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의 얼굴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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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탐사보도 기자 스기야마 고헤이는 한 부부의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을 심층 취재한다.

방은 온통 피바다였지만 정작 부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탓에 수사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결국 유력한 용의자로 젊고 아름다운 제수씨를 탐내던 형 타츠야가 지목돼 체포됐지만,

명백한 증거와 단서가 없는 탓에 그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자유의 몸이 된다.

하지만 스기야마가 취재를 시작한 이후 용의자 또는 사건 관계자들이 연이어 죽어나간다.

그들은 누구를 두려워하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스기야마는 진실을 파헤치며 교활하게 가려진 진범에게 바짝 다가가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피해자가 사라져 미궁에 빠진 사건을 열혈 기자가 취재하며 진실을 캐는 이야기’란 점에서

마에카와 유타카의 전작들과는 달리 꽤 서사가 간결하고 선명한 편입니다... 라고,

적어도 클라이맥스 부근까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역시 마에카와 유타카는 친절하거나 대중적이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찜찜하고 (독자에 따라) 불쾌감마저 느껴지는 엔딩을 남겨놓았습니다.

이 작품 전까지 그의 작품을 모두 번역한 이선희 님은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의 후기에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물음표로 시작해서 물음표로 끝난다는 점이다.”라고 언급했는데,

이 특징은 한국에 출간된 그의 모든 작품에 해당하는 코멘트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으로 처음 만난 이후 마에카와 유타카의 팬이 됐는데,

물음표, 찜찜, 불쾌 등의 태그를 달 수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신선해 보이는 서사가 무척 매력적이라 그의 후속작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출간된 작품마다 물음표, 찜찜, 불쾌의 정도는 점점 높아진 반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만족도는 거꾸로 조금씩 낮아져서 아쉬워하던 와중에

‘진범의 얼굴’은 제법 대중적인 초반 설정이 오히려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딘가 기분 나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 문장마다 배어있었고,

‘동생의 아내에게 욕망을 품은 끝에 동생 부부 살인범으로 체포된 형’이 등장하는데다,

조연들마저 관음증, 근친상간, 일그러진 성욕, 폭력성 등 불편한 캐릭터들로 채워진 탓에

“역시 마에카와 유타카네.”라는 탄식과 함께 절대 대중적인 이야기가 아닐 것임을,

또, 사건이 결코 명쾌하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스기야마는 경찰보다 뛰어난 추리와 탐문으로 많은 정보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름 범인의 윤곽과 범행방법까지 유추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정황증거에 기초한 것이었던 만큼

스기야마의 기록은 대부분 ‘추정’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름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고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즈음,

자신이 취재했던 인물들이 자살 혹은 타살의 형태로 연이어 사망하고,

유력한 단서를 입수했음에도 사건과의 접점을 찾아내지 못하자 스기야마는 좌절합니다.

 

이런 식의 전개는 일반적으로 막판 반전을 통해 주인공의 그간의 노력을 보상하기 마련인데,

‘진범의 얼굴’은 그것과는 사뭇 상이한 전개와 엔딩을 내놓습니다.

물론 이런 전개와 엔딩이 훨씬 더 현실감을 지닌 건 사실이지만,

미스터리 픽션을 찾아 읽는 독자에겐 다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저 역시 마에카와 유타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매번 겪는 참 당황스런 경험인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제 더는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면,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범죄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탐사 보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 라는 홍보 문구가 있던데,

읽는 내내 이 작품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든 적이 없습니다.

스기야마가 변호사 또는 동료 기자와 이런 주제를 놓고 잠깐 논쟁을 벌이긴 하지만,

그건 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양념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작가가 이런 의도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면 설계 자체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고,

전적으로 독자를 향한 홍보용 문구라면 다소 초점이 어긋났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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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이브 - 코드네임 빌라넬
루크 제닝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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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사이코패스이자 최고의 킬러’ 대 ‘최적의 요원이자 최선의 추적자’라는 홍보카피대로

이 작품에는 킬러와 그를 추적하는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흔치 않게 킬러(빌라넬)와 요원(이브) 모두 여성 캐릭터로 설정됐는데,

특히 제목 자체가 ‘킬링 이브’라는 점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러시아 폭력조직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수감된 옥사나는

교도소를 찾아온 의문의 사내에게 스카웃된 뒤 빌라넬이라는 이름의 킬러로 변신합니다.

소위 ‘12사도’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의 지시에 따라 무자비하게 암살을 수행하는 빌라넬은

살인과 양성애 섹스를 통해 쾌감을 만끽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사이코패스 킬러입니다.

