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게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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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이션 살인, 즉 여러 범인들이 가담한 교환살인으로 보이는 세 개의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피살자들이 사람을 죽이고도 제대로 된 벌을 받지 않았던 전과자라는 공통점이 드러나면서 경시청 수사1과 닛타 고스케는 과거 사건 피해자 유족들의 사적 복수를 의심합니다. 그런 가운데 유족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 일제히 투숙하자 경시청은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질 거란 확신을 품곤 닛타를 포함한 대규모 인원을 위장 잠입시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만나기는커녕 서로를 모르는 척 할뿐이고, 딱히 범행을 모의하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동시에 투숙한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닛타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 때문에 큰 위기에 봉착합니다.


 

(시리즈 프리퀄인 2매스커레이드 이브를 제외하고) 세 번째로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의 프런트 직원으로 위장 잠입한 덕분에 이제 형사 못잖게 호텔리어로서의 품격까지 갖춘 닛타 고스케. 하지만 가족을 참혹하게 잃은 유족들이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가해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사적 복수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전작에서 잠시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을 떠났던 베테랑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는 총지배인의 요청으로 긴급히 복귀하여 닛타의 수사를 돕습니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간파할 수 있게 된 닛타와 나오미지만, 역시 고객의 가면을 지키려는 호텔리어그 가면을 벗겨내 진상을 캐내려는 형사로서의 갈등은 여전합니다.

 

닛타와 나오미 외에 독자의 주목을 끈 인물은 경시청 수사1과 팀장인 아즈사 경감입니다. 남녀차별이 횡행하는 경시청에서 오로지 능력으로 팀장 자리에 오른 아즈사는 닛타와는 사건을 대하는 태도, 수사 기법, 정의감 등 여러 면에서 대립하는 인물로, 결과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주 형사입니다. 호텔에서의 위장 잠입 수사라는 특별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즈사는 닛타와 번번이 대립하며 무리수를 두는데, 대부분의 독자는 그런 아즈사가 닛타에게 제대로 한 방 먹겠구나, 기대를 하게 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뜻밖의 전개를 통해 닛타와 아즈사만의 흥미로운 서사를 이끌어냅니다.

 

단순한 교환살인이 아니라 여러 인물이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로테이션 살인, 피해자 유족에게 큰 상처를 남긴 사법부의 부당하고 가벼운 형량, 그로 인해 빚어지고 만 사적 복수, 그리고 언제나 무거울 수밖에 없는 속죄와 용서라는 주제 등 매스커레이드 게임은 앞선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제 취향에 맞는 소재들을 다루고 있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히가시노 게이고 표 정통 미스터리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진범의 정체와 동기가 드러나는 대목에선 지금까지 읽은 사적 복수 미스터리의 결말과는 사뭇 다른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며 눈가가 뜨끈해질 정도였습니다. 또한 앞선 작품들이 호텔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강조한 액션 스릴러 스타일의 미스터리였다면, ‘매스커레이드 게임은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을 집요하게 그린 덕분에 몰입감이 훨씬 더 강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편인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의 서평에 닛타 역시 새로운 모습을 보이거나 새로운 상황에 부딪힐 때가 된 듯해서, 다음 작품에선 과연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궁금해집니다.”라고 쓴 적 있는데, 이야기 막판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변화가 닛타에게 찾아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작품 이후 3년이 지나 출간된 최신작 매스커레이드 라이프’(일본 2025, 한국 2026년 출간)에선 그런 큰 변화를 겪은 닛타의 전혀 새로운 모습이 그려질 텐데, 과연 닛타와 나오미가 어떤 사건과 위기를 다시 한 번 함께 헤쳐 나갈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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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나이트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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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이 원룸에서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던 경시청 수사1과는 어느 날 익명의 밀고장을 받습니다. 범인이 1231일 밤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열리는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 일명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같은 호텔에서 연쇄살인범을 체포했던 닛타 고스케를 위시하여 대규모 잠입 작전이 시작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수백 명의 파티 참가자가 가면과 코스튬 차림이라는 점. 닛타와 수사팀은 파티 사흘 전부터 투숙객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지만 밀고자의 의도도, 범인이 진짜 나타날지도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황입니다. 베테랑 호텔리어이자 몇 년 전 사건에서 닛타의 파트너로 활약했던 야마기시 나오미는 또다시 호텔에서 벌어진 강력사건에 초긴장 상태에 돌입합니다.

