히 전문화돼 있었고, 이는 왕실과 당국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들이 취급하는 염료는 서로 달랐으며, 염색 기술적인 면에서도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 그들의 고객층이 달랐다는 것이다.

 

15세기 이전까지 염색에서 회화에서 색 제조법을 설명하는 책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창조주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질서와 자연 상태를 역행하는 것으로 악마가 하는 짓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색 조합으로 색을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보라색을 만들기 위해 파랑과 빨강을 섞는 일은 결코 일어나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급부상한 파랑은 이제 성모마리아의 색, 왕의 색이 되었다. 이는 파랑이 빨강의 맞수인 경쟁자일 뿐만 아니라, 중세 말기와 근대 초기 의상에서 인기를 얻은 검정과도 겨루게 되었다는 점이다. 파랑은 이제 검정과 함께 도덕적인 색이 된다. 14세기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전 기독교 사회에 걸쳐 증가한 사치 단속법과 의상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다. 이는 검정의 가치 상승을 만들었고 18세기까지 여러 형태로 지속해 근대와 현대의 의상 체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으로 규제가 가해진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와 도덕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겸손과 덕행의 실천을 이어가는 기독교적인 전통과 엄격한 복식 규정으로 사회 계층을 구분하려 했다. 신분 차별을 위해 하양, 검정, 빨강, 초록, 노랑, 그러나 파랑은 전혀 쓰이지 않았다. 파랑은 사회적으로 규정되거나 금지된 색이 아니었으므로 사용이 자유롭고 중립적이며 위험성도 적었다. 그래서 파랑은 검정과 같이 도덕적인 색으로 남을 수 있었다.

 

 

경건한 색의 파랑

 

15세기는 검정이 가장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다. 그리고 어두운 회색 또한, 인기를 얻었다. 이는 16세기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검정은 가장 준엄하고 고결하며, 가장 기독교적인 색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하늘과 영혼을 상징하는 파랑을 점점 동화시켰다.

 

종교 개혁과 색 파괴주의는 교회 밖으로 색을 추방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파랑은 다른 색과 달리 관대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이들에게는 색은 단지 물질에 불과했던 것으로, 색은 사치와 겉치레, 인위적인 것,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종교 개혁은 예술 분야에서도 색을 혐오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이는 서양인들의 색 감수성을 변화시키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 의복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엄격함과 간소함으로 강렬했던 빨강과 노랑, 분홍, 주황 등 다른 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 검정, 회색, 갈색 톤의 의상이 주를 이루다가 16세기 말부터는 파랑도 정중한 색대열에 들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는 종교 개혁과 함께 형성된 가치 체계, 그 속에서 색에 대한 거부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통찰해 나갔다. 신교도들의 색에 대한 거부가 미친 영향, 상품들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던 무렵에도 프로테스탄트 계층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신교도적인 윤리는 공업화의 발달로 다양한 색의 물건들을 생산할 수 있음에도 대량 생산품에서 상당히 획일적인 색을 띠었다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대중의 요구와 경쟁의 위협에도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 오랫동안 다른 색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17세기 페이메이르는 청색의 화가라 불릴 만큼 그 누구보다 파랑을 섬세히 다룰 줄 아는 화가였다. 마치 캔버스의 그의 그림은 리듬감 있게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했다.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읽었더라면 페이메이르에 관한 책을 접했을 때 어땠을지 생각하게 된다.



가장 사랑 받는 색, 파랑

 

유럽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노예의 노동을 통해 생산된 인디고는 먼바다를 건너왔지만, 유럽의 '대청' 보다 그 원가가 쌌다. 무엇보다 인디고의 착색력은 대청 보다 더 강했다. 이로 인해 대청 산업은 막을 내리게 된다. 도시의 흥망성쇠는 또 다른 주류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인디고의 염색도 19세기 말 인공 염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천연 염료 인디고의 역사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관련 산업도 점점 치명타를 입고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대는 새로운 발견으로 늘 변화를 맞이한다. 그 흐름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 것이다. 역사가 말하듯이 우리의 시간도 이러한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파랑이 가진 잠재력은 역사 속에서 비교적 약하고 폭력적이거나 금지된 적 없는 무난한 색이었다. 평범하지만 뭔가 있는 색이었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대중성은 극적인 사랑을 받은 색도 아니고 큰 유행을 타지도 않았다.