한편, 정보국 요원이긴 하지만 실은 사무직에 가까운 ‘경호 리스트 작성자’였던 이브는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진 러시아 정치인의 암살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나름 충실하게 유지해온 정보국에서의 지위가 밑바닥부터 흔들릴 위기에 처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암살자 추격을 지시 받은 이브는 단지 ‘암살자가 여자’라는 단서에서 출발하여

전 세계에서 발생한 주요 암살 사건을 추적하던 중 빌라넬의 흔적을 찾아냅니다.

 

일단 돌직구 같은 캐릭터와 스토리 때문에 페이지는 빛의 속도로 넘어갑니다.

300페이지도 채 안 되는 분량이라 페이지 넘기는 게 아까울 정도인데,

이 얘기를 뒤집어 말하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나 예상치 못한 반전 등

액션 스릴러로서의 미덕은 다소 떨어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빌라넬의 암살은 (매번 결코 쉬운 상황들은 아니지만) 너무 쉽게 성공합니다.

미션에 따라 신분을 바꾸고, 현장에 잠입하고, 순식간에 상대를 제거하는 모든 과정이

“이렇게 쉬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반 이후까지 반복됩니다.

물론 그녀에게도 위기는 찾아오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눈치 챈 자들과 조우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녀는 ‘너무 완벽한 킬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브의 경우, 애초 사무직에 가까운 정보요원에서 본격적인 추적자로 변신하게 되는데,

그 과정 역시 대체로 무난하고, 상투적이고, 어찌 보면 다소 비현실적입니다.

남편과 평범한 가정을 이룬 채 좀더 큰집에 살기를 바라는 전형적인 캐릭터지만

느닷없이 ‘믿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부로부터 희대의 킬러를 추적하라는 지시를 받는데,

아무래도 우여곡절이라든가 극적인 포인트가 없어서 쉽게 이입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물론 ‘킬러와 요원’이 등장하는 액션 스릴러로서의 미덕은 충분히 갖춘 작품입니다.

빌라넬의 과거(킬러로 변신하는 과정)와 현재(엄청난 미션 수행 능력)는 재미있게 읽히고,

거침없이 질주하던 빌라넬이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하는 변곡점도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빌라넬과 정체불명의 조직에 대해 이브가 조금씩 다가가는 대목은

(어쨌든 좀 쉬워 보이긴 해도) 나름 진정성이 엿보여서 이후의 전개를 궁금하게 만듭니다.

또, 잔혹한 폭력 묘사에 못잖은 수위 높은 선정성은 때론 과도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닌 빌라넬의 캐릭터를 탄탄하게 만드는 설정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건, 설정만 놓고 보면 분권을 해도 충분할 정도의 방대한 서사인데

이렇게 짧은 분량 안에 이야기가 마무리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점입니다.

거의 마지막 장에 이를 즈음에야 이야기가 완결되는 작품이 아니라

일종의 ‘시즌 1’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게 됐는데,

아쉬운 점이라면 애초 작품 소개에 이런 사실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미드나 일드를 한 번에 몰아보는 취향인 저로서는 마지막 장을 덮기가 무척 아쉬웠는데,

영국에서 이 작품의 후속작이 출간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빌라넬과 이브가 본격 대결을 펼칠 다음 이야기가 조만간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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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ㅣ 스토리콜렉터 7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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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시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개구리 남자 50음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열 달.

당시 유력한 용의자와 몸싸움 끝에 큰 부상을 입었던 고테가와는

개구리 남자의 귀환이라 부를만한 연쇄살인이 수도권에 걸쳐 재현되자 충격에 빠진다.

특히 당시 범인으로 몰렸던 도마 가쓰오가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는 소식에

고테가와는 사수이자 파트너인 와타세와 함께 돌아온 개구리 남자 체포에 전력을 다한다.

하지만 폭탄, 황산, 지하철, 파쇄기 등을 이용한 엽기적인 범죄는 연이어 일어나고

개구리 남자는 예의 범행 내용을 적은 메모만 남겨놓은 채 경찰과 시민들을 공포에 빠뜨린다.

 

● ● ●

 

전작인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를 재미있게 읽은데다 엔딩에서 또 다른 살인을 예고했기에

언제나 후속작이 나올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출간돼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던 사이타마 현경의 고테가와는 불편하긴 해도 건강을 되찾았고,

그의 사수이자 파트너인 와타세 경부는 여전히 까칠하면서도 능력자의 포스를 발휘합니다.

10달 만에 다시 나타난 개구리 남자의 살인극은 전편을 능가할 정도로 잔혹했고,

한노시에만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수도권 전체에서 희생자를 만들어냅니다.