 


시리즈 명 매스커레이드는 가면 또는 가면무도회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누구나 어떤 이유로든 가면을 쓰고 살기 마련인데, 특히 호텔이라는 공간은 가면의 필요성이나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곳이며, 살인사건 같은 이례적인 상황이 예고된 경우라면 더더욱 가면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위장의 수위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호텔을 찾은 고객의 가면을 벗겨내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와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고객의 가면을 지켜내려는 호텔리어가 이끌어가는 이야기지만, 살인사건이 예고된 호텔이라는 공간 자체가 세 번째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미스터리의 무대 자체가 가면무도회라는 점에서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는 이 시리즈의 작의가 가장 충실하게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자지만 공명심과 오만함으로 똘똘 뭉쳤던 경시청 수사1과 엘리트 형사 닛타는 이제 조금은 둥글둥글해진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베테랑 호텔리어로서 프런트를 지키던 나오미는 컨시어지(고객의 다양한 희망사항과 요청을 들어주는 역할)가 되어 좀더 고객과 밀착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몇 년 만에 또다시 호텔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재회한 두 사람은 사건의 규모나 중대성 때문에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갈래로 전개됩니다. 닛타를 위시한 잠입수사팀이 고객 하나하나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며 파티 당일에 벌어질지 모르는 참극을 대비하는 한편, 관할서 형사였다가 경시청 수사1과로 영전된 중년형사 노세가 닛타와 협력하며 20대 여성 살인사건의 배후를 조사합니다. 그리고 연말 가면무도회를 위해 몰려든 수많은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응대하는 호텔리어 나오미의 기지 넘치는 활약이 병행됩니다.

 

556페이지라는 적잖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페이지는 빠른 속도로 넘어갑니다. 닛타와 나오미와 노세가 번갈아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며 악전고투하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또한 밀고자의 의도도, 범인의 살해동기도 마지막까지 오리무중이라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 증폭시킵니다. 가면무도회가 열린 연회장에서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끝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대목에선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반전의 맛과 씁쓸한 여운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호텔을 찾은 고객들의 사연과 그에 응대하는 나오미의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한 점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없어도 되는 인물은 없고, 미스터리 구도 상 꼭 필요한 설정이기도 했으며, 그 많은 고객 가운데 밀고자 혹은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궁금증을 쉴 새 없이 자아낸 건 사실이지만, 다소 과해 보인 게 사실입니다. 막판에 밝혀진 밀고자와 범인의 정체, 그리고 진실의 수위가 꽤 높고 독해서 고객들의 이야기분량만 약간 조절됐더라면 훨씬 더 밀도 높은 작품이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줄거리는 전혀 기억이 안 났지만, 읽는 도중 예전에도 비슷한 아쉬움을 느꼈던 일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막판에 나오미의 신상에 큰 변화가 예고됐는데, 후속작인 매스커레이드 게임은 아직 읽은 적이 없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닛타 역시 새로운 모습을 보이거나 새로운 상황에 부딪힐 때가 된 듯해서, 다음 작품에선 과연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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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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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주제 하에 호텔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손님의 가면을 지켜내는 호텔리어와 그것을 파헤치는 형사가 이끌어가는 독특한 미스터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호텔리어로 위장했던 경시청 수사1과의 엘리트 형사 닛타 고스케와, 베테랑 호텔리어이자 닛타의 파트너로 활약했던 야마기시 나오미의 두 번째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는데, 뜻밖에도 시리즈 2편인 매스커레이드 이브는 두 주인공의 프리퀄을 그리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1편에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의 과거를 그렸다는 뜻인데, 서로를 모르던 각자의 과거가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뒷표지 소개글대로) 만난 듯 안 만난 듯한 흥미로운 설정과 전개 덕분에 마치 한 공간에서 함께 활약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닛타는 갓 경시청 수사1과에 들어온 신입으로, 나오미는 이제 4년차에 접어든 막 신참 딱지를 뗀 프런트 직원으로 등장합니다.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첫 번째와 세 번째 수록작이 나오미의 이야기를, 두 번째 수록작이 닛타의 이야기를,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수록작이 두 사람이 간접적으로 얽히는 살인사건을 다룹니다.

 

뼛속까지 진정한 호텔리어인 나오미는 손님의 가면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가면 아래의 민낯을 파악해내는 특별한 재능을 갖췄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눈치 채지 못하는 손님의 특별한 사연을 포착하기도 하고, 그들이 감추고자 하는 비밀도 어렵지 않게 알아내는 명탐정의 기질을 발휘하곤 합니다. 나오미가 맞닥뜨린 사건들은 일상 미스터리 수준의 가벼운 해프닝들이지만 그것들을 해결하고 마무리짓는 과정은 결코 쉽지도, 가볍지도 않습니다.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휴머니즘 미스터리의 맛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뛰어난 능력자지만 공명심과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캐릭터로 등장했던 닛타는 신입 시절부터 선배 형사로부터 건방지고 왠지 밉살맞은 녀석이지만, 역시 머리가 진짜 뛰어납니다.”라는 평을 듣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신입 주제에 상관에게 정보 공유를 요구하는가 하면, 자신의 공을 채가려는 선배에게 대놓고 항의하기도 합니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 역시 독특해서, 그는 여느 경찰 미스터리 주인공과 달리 단서 자체보다 기발한 상상력을 추리의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억지스럽거나 납득하기 힘든 비약이 아니라 듣고 보면 정말 그럴듯한 추리라서 소설 속 인물들은 물론 독자마저 저절로 수긍하게 만듭니다. 얄밉지만 정감도 가고, ‘기발한 상상력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흥미로운 경찰 캐릭터라고 할까요?