 

18세기에서 20세기의 파랑의 역사는 혁명의 파랑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낭만주의의 상징으로 남기도 한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입은 청색 연미복은 당시 청색붐을 일으켰으며 베르테르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유럽의 낭만주의 꽃으로 그 상징성을 더했다. 파랑은 역사 속에서 그 의미가 다양해졌다. 특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파랑은 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색 휘장과 삼색기에 얽힌 이야기도 꽤 길다. 그리고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파랑의 이야기도 흥미 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의 군복은 초기에 꼭두서니로 염색한 붉은 바지와 진한 청색의 군용 외투를 입었다는 점이다, 이는 전시에서 프랑스 군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준다. 국가를 상징하는 파랑과 빨강을 버릴 수 없다는 쓸데없는 고집은 많은 군인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결국에는 군복 바지를 연한 회색빛의 청색으로 바꾸지만, 전시에 군인들의 군복을 염색하는 인공 염료를 만들어 내는 일이 쉽지 않기에 청색 바지로 통일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파랑의 대명사 청바지의 역사는 당연, 파랑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청바지의 역사와 상징성에 대해 말할 때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잘못된 청바지에 관한 편견도 언급했다. 20세기 파랑은 이렇게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며 옷 색깔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친숙해진 파랑은 파랑의 역사가 말해주었다. 한때 귀족들의 색이자 왕의 색이었던 빨강과 대적하게 된 파랑은 역사 속에서 점점 몸값을 올렸다. 그리고 경건한 색으로 파랑의 전성기에 들어서기도 한다. 낭만주의 시대 파랑은 다른 색을 제치고 월등히 앞으로 달려간다. 파랑의 흔적들은 이제 사회, 경제,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에 띄는 발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여론 조사가 가능한 시기에 든 20세기에 파랑은 다른 색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이 가장 사랑하는 색으로 남았다.

 

색채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는 꽤 매력적이었다. 중간 중간 삽입한 자료와 그림들도 꽤 알찬 책이었다. 올해 공들이 첫 번째 책이 되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또 편애하는 책이 생겼다. 유일하게 이런 차별은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빨강의 역사>를 읽고 있다. 같은 저자가 쓴 책이 각각 다른 번역가에 의해 옮겨졌다. 두 책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개인적으로 <빨강의 역사>가 더 부드럽게 읽혀지는 것은 번역의 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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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3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진짜 재밌죠 전 에코가 중세에 관해 쓴 책보다 더 재밌게 읽었어요 호빵님 따라서 빨강색도 읽어야 겠어요 ^.^

이뿐호빵 2021-01-23 16:24   좋아요 1 | URL
빨강의 역사가 더 흥미롭네요 ~~
중간쯤 읽고 있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침대 위의 세계사
올댓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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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 제일 먼저 마주하고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지

뭉그적뭉그적 꿈틀대고, 이리저리 뒹굴면서 포근한 시간을 최대한 늘여 보고자 발악 하는 모습을 묵묵히 보고 있을 너. 질질 끌며 무거운 몸을 축 늘인 채 그대로 뛰어 들어가도 탄성 좋은 너는 흔들림 없이 아주 힘 있게 나를 받아내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너의 일관성 있는 태도에 미워할 수 없는 존재, 너란 존재는 나에게 내일을 위한 힘이지

 

나의 하루는 이렇게 침대 위에서 온몸을 뒤틀면서 묵직한 몸을 일으키며 시작한다. 침대는 이렇게 내 몸과 밀착되어 노골적으로 바라보며 나를 느끼는 녀석일 것이다. '만일' 이라는 조건을 걸어 침대가 생명이 있다면, 사랑하지만 매우 불편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주절주절 거리는 이유는 이 책이 다루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하루는 침대라는 공간에서 시작하여 다시 그 공간에서 끝을 맺는다. 이 공간이 숙면을 위한 가구가 아니라 지친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친구이며, 그 어떤 영양제보다 더한 에너지 보조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대가 있는 침실 공간은 가장 사적이고 가장 은밀한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제목의 침대라는 단어부터 책은 호기심을 끌었다. 