초반부터 유력한 용의자가 밝혀지지만 도무지 행적을 알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자

고테가와와 와타세는 예전의 희생자 유가족과 관련자들을 탐문하며 단서를 얻으려 애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선, 전작을 안 읽은 독자는 이 작품 속 인물, 사건, 관계를 제대로 음미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였다가 혐의를 벗은 뒤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도마 가쓰오,

그의 보호관찰관이자 멘토였지만 충격적인 비밀을 안고 있던 피아노 교사 사유리,

그리고 딸과 손녀를 참혹하게 잃었던 정신과 교수 오마에자키 등

전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이 고스란히 다시 등장하는데,

이들 간의 악연을 이해 못한 상태에서는 이 작품의 진가를 맛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결론은, 역시 ‘전편만한 후속편은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참혹한 살인과 연이은 반전, 누가 진범인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던 전개 덕분에

나카야마 시치리의 방대한 저작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었던 전작에 비해

귀환한 개구리 남자를 다룬 이 작품은 다소 산만하고 단선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테가와와 와타세는 탐문 이상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사건현장을 전전하기만 하는데,

그에 비해 ‘심신미약 상태의 범죄자에 대한 처벌’, ‘일본의 의료교도소의 열악한 현황’,

‘경찰 및 사법행정의 문제’, ‘언론과 인터넷이 퍼 나른 공포’, ‘가해자의 인권에 대한 논쟁’ 등

다분히 강의에 가까운 장황한 설명이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클라이맥스에서부터 엔딩까지였는데,

결정적인 시퀀스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아 불안하던 와중에

너무 쉽고 안이하게 진범의 정체와 사건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아쉬움이 배가됐습니다.

마치 분량을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엔딩을 짜맞춘 느낌이랄까요?

나카야마 시치리의 특기이자 전작에서 맛봤던 짜릿한 반전과 충격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귀환한 개구리 남자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에 대한 상세한 기술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강의 외에는 딱히 후속작으로서의 미덕이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소소한 재미라면 카메오처럼 등장한 두 캐릭터를 지켜보는 일이었는데,

한 명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대표 캐릭터 중 한 명인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이고,

또 한 명은 ‘세이렌의 참회’에 등장했던 여기자 아사쿠라입니다.

미코시바는 이 작품 속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사유리의 변호인으로 등장하는데,

실은 미코시바와 사유리는 ‘미코시바 시리즈’의 첫 편인 ‘속죄의 소나타’에 함께 등장했고,

미코시바는 소년원에서 만난 사유리의 피아노 덕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또, 여기자 아사쿠라는 와타세와 잠깐 마주치는 딱 한 장면에만 등장하긴 하지만,

범죄보도에 대한 경찰과 언론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런 식의 카메오를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조연이나 단역도 잘 기억해놓고 있다 보면 생각지 못한 재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쉬움 역시 그만큼 컸는데,

생각해보면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이 모두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고테가와와 와타세가 그들과 제대로 된 접점 하나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수사 따로, 범인 따로’였던 탓에 긴장감이 생기기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작가는 또 다른 후속작의 여지를 남겨놓긴 했는데,

혹시 개구리 남자가 다시 귀환한다면 이런저런 아쉬움을 지울 수 있는,

나카야마 시치리만의 특기가 잘 배어있는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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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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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달린 어둠’에서도 어느 정도 맛보기는 했지만,

주인공 메르카토르 아유의 진정한 재수 없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자아도취 기질,

그리고 사건 현장 도착과 동시에 진상을 파악해내는 신출귀몰함은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메르카토르 아유의 캐릭터를 단 한 줄로 잘 요약해놓았는데,

“메르카토르 아유 가라사대, 내 말은 곧 정답이다.”가 그것입니다.

 

턱시도, 나비넥타이, 실크해트로 치장한 명탐정 메르카토르와

조수이자 친구이며 늘 구박당하고 무시당하는 추리소설 작가 미나기 산조 콤비가 활약하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죽은 자를 깨우다’는 별장 카레장에 놀러갔던 고교생들 사이에서

1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변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규슈 여행’은 이른 새벽 미나기의 옆집에서 발견된 변사체 사건을,

‘수렴’은 종교단체가 머무는 섬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대답 없는 그림책’은 지진이 일어난 직후 고교 건물에서 한 인물이 살해된 사건을,

‘밀실장’은 밀실이나 다름없는 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변사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약해놓은 설정들만 보면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다룰 법한 보편적인 소재들이지만,

작가는 일반적인 ‘진범 찾기’와는 전혀 다른 전개와 해결방식을 택합니다.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물론 시간대와 장소까지 알면서도

주인공이 사건 해결을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 방치하는 경우도 있고,

변사체를 앞에 두고 소설의 소재로 삼기 위해 이리저리 ‘창작’을 일삼는가 하면,

심지어 “살인사건은 맞지만 범인은 없다.”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배신감과 쾌감을 함께 안겨주는 작품’이라는 인터넷 서점의 소개 글을 본 순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위화감의 실체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상식적이지 못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뒤통수를 맞은 듯 쾌감을 느낀 작품도 있지만,

다 읽은 뒤 배신감은 물론 불쾌한 기분까지 든 작품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흐트러진 퍼즐 조각들처럼 복잡하게 널려있던 단서들이

메르카토르의 빈틈없는 추론과 눈썰미 덕분에 하나씩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쾌감 이상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진범은 누구인가?’라는 당연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무시한 채

“내가 그리 말했으니, 그것이 정답이다.”라는 식의 엉뚱한 궤변만 늘어놓으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낸 채 마무리할 때는 말 그대로 배신감과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호감을 느낀 작품을 꼽아보자면, ‘수렴’과 ‘규슈 여행’인데,

탐정 메르카토르의 매력과 작가 마야 유타카의 필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수작이었습니다.

