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세키구치 고타로는 7년 전 여아 연쇄 납치 사건을 취재하면서 치명적인 오보를 냈었다.

그로 인해 범인이 2인조일 가능성을 제기했던 그의 특종 역시 검증되지 못한 채 묻혀버렸고,

결국 지방으로 쫓겨나 오랜 시간동안 한직을 전전하게 됐다.

어느 날, 7년 전과 비슷한 수법의 사건이 터진다.

세키구치 고타로는 이번 사건이 7년 전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직감하고 취재에 나선다.

하지만 다시 오보 사건에 휘말릴까 봐 동료와 상사들은 몸을 사리기 일쑤고,

수사기관 역시 자신들의 수사에 영향을 미칠까 거짓 정보를 흘려

그의 취재를 방해하는 탓에 진실에 다가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인터넷 서점의 출판사 책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강력사건을 대하는 사회부 기자의 업무와 태도는 경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범인 체포가 1순위인 경찰 입장에서는

세상에 알리는 것1순위인 사회부 기자가 때론 적군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형사물에서 기자들이 얄미운 비호감 캐릭터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죠.

하지만 사회부 기자가 주인공인 작품에선 무조건 숨기기만 하는경찰이 밉상이 됩니다.

또 경찰보다 유능하고 집요한 사회부 기자가 사건의 진실에 먼저 다가가기도 합니다.

유능한 기자에겐 경찰 못잖은 이 있기 마련인데, 그건 대부분 조직 내부의 인물들입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시기와 질투 때문이든 유능한 기자의 활약은

조직 내부의 복잡다단한 갈등 때문에 여러 번 제동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미드나잇 저널은 이런 성격의 작품 중 거의 교과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특종 사냥꾼이자 유능한 기자지만, 도무지 융통성 없는 성격에 독재적인 업무 스타일,

, 선후배를 막론하고 가혹하고 냉정한 태도로 일관하는 반골세키구치 고타로는

조직의 입장에선 버릴 수도, 품을 수도 없는 골치 아픈 존재이고

후배나 동료 입장에선 미워할 수도, 존경할 수도 없는 참 애매한 존재입니다.

조금이라도 기자의 본분에서 어긋날 것 같으면 위아래를 막론하고

넌 저널(journal)이 아니야!”라며 가차 없이 몰아세우곤 합니다.

 

읽는 내내 저 역시 이 인물에게 호감을 느껴야 하는 건지 아닌지 꽤 혼란스러웠습니다.

내가 데스크라면, 내가 후배라면 과연 세키구치 고타로를 모범 기자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내가 데리고 있고 싶거나,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인물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이런 주인공의 설정은 처음엔 좀 불편했습니다.

주인공은 좀 괴팍하더라도 나름 호감을 발산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왜 작가가 자신의 주인공을

굳이 호감과 비호감의 경계선에 올려놓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작품은 모든 미덕을 갖춘 슈퍼 능력 기자를 앞세운 영웅 서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큐에 가까울 정도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자들의 세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편집국장부터 말단 신입기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경찰 또는 희생자 유족과의 관계 등 그들만이 사는 세상의 속살을 가감 없이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종이신문의 가치와 기자들의 책임감이 진지하게 그려졌고,

기자들의 숙명 - 정확성과 속보성, 알려야 할 것과 알리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고민

이제는 인터넷 뉴스에 익숙해진 세대들도 공감할 수 있게 묘사돼있습니다.

작가는 이런 서사들을 위해 굳이 호감형 주인공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좀 비호감이더라도, 전쟁터 같은 취재현장에서 갖은 위험과 비난을 무릅쓰면서

자신의 본분을 다 하는 (일종의 판타지지만) 이상적인 기자를 그리려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픽션이다 보니 극적인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세키구치 고타로를 지지하며 그의 취재를 돕는 후배도 있고,

오보 사건의 여파로 그와 절연한 뒤 까지 버린 후배도 있습니다.

세키구치 고타로를 못마땅해 하지만 그의 기자정신을 높이 사는 노회한 베테랑 기자도 있고,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직속상관도 있습니다.

교과서 같고 다큐 같은 냄새를 풍기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캐릭터들 덕분에 독자는 드라마틱한 재미를 만끽하며 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흉악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트릭이나 충격적인 반전은 없지만

범인을 쫓고 진실을 밝히려는 미스터리의 미덕이 잘 배어있다는 점 역시 장점 중 하나입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20년 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소설가로 전업했다고 합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기자의 이력이 멋지게 발휘됐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후속작이 나온다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사회부 기자가 등장하는 장르물 중에 단 한 편의 추천작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요코야마 히데오의 클라이머즈 하이를 꼽곤 하는데,

그 작품의 주인공 유키 가즈마사 역시 유능하지만 원칙주의와 반골로 똘똘 뭉친 캐릭터입니다.

다만 인간미에 있어서는 세키구치 고타로보다는 좀(많이?) 따뜻한 인물입니다.

혹시 미드나잇 저널을 통해 사회부 기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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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뼈
송시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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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아이의 뼈를 비롯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린 송시우 작가의 작품집입니다.

장편 라일락 붉게 피던 집과 연작 단편 달리는 조사관이후 세 번째 작품인데,

수록작 중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에 실렸던 단편이기도 합니다.

