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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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정작 남편은 불륜 중이고, 조산원의 간호조무사로 일하지만 성취감도 보람도 느끼지 못하며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하라 사에. 그리고 어려서부터 엄마의 지독한 통제와 간섭에 큰 상처를 입은 탓에 혼전 임신으로 낳은 딸을 소중히 키워온 가시와기 나쓰코. 두 사람의 관계는 절친 이상의 특별함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것처럼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늘 함께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사에의 남편 다이시가 실종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까지 한국에 출간된 7편 중 6편을 읽었을 정도로 아시자와 요는 저의 관심작가 중 한 명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이야미스(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교묘하게 파헤쳐 불편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의 대표 작가’라고 돼있는데, 개인적으론 정통 이야미스와는 살짝 결이 다른, 애틋하면서도 씁쓸한 여운이 더 인상적인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또 작품마다 다양한 스타일과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특정 장르만 추구한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작가이기도 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이 독특한 연작 괴담집이라면, ‘죄의 여백’은 학교폭력과 복수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는 일상에 깃든 농도 짙은 공포를 소재로 한 단편집입니다. 그런 아시자와 요가 이번에는 가족, 여성, 모성, 부부 등 ‘가장 가깝지만 한없이 먼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관계’를 소재로 지독한 심리극이자 반전 미스터리를 선보였습니다.

 

이야기는 사에와 나쓰코 두 사람의 시점에서 번갈아 전개됩니다. 남편이 회사동료와 불륜 중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며 오로지 아이를 갖는 일에만 몰두하는 사에에겐 오직 나쓰코만이 유일한 안식처이자 탈출구입니다. 다른 여자들의 임신과 출산을 돕는 조산원의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에에게는 아이러니한 현실이자 고된 노동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에는 나쓰코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만이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반면 엄마의 강압적인 통제와 지배에 질린 채 성장한 나쓰코는 혼전 임신으로 낳은 딸을 위해 “이 아이의 앞길에 행복만 있기를.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이라고 기원하는 간절한 엄마이자 늘 자신에게 기대어 오는 사에에게 기꺼이 따뜻한 위로와 휴식을 제공하는 넉넉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것 같던 두 사람의 관계는 사에의 남편 다이시의 실종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미스터리의 출발점인 이 사건은 대략 1/3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나머지 2/3는 사건을 대하는 사에와 나쓰코 두 사람의 불안과 공포와 의심, 그리고 막판 반전과 함께 밝혀지는 사건 이면의 진실과 진범의 정체 등으로 채워집니다.

 

사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중반부쯤 이 작품의 반전 중 한 가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살짝 위화감이 드는 대목들이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반전을 눈치 챈다 하더라도 나머지 내용들이 예상대로만 전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 작품은 미스터리 자체보다 인물들의 일그러지고 고통스러운 심리와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누가, 왜, 어떻게’ 등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미스까지는 아니지만) 불편하면서도 애틋하고 씁쓸한 여운을 남기곤 하는 아시자와 요 특유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다만, 이런 구조의 작품을 여러 편 읽은 탓에 ‘신선함’을 만끽할 수 없었다는 점, 매번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여 온 아시자와 요가 이제는 다소 상투적이라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내세운 점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같은 소재나 주제라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전혀 새롭게 보일 수도 있긴 하지만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은 왠지 익숙한 이야기의 재탕이라는 인상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조금은 더 아쉽고 서운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시자와 요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서 저와 비슷한 아쉬움을 느낀 독자라면 색다른 괴담과 공포를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단편집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과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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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사냥 ㅣ 스토리콜렉터 108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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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분야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두 명의 천재, 로버트 헌터와 루시엔 폴터. 룸메이트이자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며 라이벌로서 함께 수학했던 두 사람은 세월이 흐른 뒤에 적이 되어 재회한다. 한 명은 로스앤젤레스 경찰국(LAPD)의 강력계 형사로, 또 한 명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연쇄살인범으로. 그러나 헌터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해 3년 반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루시엔은 자신의 오랜 복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잔혹한 살인과 함께 세상으로 탈주한다. 그리고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볼모로 다시 한 번, 자기가 설계한 ‘살인 게임’에 헌터를 끌어들이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악의 사냥’은 2022년에 출간된 ‘악의 심장’의 후속편으로, 희대의 연쇄살인마인 루시엔 폴터가 3년 반 만에 탈옥한 뒤 저지르는 끔찍한 연쇄살인과 그를 쫓는 LAPD 특수강력범죄수사대 로버트 헌터의 고통스런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대학시절부터의 두 사람의 오랜 악연은 ‘악의 사냥’에서도 꽤 상세히 소개되고 있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전작인 ‘악의 심장’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악의 사냥’은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대결, 즉 헌터를 겨냥한 루시엔의 복수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사연을 모르면 아무래도 제 맛을 즐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서를 뒤바꿔 읽어도 괜찮긴 합니다. 그럴 경우 ‘악의 심장’은 프리퀄이 되겠죠.)

