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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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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났다.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환호와 탄식으로 맞이하던 새벽과도 안녕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도 아름다웠고 메달권에 들지 못했어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모두가 아름다웠다.
광고처럼 우리가 그들을 응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응원한다는 말이 맞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이 끝났으니 새벽에 일어나 잠설칠 일 없으니 출근해서 꾸벅꾸벅 조는 일도 없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뭔가 영 허전하다. 잠 설쳐 가며 고래고래 응원할 때보다 푹 잤다고 생각하는데도 ...뭔가 힘이 빠지는 기분이다.
고갈된 에너지원을 올림픽선수들에게서 충전받고 있었던것이었구나!! 멍하니 그런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서평기한은 벌써 지나가 버렸고 책 내용도 가물가물해져 버렸다.
읽긴 읽었었지,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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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y=:[]:
도시의 골목 골목을 누비며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과 낙서를 연구하는 아저씨와의 만남이 있었고 지구에서 모든 인간이 사라진 다음 바퀴벌레 같은 동물들만 지구에 살아남게 되었을 때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것 중에 스케이트보드 하나는 잘 만들었네 싶은 마음이 들거라는 추측. 그리고, 스케이트보드의 유연함과 편리함 기능성과 소통의 원리를 '깊이 들어갈수록 축축해진다'는 말과 함께 몸으로 체득하며 긴허리아기말원숭이와 다시 조우하고 있을 때 깊이 물속으로 들어간 우리의 박태환 선수는 예선 오심으로 인한 판정의 심리적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혹은 이겨내지 못하고) 은메달을 목에 걸고 있었으니...
수영이 아니라고 이건, 스케이트보드라니까!! 집중하자,집중하자..해도 어느새 박태환 선수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400미터에 이어 1500미터를 헤엄치고 있었으니... C1+y = :[]:은 C1소주로 변해 통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내 입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찌됐건 낙서로 된 방향 지시등에 힘입어 도시의 골목을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정글까지 이를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넘어지는 걸 감수하고 다음날 에도 C1의 대열에 기꺼이 합류할 마음이었다는 게.....생각난다.
냇가로 나와
....는 올림픽 방송이 잠시 쉬는 낮에 후다닥 읽었다. 이건 중년의 내 나이와 맞았거든.
어디선가 들어 본 것같고 어느 매체에서나 한 번 쯤 다뤄 본 소재여서 친밀감도 있었고.
도시가 변하고 허물어지는 것과 나무같은 통나무 김씨가 사라지는 것의 일맥상통한 풍경들을 숱하게 봐 온 경제개발 5개년의 산업세대여서 더 그렇기고 했고.
하마까씨가 너무 슬퍼하는 바람에 너무 긴 1초 때문에 결승 진출에 실패한 신아람의 눈물이 더 가슴 아팠다는 것이 유독 가슴 아팠다고나.
바질과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1F/B1, 유리의 도시, 크랴샤는 이래선 안되겠다.
올림픽 중계방송이 없는 낮에 후다닥 읽어야 겠다 마음을 먹고 본격 읽기 모드로 돌입했는데, 이게 이게 ...우리를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유도에서 또 판정 번복이 나는 바람에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렇게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 있을 순없다는 생각이 엄습. 내가 응원을 하지 않아 진 것만 같아 다시 충혈모드...탕,탕, 탕..진종호의 사격 금메달로 인해 잠시 안정을 되찾고 후다닥 읽었다.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진행중이었고 서평은 내일로 내일로...
오늘까지 온 바, 읽고 난 직후 생기는 파닥거리는 서평은 쓸 수없을 듯 싶지만 곰삭은 독후감은 가능할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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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소설은 처음이라 작품들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긴 힘들지만 독특하고 개척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 느낄 수있었다.
그의 소설이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필독을 권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로 봐서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난 아우라를 갖고 있다는 게 객관적으로 증명되어 보인다.
<1F/B1>에서만 봐도 단편들 모두가 <도시>라는 큰 타이틀을 가지고 오목조목 접근하고 있다.
이번엔 도시다!! 타이틀을 내걸고 도시속의 삶들을 빨주노초파남보로 아우라를 칠했다.
일층과 지하일층의 슬래시 사이에 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아주 얇은 공간에 사는 도시인들의 거대한 도시속의 삶을 다양하고 다른 각도로 바라봤다.
자살하는 유리들로 인해 갑자기 봉변을 당하는 사람들(그러고 보니 도시엔 너무 유리가 많다. 큰 지진이 난다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유리의 파편에 의해 변을 당하지 않을까싶은 위기감이 유리의 도시를 읽고나서 몰려왔다.),"크랴샤" 한 마디 주문으로 도시의 일부분을 훌렁 들어내어 비워버리는 마술같은 일은 결코 마술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일 년에 서너 차례 서울을 갈때마다 '어, 여기 분명 뭔가가 있었는데..'싶어 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니..건물이 훌렁 도시밖으로 사라지는 일을 마술이라고 우길 수도 없게 되었다.
씁쓸한 맛과 향을 가진 허브 <바질>은 따뜻해야하고 환기가 중요하며 물조절을 잘해야 하는 까다로운 식물이긴 하지만 도시의 음습한 기운과 기력이 쇠잔한 도시인을 만나면 아무 때나 심어도 아무 때나 잘 자라는 덤불이 된다. 도시인의 지친몸에 빨대를 꽂고 도시라는 거대한 헛점을 숙주 삼아 몸을 키워나간다.
도시의 어느것 하나 만만치 않다.
파편에 맞아 죽거나 식물의 촉수에 몸을 내 주거나 몸을 의탁할 건물마저 홀연히 사라질 판이다.
상상이려니 해보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법도 없으니..좀 떨린다.
김중혁 글의 매력이 이런데 있는 것이었나? 혼자 생각해 본다.
이 책이 나올 즈음에 음악방송에 나와 인터뷰한 걸 들은 적 있는데 목소리가 참 좋았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악기들의 도서관]이라는 얘기도 했는데, 많이 팔렸다는건 재미가 있었거나 독자들의 기호에 맞았다는 것일테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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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건물모양 소설의 차례를 나타내는 그림과 마지막 작가의 말에 나타난 짧은 말과 그림.
이런건 너무 마음에 든다.
굳이 뭣이라 뭣이라 소설에 대한 변명 비슷한 회고를 듣느니 속된 도시가 좋아 이 책을 썼노라는 뉘앙스가 담긴 담백한 작가의 말. 멋지다!!
올림픽 핑게를 댔지만 그의 소설은 바질의 넝쿨만큼이나 만만치 않고 일층과 지하일층 사이의 슬래시 도시인의 삶만큼이나 녹록치않다.
그래서, 또 도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