역사는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침대에서 모든 일을 한 시절이 있었다. 우리에게 사적이고 은밀하다는 개념은 근대에 생긴 것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공간에서 불가능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싶을 만큼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침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침대는 쉬는 날에 뒹굴 수 있는 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풍부한 영감과 소재를 던져 준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동안 침대 위에서 군을 지휘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야기는, 침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일을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잉태와 죽음, 그리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베드타임 스토리는 역사에서 빠진 이야기다. 


"거의 모든 사회와 개인의 역사에서 이야기의 3분의 1은 빠져 있다."

1960년대에 건축화가이자 가구 전문가인 로렌스 라이트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침대에서 지낸 시간들이 과거 역사를 이해하는 데 공백으로 남아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침대는 고고학의 역사에서도 대부분 빠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파내고 훑어보고 고고학자로서의 일을 하려면, 침대는 인류의 수평적 역사를 읽어내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적절한 장소이다.


-<침대 위의 세계사> 중에서 



'아침형 인간', 이 단어는 나에게 패배감을 맛보게 한 단어로 그다지 반가운 단어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하는 불만일 수도 있지만, 그 단어가 한때 모든 성공을 의미하는 단어로 비춰지는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잠이 많은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단어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불편함의 조각들이 이 책을 통해서 완전히 부서졌다. <침대 위의 세계사> 이 책은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던져 버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것 또한 책이 주는 기분 좋은 힘이겠다. 


이중 수면 패턴


자연 세계를 재현하기 위한 의도에서, 1990년대 초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정신과 의사 토머스 베어는 참가자들을 한 달 간 하루 14 시간씩 암흑 속에서 지내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베어는 이 실험을 통해 '이중 수면 패턴' 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밤의 리듬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버지니아 공대의 역사학자 로저 에커치는 베어의 수면 연구에 힘입어 '이중 수면 패턴'을 기록한 역사 문헌들을 모았다.이 실험과 역사학자의 고찰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중 수면 패턴' 때문에 한밤중에 깨어날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수면 패턴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수면 리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밤에 깨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안고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다음날에 대한 걱정으로 말이다. 자연스러운 이러한 수면 리듬까지도 우리는 스케줄이라는 틀에 묶여 불면증이라는 병을 만들었다. 


수면의 산업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우리들의 수면 시간도 규정된다. 제시간에 잠들기와 깨기, 적당한 수면 시간, 규칙적인 수면 시간도 산업화로 인해 사회화 되었던 것이다. 산업 혁명과 수면 보조제의 관계에서 수면 보조제는 인간이 진화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또 다른 적응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에 떠 밀려진 인류에게 어쩌면 이러한 과정은 필수였다는 점이다. 산업화로 인해 우리의 수면 시간은 산업화에 적응하여 그 사회를 성공적으로 살아 가야 했으므로 적당한 수면과 규칙적인 스케줄은 성공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공 조명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깊은 밤에도 오락과 사교를 즐기며 북적거렸다. 이로 인해 대부분 우리의 수명 시간도 불규칙하게 변했으며 편안한 수면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도 공공 조명의 등장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전반 런던은 처음으로 전문적인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조금 더 안전한 수면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보호 받고 있을 때 잠을 더 많이 잔다는 것이다. 


"어쩌면 현대의 수면 손실은 이렇듯 사라진 이익과 균형을 맞추려는 결과일 수도 있다."



'수면 회피'가 실제로 생산성 향상을 시킨다는 것을 증명한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안심한다.  대표적인 인물  레오나르드 다빈치, 윈스턴 처칠, 나폴레옹 등 위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수면 시간에 대한 불안함을 지웠다. 잠을 적게 자는 것으로 칭송받아 온 대표적 인물 처칠은 '낮잠' 시간을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의 유명한 말 "낮잠을 건성건성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처칠은 전쟁 때도 그의 수면 습관 때문에 중대한 결정은 거의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심지어 장군들이나 장관들과의 회의 또한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역사는 이렇게 또 침대 위에서 바뀌었다. 어찌 보면 우리가 말하는 최적의 수면 시간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자신만의 수면 사이클과 시간이 있다. 단지 여기서 우리가 힘들어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르지만, 자신에게 자연스럽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웃기게도 나의 수면에 대해 자꾸만 변명을 하게 되는 기분이 든다. 이중 수면 패턴과 수면 회피를 동시에 다 갖고 있는 것 같아서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근거를 이 책에서 어떻게든 찾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과 성 그리고 침대