 

루시엔은 지금까지 픽션에서 접한 그 어떤 연쇄살인마와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역대급 사이코패스입니다.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반 사이코패스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우선 족히 수백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그의 희생자들은 모두 다른 방법으로 살해된 탓에 3년 반 전 루시엔이 우연한 사고로 체포되기까지 그 어느 수사기관도 그가 저지른 수많은 살인 가운데 동일범의 소행으로 여긴 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희생자를 고르는 단계부터 범행 실행과정은 물론 범행 후에 느낀 감정들까지 꼼꼼하게 기록해놓은 53권의 ‘백과사전’은 그가 체포된 뒤 FBI의 필수교재가 될 정도로 그야말로 사이코패스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악마의 경전입니다.

 

“나는 학자야.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는 사이코패스야 그들의 수법, 속임수, 사고방식, 행동... 모든 걸 연구해. (중략) 나는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통제 불가한 내적 충동에 이끌리는 법이 없어. 즉, 내 행동의 모든 게 계획적이라는 뜻이지.” (p268)

 

루시엔에 맞서는 LAPD 특수강력범죄수사대 로버트 헌터는 월반을 거듭한 끝에 16살에 대학에 들어갔고 그가 23살에 쓴 박사학위 논문은 FBI의 필독서가 될 정도로 뛰어난 범죄심리 전문가입니다. FBI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LAPD의 강력계에서 일해 온 그는 특별히 잔혹하고 가학적인 살인사건과 연쇄살인의 수사를 위해 LAPD가 창설한 특수강력범죄수사대의 팀장에 올랐는데, 바로 그 시점에 20여 년 전 대학에서 악연을 맺은 루시엔과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반 전 가까스로 그를 체포해 영어의 몸이 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악의 사냥’은 3년 반 만에 탈옥에 성공한 루시엔이 헌터를 상대로 벌이는 게임이자 복수극을 그립니다. 루시엔은 철저한 계획에 의거하여 그가 지금까지 시도한 적 없는 엄청난 살육극을 벌이는 것과 함께 헌터를 돌아올 수 없는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만일 루시엔의 목표가 헌터를 죽이는 것이라면 진작 수백 번은 죽이고도 남았겠지만, 그는 고도의 범죄심리 전문가답게 헌터를 ‘죽이지 않고도 죽이는’ 방법을 택합니다. “영혼을 비운 다음 오로지 고통으로만 그 빈 곳을 다시 채우는, 즉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는” 방식으로 헌터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갑니다.

 

“내 계획은 네 삶과 항상 함께할 ‘죄책감’을 네 안에 불어넣는 거였어. 내면에서부터 너를 집어삼킬 죄책감, 네가 절대 없앨 수 없고 죽는 날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죄책감.” (p468)

 

‘악의 심장’이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잔혹한 연쇄살인 때문에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악의 사냥’은 고도의 심리전에 어울리는 비교적 느리고 완만한 서사를 통해 으스스한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립니다. 가끔 “뭘 이런 것까지 이렇게 상세하게 묘사하나?”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다 읽고 돌이켜보면 실은 그런 디테일들이야말로 루시엔과 헌터의 대결을 짜릿하고 팽팽하게 만드는 기초들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사건 자체는 몇 가지 없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는 것 역시 이런 디테일의 힘이라는 생각입니다.