 

성격, 취향,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닛타와 나오미의 과거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더 높여줬습니다. 이미 한 번 읽은 이야기인데도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처음 읽는 듯 생소한 게 사실인데, 덕분에 후속작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서 연쇄살인사건 이후 재회하게 될 닛타와 나오미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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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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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간에 연관성도 없고, 수법도 제각각이지만 현장에 남겨진 기이한 숫자들 때문에 동일범에 의한 소행으로 보이는 연쇄살인이 일어난 가운데, 경시청은 다음 사건 현장으로 추정되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 형사들을 위장 잠입시킵니다. 프런트 직원으로 변신한 수사1과의 엘리트 형사 닛타 고스케는 베테랑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와 번번이 충돌하는 것은 물론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호텔에서의 하루하루가 답답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그러던 중 범인의 정체와 의도를 간파한 닛타는 한때 파트너였던 관할서 중년형사 노세와의 협업을 통해 조금씩 진상에 다가가는데, 그 와중에 범인이 주말에 호텔에서 열릴 결혼식을 노리는 것으로 드러나자 최고의 긴장 상태에 돌입합니다.



2012년에 한국에 출간된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가가 교이치로(가가 형사 시리즈)와 유가와 마나부(갈릴레오 시리즈)에 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 번째 주인공 닛타 고스케의 첫 등장을 알린 작품입니다. 최근(2026)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인 매스커레이드 라이프가 한국에 소개됐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엄청난 생산력(?)으로 볼 때 14년 동안 다섯 작품이면 다소 의외다 싶긴 하지만, 또 그만큼 작가가 애정을 품고 꾸준히 키워가는 시리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본 출간 역시 매스커레이드 호텔2011, ‘매스커레이드 라이프2025년입니다)

 

연쇄살인이지만 연쇄살인 같지 않은 기이한 사건, 경시청 형사들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호텔리어 위장, 메인 사건과 연관 없는 듯 보이면서도 결코 대충 읽어 넘길 수 없는 호텔리어와 고객 사이의 다양한 트러블, 그리고 두 주인공 닛타 고스케와 야마기시 나오미 사이의 갈등-충돌-협업으로 이어지는 미묘한 분위기 등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살인사건 미스터리 외에도 눈길을 끄는 여러 가지 재료가 뒤섞인 작품입니다. 500페이지가 살짝 넘는 분량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가볍고 쉬운 문장들에다 여러 재료들이 선사하는 재미 덕분에 한 호흡에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범인의 정체라든가 동기와 수법 등 막판에 밝혀지는 진실의 수위는 미스터리 레벨로 따지면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전의 맛이 대단하진 않지만 정교한 구도 속에 차근차근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나름 흥미롭게 읽혔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건 주인공 닛타 고스케와 두 명의 매력적인 조연의 캐릭터 및 케미입니다.

 

