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회귀선
헨리 밀러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세계사 / 1991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대학 3 학년때 이 책을 읽었다. 전날 밤을 새우고 다음날 저녁까지 버텨서 수면 싸이클을 제대로 돌려놓으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다시 한번 했을 때였다. 멍한 정신 상태로 과방 옆 베란다에서 첫 페이지를 펼쳤다. 끝까지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은 도색 소설이 아니다. 소위 '딸책'의 관점에서 이 책은 십 점 짜리다. 소설 주인공은 거의 헨리 밀러 자신이다. 아무리 신중하게 봐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기술과 사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뽀샵 처리를 얼마나해 놓았는진 잘 알 수 없다. 주인공은 부르클린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소설가 지망생이며, 날품팔이같이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엄청나게 읽어치웠고 체험의 식인상어처럼 전진했지만, 출판사에 가지고 간 원고들은 도대체 플롯이란 걸 찾아볼수 없고 소설 쓰기의 ABC부터 틀려먹었다며 번번이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왜냐하면 가슴 속에 詩의 미치광이가 들끓고 있었으니까. 뭐라고? 詩라고! 그는 시인 기질이 강해서 인간과, 인간들이 어우러지는 장면의 특권적 이미지에 자주 사로잡혔다. 줄거리를 구성해 시간적으로 차례차례 전개하기엔 어떤 쪽을 먼저 펼치느냐에 따라 양상이 아주 달리져 버려서 그 어느 쪽도 타협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詩는, 시적인 것은 절대적 동시성이다. 차 바퀴가 가끔 훑고 지나가는 물웅덩이 위로 가래침 코푼 휴지 모기 애벌레 설사 찔찔, 정액 뭉치 따위 떠다니는 사이에서 문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오르는, 연꽃인지 석류꽃인지 모를, 그 무엇처럼. 게다가 기다리는 재능으로 따지면 그는 무심하다고 할까, 낙천적인 게 타고 났다.  


소설 속에서 '모나'라고 불리웠던, 그의 두번째 부인은 매춘부였다. 그런데 좀 특별한 매춘부였던 모양이다. 자선 시집을 뿌리고 다녔다. 어느 컴컴한 구석 테이블에서 청년 밀러를 만나, 도스토엡스키에 대한 열광을 공유했다. 그녀는 은근히 그 스스로를 <죄와 벌>의 여주인공으로 동일시했다. 구원의 쏘냐. 발렌틴, 원한다면 빠리로 가. 필요한 돈은 대줄테니. 대작가가 되서 돌아와. 30대 중반에 빠리에 갔다. 거기서도 그의 생활은 형편없었다. 작가적 근면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보내온 모나의 쌈지 돈을 첫날에 불행한 거리의 여자에게 다 줘버리고... 일시적 방종과 지지리 궁상의 부랑자같은 생활을 오고 갔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비참과 타락에 대한 간접 경험은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이 책은, 아이러니칼하게도 그의 출세작이 되어버린 이 원고뭉치는 소설가이고자 하는 희망을 포기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은 첫 페이지부터 발견할 수 있는 이 부분을 간과하거나, 폼을 잡기 잡기 위해 괜히 써본 몇 개의 장식적인 구절로 치부해 버린다. 소설 줄거리를 구상해내는 방면에서 그는 치명적으로 무능력했다. 캐릭터의 (反영웅적인) 이미지들은 두들겨 맞은 그 자신의 살과 피에 이미 갖추어졌다. '인간(들)'은 그 안에서 흐르며, 완성을 향해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잡한 줄거리를 이리저리 가져다 붙여 도약 혹은 몰락을 꾸며보는 작업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그에게, 인공적인 균형과 도덕적인 뒷처리는 협잡 행위에 가까웠다. 대신에 맥박 치는 리듬과 문체의 공기가 창조된 인물들의 둘레에서 기후처럼 감싸고 돈다. 태어나고, 떠나고, 싸우고, 사랑하고, 허풍을 떨어대고, 일반적 개수작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쇠약해지다 어느새, 재와 바람이 되서 한참이 지나, 그와 부대꼈던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아주 사라질 때까지 그 사람은, 사람들은 남아있다.


30대 후반이 된 작가 지망생은 발버둥을 친다. 스트린드베리나 아이작 싱어 소설의 경계선적 인격 장애자들과는 달리, 그에겐 '신비주의'조차 없다. 그는 암내의 꽃밭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 다니지만,  돈 쥬앙 기계의 귀족적 경멸과 차가운 반복 행위로 떨어지지 않는다. 시는 그에게 돌발적 감정이입이며 육체의 연장이다. 넘쳐나는 유머 감각, 그건 무위의 불꽃 놀이다. 지금 이 순간에 천국을 짓는다. 불꽃들의 곧 꺼져감이 그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태어난 헨리 밀러는 창백한 감상에 사로잡힌 성냥팔이 소녀가 아니다. 첫 페이지에 글쓰기의 명예를 버렸고, 다가올 아무 것도 그에게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력 넘치는, 저자의 저 말 대가리같은 얼굴을 보라. 한눈에 타고난 정력가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가 도리어 감미로움이 된다. 나는 이 소설, 그자신은 소설이 아니라 '길게 잡아 늘어뜨린 모욕'이라고 칭한 이 물건을 읽으며 <체력>이란 참 소중하구나, 하는 걸 느꼈다. 나의 천박한 체력주의는 이책을 읽으면서 크게 고무되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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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웃기고 감동적이고 이상한 체념과 슬픔이 있고 기괴한 아이러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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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이야기
조르주 바타이유 지음, 이재형 옮김 / 푸른숲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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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눈 이야기>에서 검출되는 부글거리며 끊어오르는 위반의 에너지는 가히 초현실적이고 비할 바 없다. <하늘의 푸른 빛>는 새벽에 끝난 파티의 쓰레기를 헤치고 나오는 자의 센티멘탈한 고갈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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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 - 15주년 기념 에디션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그랜트 모리슨.데이브 맥킨 지음, 박중서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먹물들이 좋아할만한 상징과 도식으로 가득한 내적 분열의 싸이코스릴러. 무엇보다 데이브 맥킨의 그림들이 압도적이다! 아트 북에 가까운 그래픽 노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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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
브라이언 아자렐로, 리 베르메호 지음,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기괴한 표지와 화려한 맛뵈기 컷에 혹해서 샀다가 크게 실망했다. 어설프고 둔한 <스카페이스>. 재미도 별로고 깊이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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