 

후반부에 ‘로버트 헌터 시리즈’ 전체 목록이 소개됩니다. 모두 12편이 출간됐는데, ‘악의 심장’이 6편이고 ‘악의 사냥’이 10편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북로드에서 시리즈 전체를 순서대로 출간해줬으면 하는 건데, ‘악의 심장’과 ‘악의 사냥’이 호응을 얻는다면 조만간 헌터의 맹활약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사족이지만, 두 편 모두 잔인한 묘사가 꽤 심한 편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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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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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는 에도시대의 괴담을 다루는 ‘미야베 월드 2막’ 중에서도 가장 편수가 많은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입니다.

 

“에도 간다 미시마초에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는 흑백의 방이라는 객실에 손님을 초대하여 조금 특이한 괴담 자리를 마련해왔다. 이야기꾼이 한 명에, 듣는 이도 한 명. 하는 이야기는 하나뿐. (중략) 그 자리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만 그치고,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하여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듣는 이는 받아든 무거운 짐을 흑백의 방에서만 듣고 잊는다.” (p 9)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야기, 너무나 고통스럽거나 무서워서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 등 흑백의 방을 찾은 화자들의 사연은 듣는 것조차 사뭇 힘들고 괴로운 내용들입니다.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고.”라는 흑백의 방의 원칙은 이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화자는 이야기함으로써 고통과 번뇌를 버릴 수 있고, 청자(聽者)는 들어주긴 하지만 그것을 흑백의 방 밖으로 흘리지 않고 그대로 버릴 뿐입니다.

 

이 특이한 괴담 자리는 애초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인 17세 소녀 오치카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괴로운 기억을 품은 채 고향을 떠나 친척의 가게인 미시마야에 머물게 된 오치카는 “이 세상의 온갖 기구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며, 상처 입은 마음을 봉합하고 그 흔적을 안고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인 ‘눈물점’부터는 미시마야의 차남이자 오치카의 사촌인 도미지로가 청자의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청자이자 주인공으로서 세 번째 작품을 맞이했지만 도미지로는 여전히 어리숙하고 순진할 뿐입니다. 더구나 이번 수록작 세 편 모두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들이라 도미지로는 때론 대놓고 놀라거나 화자 앞에서 구토를 하는 등 숙맥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주사위와 등에

저주에 걸린 누나를 구하려다 그 자신이 저주에 걸려 오직 신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노름의 마을’에 끌려간 11살 소년 모치타로는 언젠가 현세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고용일꾼처럼 부지런히 일을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파국뿐입니다. 그날 이후로 모치타로는 웃는 방법을 잃은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아왔습니다.

 

②질냄비 각시

거친 강물을 오가는 나룻배 선장인 기요마루와 누이동생 오토비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는 질냄비로 인해 운명이 뒤바뀌고 맙니다. 그 질냄비 안에는 상상도 못할 기이한 것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③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입동 아침, 연못에서 건져 올린 시체가 되살아나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시체의 공격을 받은 인간은 시체와 똑같이 괴물이 돼버립니다. 17살 소년 신고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인간이 아닌 자’들과 대적합니다. 하지만 기괴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무수한 ‘인간이 아닌 자’들이 나타나자 큰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주사위와 등에’는 스토리는 전혀 다르지만 ‘미야베 월드 2막’ 중 ‘미인’ 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한 색감과 이세계 시공간을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질냄비 각시’는 전형적인 괴담이지만 거친 강물과 그곳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의 마력이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표제작인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는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미야베 미유키 표 좀비물’입니다. ‘미야베 월드 2막’ 중 ‘외딴집’과 ‘괴수전’이 저절로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한데, 스케일이나 여운 등 모든 면에서 두 작품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또한 “괴물과 나쁜 정치는 사람의 목숨을 뿌리째 베어내는 것으로는 똑같은 해악이다.”라는 작품 속 한 줄에서 감지할 수 있듯 흥미로운 사회파 호러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선지 다분히 후쿠시마 오염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다음 편에는 오염된 바다를 그린 사회파 호러를 기대하며”라는 삼송 김사장 님의 편집자 후기는 시원한 사이다처럼 읽혔습니다.)