30대에 경시청 수사1과 엘리트 형사가 된 닛타 고스케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공명심에 약간의 오만함까지 지닌 재수 없는 주인공에 가깝습니다. 현장을 뛰며 직접 범인을 잡고 싶어 하는 그로서는 호텔 프런트 직원으로의 위장이 마음에 들 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경시청 상부는 물론 호텔 측과도 이런저런 트러블을 겪게 되는데, 특히 현실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상적인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와 열흘 남짓한 시간을 보내면서 겪는 갈등과 충돌은 미스터리 이상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첫 만남부터 닛타에게 강한 거부감이 들었던 나오미는 그가 진짜 호텔리어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온갖 잔소리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서 경찰로서의 진정성을 엿본 나오미는 나름 독자적인 조사를 펼치기도 하고, 뜻밖의 조언으로 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아주 옅긴 해도 로맨스의 기운까지 내비쳐서 이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한 명의 조연은 시원찮은 외모의 중년형사 노세입니다. 첫 사건 때 관할서 형사로서 닛타와 파트너가 된 그는 닛타와는 정반대 캐릭터입니다. 허허실실 스타일에 딱히 공명심도 없어서 자신보다 파트너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더 즐기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의외의 대목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곤 해서 닛타를 놀라게 만드는데, 이후 닛타에게 인간으로서 또 형사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스승의 역할까지 맡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독하고 센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겐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겠지만, 캐릭터들이 워낙 매력적이라 후속작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만큼은 강렬한 작품입니다. 서평을 쓰지 않던 시절에 재미있게 읽었다가 신작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이 시리즈를 순서대로 다시 읽기로 했는데, 줄거리는 거의 다 잊었지만 닛타와 나오미와 노세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여전해서 다음 작품인 매스커레이드 이브역시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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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고백
미키 아키코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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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별장의 2층 베란다에서 모토무라 히로키의 아내 미즈카와 8살 아들 도모키가 추락사합니다. 당시 1층에 있던 히로키는 충돌음을 듣고 두 사람의 사체를 발견했다고 진술하지만 이내 살인 혐의로 체포됩니다. 아내 미즈카가 사망 직전 한 편집자에게 보낸 수기남편이 나와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고발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이어 아들 도모키가 할머니에게 보낸 메일이 공개되는데, 거기엔 엄마와 아빠가 날 죽이려 한다.”는 고발이 담겨 있어서 수사진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더구나 체포된 히로키가 아내가 나와 아들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자 변호사 무쓰기 레이는 관련자 탐문은 물론 꼼꼼한 현장조사를 통해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진짜 살의를 품은 것은 누구였는지를 밝혀내려 합니다.

 


앞서 출간된 기만의 살의귀축의 집모두 평점 만점을 줬던 터라 미키 아키코의 신작 소식은 무척 반갑고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이 변호사 무쓰기 레이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 과연 어떤 캐릭터의 주인공이 등장할지도 사뭇 궁금했습니다.

 

패자의 고백은 형식면에서 보면 전작인 귀축의 집과 비슷합니다. ‘귀축의 집은 사립탐정 사카키바라가 인터뷰한 관련자들의 진술로만 이뤄져있었는데, ‘패자의 고백역시 지문과 대화문 없이 사건 당사자들의 수기와 메일과 진술서, 그리고 주변인물들이 무쓰기 레이에게 한 진술들로만 이뤄져있습니다. 또한 가정이라는 극히 좁은 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도 마찬가지인데, 두 작품 모두 영미권의 도메스틱 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결의 가족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서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 큰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유죄인지 무죄인지 어느 쪽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모호한 사건은 결국 사건의 주변에 흩뿌려진 무수한 간접사실이 판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번 사건은 결국 이 간접사실이 승부를 갈랐습니다.” (p307)

 

사망한 두 사람의 수기와 메일,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된 한 사람의 진술이 전부일 뿐 명확한 물적 증거나 목격자 하나 없는 탓에 수사는 난항을 거듭합니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을 향해 살의를 품고 있었다는 세 사람의 엇갈린 진술은 검사와 변호사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결국 이 진술들의 진위 여부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탐문 외엔 달리 밝힐 길이 없었고, 변호사 무쓰기 레이는 그 과정에서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사소한 단서들을 포착함으로써 끝내 진실을 밝혀내고 맙니다. 이런 설정 덕분에 누가, 어떻게보다는 ?’에 방점을 찍은 와이더닛 미스터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기만의 살의귀축의 집이 아날로그적인 인물과 사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감과 반전을 품은 전형적인 미스터리였다면, ‘패자의 고백은 완만하면서도 묵직한 심리스릴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 당사자인 세 사람의 수기와 메일과 진술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초반 분위기를 팽팽하고 긴장감 있게 만들긴 했어도, 이후 전개되는 관련자들의 진술은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는 지루함보다는 심리스릴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으며,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작가가 숨겨놓은 사소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열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쑥 제3의 범인이 나타날 리도 없고, 결론은 히로키가 범인이냐, 아니냐?”로 한정돼있기 때문에 독자는 당사자들의 수기와 메일과 진술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인물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집중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읽어야만 막판에 이르러 무쓰기 레이가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하나씩 밝히는 대목에서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맛볼 수 있습니다.

 

전작들에 비해 다소 단선적인 구도와 한정된 반전 때문에 별 4개에 그치고 말았지만, 미키 아키코 특유의 정교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주인공인 변호사 무쓰기 레이의 캐릭터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점도 좀 아쉬웠지만, 그래선지 그녀가 활약하는 두 번째 이야기 미네르바의 보복이 머잖아 한국에 출간되기를 더욱 기대하게 됐습니다. 그 외에도 만년에 데뷔한 미키 아키코의 작품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아직 세 편밖에 소개 안 된 그녀의 작품들이 좀더 자주, 많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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