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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6월
평점 :
20대 중반의 미국 남자와 십대 후반 프랑스 여자가 시골 캬바레 같은 데서 눈이 맞아 지방 호텔을 전전하면서 겁나게 섹스하다가 헤어진다는 내용이다. 질내사정이 여러 번 나오지만 스트리밍 동영상 시대의 상향평준화된 역치를 감안할 때 그다지 야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서술자인 나는 작중 등장인물이면서 자신의 생활을 드문 드문 묘사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젊은 커플을 외부에서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밝혀지지 않는 그 둘의 은밀한 사생활의 몽상자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먹음직스러운 여자를 관찰하면서 스스로 통제하고 안으로 삭여낼 수는 있지만 끊임 없이 자극을 받고 음미하는 데 필치의 촉이 쏠려있다는 느낌을 읽는 내내 받는다.
남자는 부르조아 계급에 속하고 두뇌도 명석하며 예일대를 별 노력없이 우수 학생으로 다니다가 갑자기 젊은 시절의 유진 오닐이나 거칠 것 없는 비트 족 흉내를 내고싶어서인지 중도에 때려 치우고 프랑스로 건너 와서 본의 아니게라도 구별짓기 취향을 드러내는 빈티지카를 몰고 다니며 빈둥댄다.
프랑스 시골 출신의 소녀는 서민 층에 속하고 발랑 까진 아이라 미국인 흑인 병사 둘과 놀기도 하고 - 암시는 있지만 반드시 쓰리섬을 했는지는 알 수 없음.. - 발랄하게 놀아나다가 이 남자를 만난 후, 안착할 스위트 홈을 꿈꾸게 되었는지 - 남자가 콘돔을 끼울려고 하면 여자아이는 괜찮다며 자꾸 그냥 안에다 하라고 함.. - 연애의 단조로운 지속이 가져오는 환멸까지는 대비하지 못하였기에..취향이 섬세한 남자에게는 자꾸 여자 아이의 천박함이 보인다. 애인의 방귀 소리에도 환상이 깨기도 하니까.
그 결말은 당신이 연애 소설을 즐겨 읽었든 현실 연애의 좌초를 몇 차례 경험해봤든 능히 짐작하리라 믿는다. 그건 그렇다 쳐도 갑작스런 결말 처리는 편의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성당이나 수련처럼 같은 대상을 놓고 여러 번 다시 그린 모네의 인상주의 연작들을 연상시키는 설터의 반투명하고 중후한 작품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문장 번역에서도 '킹카' 따위의 역어를 쓰지는 말았어야 했다. 딱히 비문이 있는 건 아닌데 전체적으로 문장 성분의 배치에 있어서 좀 덜그럭거리는 느낌이다.
로스트 제네레이션 (상실의 세대),
또는 물가가 미국보다 싸기도 하고 아직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 내지 동경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이 프랑스로 건너와서 노닥거린다는 소재에서 헤밍웨이의 1926년작 <태양은 내일도 떠오른다>가 연상되었지만 결은 다르고 여튼 헤밍웨이 쪽이 월등하게 뛰어난 작품이다고 본다.
주인공 남자의 스타일로 볼 때 소세키의 <그 후>의 주인공 '고등유민' 다이스케를 연상케 한다. 부유한 집안 출신에 아버지 돈으로 노닥거리는 섬세한 취향을 가진 남자의 몽상과, 곧 이어 다가올 현타의 시간. 계급적 성분의 한계는 끝에 가서야 시험을 받게 된다. 두 작품 다 주인공의 개인파산과 로맨스의 한계를 통해서. 물론 나는 메이지 시대의 끝물(1909)에 씌여진 <그 후>가, 겉으론 점잖게 보이나 내적인 격동으로 와인 빛깔처럼 문득 생생해지는 훨씬 우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설터의 작품은 1967년 작. 히피 시대 한복판에 나온 건데, 그러고 보니 전후 부흥기에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추상적인 환멸은 느낄지언정 그다지 경제적 걱정없이 자라 -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유형화는 예외의 잔가지를 쳐내는 폭력적인 맹점이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식 기반이기도 하다 특히 그 집단 외부에 있는 타자가 '그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편의적이지만 실용적이기도 하다.. - 기후 좋은 캘리포니아의 들판으로 달려나가 피임약과 환각성 약물을 옆구리에 끼고 자연 경관을 예찬하며 쾌락의 자유을 웨치던 꽃돌이 꽃순이들을 우회적으로 희화화하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작가는 40대 초반이었고, 한국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여한 이이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은 제임스 딘을 닮아서 이름도 '딘'이다. 그러니까 결말도 앗! 이러면 스포일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