 

‘미야베 월드 2막’은 저의 최애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도 ‘미시마야 변조 괴담’은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데, “다음 작품인 9권이 일본에서 예약판매 중이라 2024년 봄쯤에는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라는 편집자 후기를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들뜰 따름입니다. 아홉 번째 작품에선 미시마야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 청자였던 오치카의 출산, 오랜 시간 집을 나가있던 장남 이이치로의 복귀, 차남이자 현재 청자인 도미지로의 신상 등 미시먀야 전반에 크고 중요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과연 어떤 괴담들이 흑백의 방을 서늘하게 만들지, 그 괴담들이 미시마야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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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는 사람들 ㅣ 스토리콜렉터 107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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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경찰 최고의 인질협상가인 39세의 애비 멀린은 어느 날 아들이 납치됐다며 도와달라는 한 여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30여 년 전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함께 지내다가 대규모 참사에서 자신과 더불어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이든 플레처임을 알곤 깜짝 놀랍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애비는 당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든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아들 네이선 납치 사건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배후에 심상치 않은 사이비 종교집단이 존재한다는 걸 알곤 더욱 긴장합니다. 얼마 후 애비는 납치범이 이든의 딸이자 SNS 인플루언서인 개브리엘에게 집착하고 있음을 눈치 챕니다. 일반적인 납치와는 다른 행태를 보이는 범인 때문에 애비가 궁지에 몰린 무렵,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 현장에서 네이선의 흔적이 발견되어 애비를 큰 충격에 빠뜨립니다.

 

