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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3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작가는 1920년대 30년대에 소비에트의 토목기술자였다가,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지방 출장 근무 중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표현들에서 비치는 시적인 섬광이 전례 없다.
래디컬한 꼬뮤니스트이면서도, 그 래디컬함이 체계를 구축하는 관료들 및
요제프 스탈린 동지로부터 오히려 미운털이 박히게 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부유하고 독백을 하고
당의 강령을 반복하고 그 속에서도 도처에 선연하고 처연한 슬픔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어둡고 반-진취적이다.
할 일이 산더미 같고 새로운 미래를 실험하기 시작한 인류에게 닥친,
두렵고도 엄혹한 그 시대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학은 어떠한 시대에도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적당함을 찾아다니는 그들에게는, 유행에 휩쓸려
진한 에쎈스에 물을 4분의 3쯤 섞은 듯한
소문과 개론서의 오해를 무릅쓰지 않고서는,
결코 적당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니까.
또한 적당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어른이다.
남들도 하는 그 걱정에 간혹 꿈자리까지 사나운 정도라면 어른되기에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