 

일본 아마존 리뷰 가운데, “평범한 추리소설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없다.”

“부조리한 결말, 정말 이걸로 끝인가?”라는 꽤 비판적인 언급들이 많이 있는데,

수록된 모든 작품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아무튼...

“과정이야 어쨌든 진범은 명쾌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믿는 분들께는 비추,

엉뚱하거나, 독특하거나, 본 적 없거나, 그야말로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분들께는 강추,

이것이 ‘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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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프로젝트 -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
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 조영학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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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잔혹한 이야기를 다룬 것 같은 분위기의 제목과 달리

‘블러디 프로젝트’는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이면서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라는 부제 역시 이 작품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869년 스코틀랜드의 한 소작지에서 벌어진 참혹한 살인사건이 메인 스토리이긴 하지만,

목격자들의 진술, 범인 스스로 범행을 자술한 비망록, 범죄인류학자의 정신감정 보고서,

그리고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과 증인들의 증언을 담은 재판일지 등으로 구성돼있어서

비밀과 추리와 반전이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범죄소설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번역하신 조영학 님도 ‘옮긴이의 말’에서,

“곧바로 범인이 자수하며, 범인이 바뀔 정도의 갈등이나 반전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처음 번역 작업을 한 후 당황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응? 왜 이렇게 밋밋하지?’”, 라며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을 서술할 정도였습니다.

 

지주와 마름과 소작인이라는 계급이 존재하던 1869년의 스코틀랜드 북부의 작은 마을 컬두이.

아홉 가구에 55명밖에 살지 않는 이 작고 빈곤한 마을에 살던 17살 소년 로더릭 맥레이는

부당한 완장질을 휘두르며 자신의 가족들을 괴롭히던 라클런 매켄지 일가를 살해합니다.

체포 직후 범행을 자인한 그는 변호사의 권유로 사건 관련 이야기를 비망록으로 작성합니다.

한편, 변호사는 맥레이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려고 애쓰고,

그를 위해 범죄인류학의 권위자까지 초빙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정작 맥레이는 재판정에서마저 특별히 선처를 바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고백하자면, 중반쯤 이르렀을 때 이 작품이 평범한 범죄소설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즉, 비밀과 반전과는 무관한 ‘보고서’ 같은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면서

몇 번이고 중도 포기할까 고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묘하게 시선을 끄는 맥레이의 불행한 개인사 때문에 결국 끝까지 읽게 됐는데,

극빈층에 가까운 19세기 말 스코틀랜드 소작농의 비참한 삶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라든가,

지주-마름-소작인으로 이어지는 계급사회의 비정함과 잔혹함,

17살 소년의 소극적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욕망 등이 매력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역시 비밀과 반전이 없는 보고서에 가까운 소설이란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번역하신 조영학 님은 “(이 작품은) 범죄 소설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소설이다.

누가 범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범죄를 저질렀으며,

맥레이를 비롯해 어느 증인의 말을 믿을 수 있느냐가 소설의 핵심.”이라고 변호(?)하셨지만,

‘왜?’는 그다지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지 않았고,

‘누구 말을 믿을 수 있느냐?’ 역시 단선적인 묘사에 그친 탓에

이 작품만의 미덕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크게 보면 두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성장기와 범행 전후의 정황을 고백한 맥레이의 비망록이고,

또 하나는 맥레이의 정신적 이상을 입증하려는 변호사의 고군분투기입니다.

하지만 범인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변호사는 범인과 특별한 관계도 아니고 범인의 정신적 이상을 확신하는 것도 아닌데다,

대중들의 시선을 끈 이 사건을 통해 변호사로서 성공하겠다는 욕망을 지닌 것도 아니다 보니

두 개의 이야기가 아무런 접점 없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밖에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2016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로 지명된 것은 물론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걸 보면 특별한 미덕이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대중적인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선

(번역자와 마찬가지로) 다소 당혹스런 책읽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꽤 호불호가 갈릴 이 작품에 대해 다른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척 궁금한데,

그래서인지 인터넷 서점이나 블로그의 서평을 꼭 찾아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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