2020년 한국에 소개된 두 편의 ‘조이 벤틀리 시리즈’(‘살인자의 사랑법’, ‘살인자의 동영상’)를 읽고 마이크 오머의 팬이 됐지만 2년 넘게 후속작 소식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인질협상가 애비 멀린을 앞세운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돼서 다소 의외였습니다. 검색해보니 ‘조이 벤틀리 시리즈’는 3편인 ‘Thicker Than Blood’에서 종료됐고, 이후 ‘애비 멀린 시리즈’가 2022년까지 모두 세 편이 출간된 상태입니다. 어쩌면 ‘애비 멀린 시리즈’ 역시 3편에서 종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선 시리즈의 주인공 조이 벤틀리가 돌직구 스타일의 범죄심리학자라는 캐릭터 때문에 매력적이었다면 새로운 주인공 애비 멀린은 언론에도 여러 차례 노출될 정도로 유능한 인질협상가이자 골칫덩이 남매 때문에 고달픈 싱글맘이자 30여 년 전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성장하다가 죽음의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났던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라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애비가 맡은 사건의 배후에 신흥 사이비 종교집단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아직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녀가 어떤 태도로 사건을 대할지 궁금증을 증폭시킵니다. 또한 충성도 높은 추종자를 거느렸다는 점에서 사이비 교주와 일면 닮은꼴이라 할 수 있는 SNS 인플루언서의 이야기가 병행되어 더욱 흥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두 우상(사이비교주, SNS 인플루언서)과 그들의 맹종자들(추종자, 팔로어) 사이에 놓인 어둠의 미로”라는 출판사 소개글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이 벤틀리와 마찬가지로 애비 역시 형사가 아닌데다 인질협상가라는 캐릭터를 부여받은 탓에 그녀의 주된 활약은 ‘입’을 통해 발휘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애비는 파트너인 뉴욕경찰청 형사 조너선 카버와 함께 형사 못잖은 활약을 펼칩니다. 탐문은 물론 필요할 때는 고글과 글록을 휴대하고 적진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뒤 적절하고 신속한 상황 판단을 해야 하는 인질협상가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말하자면 추리도 잘 하고, 행동도 민첩하고, 협상까지 잘 하는 완벽한 주인공입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긴 하지만 소년 납치사건이 중심이다 보니 여러 명의 참혹한 희생자가 발생했던 ‘조이 벤틀리 시리즈’에 비해 사건성은 다소 약합니다. 또한 30여 년 전 애비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겪었던 과거사도 적잖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10대 남매를 키우는 고달픈 싱글맘 사연까지 심심찮게 등장해서 마이크 오머 특유의 잔혹한 스릴러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조금은 싱겁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제대로 맛볼 수 없는 인질협상가의 고뇌와 결단과 고도의 심리전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며, 그런 면에서 ‘조이 벤틀리 시리즈’와는 사뭇 결이 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슈퍼 히로인이 아니면서도 캐릭터의 힘을 최대치로 발휘하는 애비 멀린의 매력은 이 작품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압권입니다.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떡밥을 남겨놓은 채 마무리됩니다. 그 떡밥이 애비의 과거 트라우마와 연결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건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인지는 후속작이 나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벌써부터 출간소식이 기다려지는 건 저만의 기대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조이 벤틀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Thicker Than Blood’도 꼭 출간됐으면 하는 점입니다. 피해자의 피를 마시는 무자비한 소시오패스가 등장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를 상대하는 조이의 마지막 활약은 꼭 지켜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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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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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인 19세 소년 류타는 어느 날 자기 눈앞에서 손목을 그은 소녀 유리코와의 인연 덕분에 고교 야간부에 입학합니다. 류타는 또래인 다이고와 가까워지고, 그가 숙식을 해결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활용품점 겸 심부름센터 ‘달나라’에 드나듭니다. 다이고를 고용한 사장 할머니는 고집쟁이에 안하무인이지만 류타는 ’달나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다이고와 친해지고 조금씩 은둔형 외톨이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또한 ‘달나라’에 의뢰 들어온 괴팍한 사건들을 해결하기도 하는데, 그러던 중 11년 전에 벌어진 참혹한 가족 몰살사건과 연결되고 맙니다.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년, 용의자로 몰렸다가 자살하고 만 한 남자의 어머니, 그리고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져있는 경찰을 지켜보며 류타는 이제는 아무런 단서도 남아있지 않은 오래 전 사건에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연작단편집 ‘소녀들은 밤을 걷는다’로 처음 만나 홀딱 빠진 뒤로 ‘어리석은 자의 독’, ‘전망탑의 라푼젤’, 그리고 ‘밤의 소리를 듣다’까지 한국에 출간된 우사미 마코토의 작품은 모두 읽었습니다. 정통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어둡고 불길하면서도 애틋함이 녹아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적인 서사 때문에 매번 긴 여운을 느끼며 책장을 덮곤 했습니다. 하지만 ‘밤의 소리를 듣다’는 기대했던 우사미 마코토 특유의 맛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탓에 처음으로 평점에서 별 1개를 빼게 됐습니다. 고백하자면, 중반쯤을 지날 땐 “우사미 마코토 작품에 별 3개를 줄 수밖에 없는 건가?”라는 불안함까지 들었던 게 사실인데, 중반 이후에야 기대했던 분위기와 서사가 펼쳐지면서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시작은 “역시 우사미 마코토!”라고 할 만큼 매력적입니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똑똑한데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죽음에 너무 친숙해져 버린 은둔형 외톨이 류타가 ‘습관성 리스트 커터’, 즉 수시로 손목을 긋는 여학생 유리코와 대면하는 장면은 우사미 마코토 특유의 분위기가 진하게 배어 있어서 이후 전개될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하지만 유리코에 이끌려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교 야간부에 들어간 뒤로 류타의 행보는 ‘그저 그런 일상 미스터리’ 속 캐릭터가 되고 맙니다. 또한 자신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다이고와 친해지고 ‘달나라’에서 소소한 미스터리들을 해결하면서 그동안 어리석게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는 전형적인 ‘청소년 성장물’의 주인공으로도 보입니다. 사실 이 지점을 읽을 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그저 그런 일상 미스터리들’이 중반 이후에 펼쳐질 류타의 진짜 미션, 즉 11년 전 가족 몰살사건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재료들로 밝혀지긴 하지만, 우사미 마코토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그녀의 진면목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11년 전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우사미 마코토는 자신의 장점과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운명, 악연, 악의, 회한, 죽음 등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들을 류타와 여러 조연들을 통해 진하고 농밀하게 그립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밤의 소리’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여러 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인간 내면의 어둠을 교묘하게 드러내는 재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라는 출판사 소개글이 결코 과장이 아님은 바로 이 지점부터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미스터리의 클라이맥스가 다소 설명적인 점이 아쉽긴 했지만, 그 대목에서 독자의 관심은 “누가 범인?”보다는 류타와 여러 조연들이 감내해야 할 가혹한 운명에 쏠려 있기 때문에 크게 거슬려 보이진 않았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에 아쉬움도 남긴 했지만 그래도 머잖아 또다시 그녀의 새 작품 출간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이 작품이 아쉬웠음에도 불구하고 우사미 마코토의 매력을 제대로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어리석은 자의 독’과 ‘소녀들은 밤을 걷는다’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우사미 마코토의 작품이 10여 편에 이르지만 그녀의 진면목을 드러내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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