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클럽 반올림 65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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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춰진 것, 완성된 것은 단단하고 투명하여 유리와 같고 나무와 같은 공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서늘하게 묵직한 공을 두 손에 쥐고 이제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가 있다. 그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과 끝났던 것을. 이렇게 아름다웠던 것을. 그렇게 잊기로 했던 것을.

깨어졌으니까 버리려고 했던 거야, 효은아.

.

그래요, 오데뜨. 지금이 그때인가 봐요. 마주해야 할 때.

나는 깨졌다 다시 맞춰진 흔적이 남아 더욱 아름다운 그 유리 나무 공을 바닥에 내려놓고 돌아 나온다. 문 안의 세계가 내가 살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문을 닫지는 않는다. 열어 두기로 한다.

김혜진 <프루스트 클럽> 266p


스무 살의 윤오가 회상으로 다시 꺼내는 열일곱 청춘의 시절 이야기예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누군가 그랬지요.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말 중 하나예요. 청춘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그때의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아픔을 그 한 마디로 '견디라'라고 강요받는 느낌이어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되어버렸어요. 윤오도 그 말을 듣는다면 똑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전학을 와서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윤오는 책을 읽는 것만큼은 멈추지 않았지요. '기댈 수 있'고 '평온한 날들'이라고 생각하는 윤오의 속마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궁금해하기 보다 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선택한 거죠. 그런 윤오가 어느 날 우연히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골목길로 걸음을 옮기고, 카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그날 도서관에서 한 소녀를 만나지요. 티 없이 맑아 보이는 소녀와 함께 그 카페로 다시 걸음을 옮기고 그때부터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서사가 펼쳐집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이름이 그대로 간판의 이름으로 걸린 작은 카페입니다. 카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곳인 것처럼 느껴져서 저는 좁고 허름해 보이는 계단을 일부러 더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여자 주인은 자신을 '오데뜨'라고 불러 달라고 하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스완이 사랑한 여자의 이름이에요. 그리고 이 둘은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자며 '프루스트 클럽'을 만들어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흔한 독서 동아리의 모습 같지만, 이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하고 상처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효은이라는 친구도 함께하면서 성인이 된 윤오가 '잃어버렸던 시간' 속을 함께 보내게 되죠.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꼭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8권에서 멈추었어요. 기억이 흐릿해서 이제 조각난 일부분만 떠올릴 수 있네요. 처음 읽을 때 길고도 긴 문장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내용도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형이상학적인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결국 한 사람의 기억 속 이야기였기에 어쩌면 윤오가 '프루스트 클럽'에서 나눈 수많은 이야기, 시간, 온기들을 기억하는 것과 어울리기도 하네요. 이번에는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제는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전보다 조금 더 길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이전에는 읽고도 크게 동요되지 않았을 문장에 이번에는 오래 머물렀어요. 오데뜨가 한 말이었죠.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지 마. 상처를 가지고, 그것 때문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도 있어. 나이 든 사람들의 주름처럼. 어쩔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면, 말끔히 지워질 것 같지 않다면, 그걸로 아름다운 흉터를 만들도록 해. 상처가 아무는 것은 그 후에 달린 거니까. 그럴 수 있어."

-김혜진 <프루스트 클럽> 177p

어른이 되면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제가 이제는 상처받기 싫다고 숨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 아이들이 또 다른 저의 모습인 것 같아서 아이들 뒷모습에 한참 시선을 두게 됩니다. 아이들은 아프게 하고 생채기 나는 마음을 피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멀리 거리를 두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금씩 상처를 다시 보듬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결과로 자신을 이끌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언제까지나 저는 이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미래 옆에 서서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마음에 함께 동참하실 수 있다면, 이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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