과거 여성들의 지위는 단지 잉태와 출산에 따른 목적만이 필요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는 시민의 축에도 들지 못했고 아내의 가장 큰 의무는 출산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영국과 유럽 사회 대부분이 청교도의 교리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이 때도 여성들의 위치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침대 위의 역사는 여성에게도 가혹했다.


침대에서의 분만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산부인과 수술이 실시되면서 시작되었다. 외과 의사의 의료 기술이 필수가 되고, 산모는 수동적으로 침대에 누워 의사는 기술을 통해 적극적으로 출산을 돕는다. 출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침대 위에서 생겨난 것이다. 병원 침대에 관한 이야기에서 초기 병원은 감염과 전염의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위생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너무 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는다는 것조차 설득할 수 없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의료 기술의 발전과 기적 같은 '마취'의 등장은 고통에서 더 이상 신음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당연히 출산은 병원 안의 침대 위에서 이루어 지는 과정으로 그 개념이 바뀌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여성 산파의 역할이 의사로 바뀐 것은 이전의 가부장 체제의 사회, 출산의 공로를 대부분 남성에게 돌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는 것이다. 


"침대는 생명 탄생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회복의 공간에서 수동적인 출산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p135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그가 남긴 마지막 말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게 한 마지막 말에 그의 친구들과 제자는 경외감을 느꼈다. 그들에게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궁극의 죽음이었다. 죽음 직전에 하는 마지막 말에 대해 우리는 묘하게도 의미를 둔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지막 말들은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많다고 전한다. "망자가 대꾸할 리 없으므로 마지막 말은 지어내기 쉽다." 누군가의 명분에 의해 끌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마지막 말로 기억되는 이들조차 자신의 말이 마지막 말이 될 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것에 의미를 두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말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나에게 반가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책을 읽어 가다가 저자의 생각 못지 않게 나와 공감을 이룰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말 그대로 나랑 통했다. 별 것 아니지만 또 이런 것에 기분 좋아진다. 내 손 위에 놓인 책에서 잘 통하는 친구를 찾은 기분이다. 책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이런 공감은 여행지에서 반가운 친구를 사귀는 기분 좋은 경험을 준다.   


6장의 다른 사람과의 침대 공유에서 다시 만난 <모비딕>의 이스마엘과 작살잡이 퀴퀘그의 만남이 한 여인숙의 침대 위였다는 것이다. 책에서 <모비딕>의 한 장면을 묘사할 때 이미 나의 머리 속에 등장한 이스마엘과 그의 친구는 읽는 순간 반가움에 악수를 나누었다. 이 둘은 같은 침대를 공유하며 서로의 친구가 되었다. 일상적으로 침대 공유 문화가 당시에는 당연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 존 애덤스와 벤저민 프랭클린의 동침은 최악으로 기록된다. 



나폴레옹은 헬레나 섬 유배지 야전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 

움직이는 침대의 등장과 탐험가와 모험가의 이야기에서도 빠질 수 없는 침대 이야기는 스콧과 아문센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까지 미국 군인들에게 담요와 그라운드 시트(방수포) 만을 지급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했던 침낭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침대란,

현대인의 숙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모 침대 광고처럼 침대는 숙면을 취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인 과학이 되었다. 그리고 베개며 침구 세트는 다양한 기능으로 상품성을 높이고 광고를 섭렵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침대의 등장과 함께 과연 미래의 침대가 어디까지 우리의 수면을 조종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침대 위에서 쓰여진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한때 삶의 역동적인 과정

이 녹아 있는 침대는 사라졌지만, 개인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 온 침대는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시대가 변화고 사회가 다르면 그 쓰임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과거 침대라는 가구가 역사 속에서 단지 가구로써 그 가치를 채우고 있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침대 위에 쓰여지는 시간은 이전처럼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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