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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평점 :
이책의 요지는 이 시대가 긍정성의 과잉인 성과주의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질성이 타자로서 공격대상이 되는 면역학적인 시스템은 끝났다는 거다. 말씀이 참 개념적으로는 정교한데, 우리가 성과에 목매다는 게 적어도 한국에서는 적지 않은 경우 먹고 살지 못할까봐 아등바등 대는 건 아닌가?
혹자는, 먹고 살만한 정도라면 그렇게까지 목매서 일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혹은 조금 가져도 되는데 차도 두 대씩 굴리고 자식들 학원도 다섯 개씩 다니게 해야 하고 그렇게 불필요한 옵션들을 필수라고 생각하니까 비용이 많이 드는 건데 그런 게 성과주의 사회가 자기 착취를 밀어붙이기 위해 주입하는 유혹적인 허상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의 시스템이 먹고살만한 정도로 적당하게 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20대 80사회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5명 중의 1명이 다른 노는 네 명 몫을 죽어라고 떠맡아서 일하고 페이도 많이 가져간다. 다른 네 명은 손가락 빨면서 일용직 알바든 부모나 친척의 도움이든 해서 어떻게든 근근히 먹고 산다. 5명이 사이좋게 일을 나눠서 각자 여가를 더 가지는 대신 조금씩 분배받는 씨스템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맹렬 현역들은 밑에 치고 올라오는 뉴비들에게 밀리지 않게 없는 틈을 내서 자기계발하고 스펙 쌓고 그러는 것이다. (물론 빽이 좋아서 한국마사회 같은데 들어가서 터무니 없는 연봉을 받으며 한가하게 어슬렁거리는 신의 아들 같은 젊은이들의 경우는 예외다. 그 친구들은 살아있는 미이라가 되지 않으려면 자아실현을 다른데서 하려고 들겠지.)
이질성의 부정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하는 규율사회와의 대립을 강조한 나머지 단순히 주입된 강박관념이랄 수도 없는 이런 기본적인 불안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석연치 않다. 중력이 걸리지 않는 우울 사회라는 아이디어는 어쩐지 사회보장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독일의 경우에서 더 그럴듯한 상상력이 아닌가 싶다. 여하간 개념 사용이 조심스럽고, 정치한 논리 전개가 안심을 주는 책이었다. 생각할 거리도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