 

달리는 조사관출간 후 송시우 작가가 다음 작품은 더 오래 걸릴 것 같다.”라고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후속작이 빨리 나와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다만, ‘라일락~’처럼 굵직한 서사의 장편을 기대했던 터라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수록작 모두 30페이지 안팎의 단편인데다 쉽고 간결한 문장들 덕분에

주말 한나절이면 금세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캐릭터의 힘이 강하거나 반전의 맛을 살린 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20년 전 살해된 딸의 유골을 찾으려는 한 노파의 집념과 복수를 그린 아이의 뼈’,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진 일상 속의 분노를 의외의 반전과 함께 그린 사랑합니다, 고객님’,

진정한 복수는 계속 살게 하는 것이란 역설적인 메시지가 인상적인 누구의 돌등입니다.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역시 서늘한 공포를 발산하는 무척 매력적인 단편입니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선명하고 똑 떨어지는 엔딩 대신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독자 판단형 엔딩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단편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다루는 사건은 복잡하거나 큰 스케일들은 아니지만

역으로 일상성이 강조된 탓에 훨씬 더 주위에서 벌어질 것 같은 사건이란 느낌을 줍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도 평범한 인물들이거나 피로에 찌든 전형적인 형사들인데,

그 덕분에 멋 부리지 않은 사실적인 설정과 전개가 돋보였던 것 같습니다.

두 편의 전작들에서도 송시우 작가의 이런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는데,

일상 속의 관찰자(‘라일락~’) 또는 평범하지만 열정적인 조사관(‘달리는 조사관’)의 힘은

화려한 서사 속에 등장하는 슈퍼 주인공보다 더 강렬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작품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단편의 한계를 느낀 작품도 있었지만,

어쨌든 만족스러운 책읽기였습니다.

다만, 다음엔 꼭 송시우 작가의 장편과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좀더 길어지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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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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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중간에 두어 번 중도포기를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냥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뭔가가 분명 있었고,

무엇보다 토니와 수잔 두 사람의 엔딩이 궁금했기 때문에 기어이 끝까지 달리긴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독자들의 평이 궁금해서 알라딘에 들어가 봤는데,

저의 독후감과는 달리 대체로 호평 일색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역시 제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고고한 서사에 대한 몰이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 ● ●

 

수잔은 20년 전 이혼한 에드워드에게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을 받습니다.

신혼 시절, 에드워드는 법학을 포기하고 글쓰기에 매진했지만

수잔은 그에게 재능이 없음을 알아봤고, 냉정한 혹평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둘은 씁쓸하게 이혼했고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의 주인공이 토니입니다.

그는 여름 별장으로 가던 도중 불량배들에게 가족을 잃는 대참사를 겪습니다.

삶은 어찌어찌 이어지지만 껍데기만 남았을 뿐, 모든 것은 불안정하고 위태롭습니다.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먼길을 달려갔지만 그곳엔 또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능 없고 혹평 받아 마땅하던 그의 글솜씨가 일취월장한 것에 놀라던 수잔은

소설 속에서 서서히 붕괴돼가는 토니를 지켜보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사실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자신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둘만의 과거사를 언급한 대목도 없지만,

수잔은 토니를 통해 겉모습과는 달리 사방에 균열 투성이인 자신의 삶을 돌이켜봅니다.

그리고 자문합니다. 왜 에드워드는 내게 이 책을 보낸 거지?

책과 함께 보낸 편지 속의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라는 말은 무슨 의미지?

 

● ● ●

 

처음엔 이 작품의 제목이 토니와 수잔이라고 해서

당연히 두 인물이 현실 속의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소설 속 캐릭터이고 한 사람은 그를 읽는 독자로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소설 속 토니와 현실의 수잔의 교집합이 이 작품의 테마라는 뜻인데,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지점이 저를 이해시키지도, 공감시키지도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소설 속 소설인 녹터널 애니멀스와 주인공 토니의 캐릭터는 무척 매력적입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 가족을 잃고도 식욕과 성욕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절망감,

바닥을 알 수 없는 참혹하고 아주 느린 속도의 파멸 등

자비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한 스릴러의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현실의 수잔을 그린 대목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점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으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수잔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목을 읽었기에, 또는 소설에서 어떤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수잔이 이토록 동요하고, 자책하고, 분노하는 것인지 결국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토니는 책과 함께 보낸 편지에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라는 말을 남깁니다.

, ‘이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너와 연관이 있고,

그래서 난 분명한 의도를 갖고 이 책을 너에게 보내는 거야.’라는 뜻입니다.

그 의도란 복수일 수도 있고, 괴롭힘일 수도 있고, 소소한 자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과 수잔의 연관에드워드의 의도도 제 눈엔 잘 읽히지 않았습니다.

토니의 픽션이 수잔의 현실을 잠식한다는 것은 비평가들의 억지스러운 분석이란 느낌입니다.

세상에는 토니의 픽션보다 더 세고 독한 콘텐츠들이 많습니다.

수잔이 픽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괴로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픽션이 에드워드의 소설이란 사실이 수잔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쳤을까요?

수잔이 그저 에드워드의 글솜씨가 상당해졌네.’라고만 느꼈다면 모르겠지만,

수잔은 억지스러울 정도로 에드워드의 의도를 자신의 삶과 결부시키려 애씁니다.

마치 (어떤 경로로든) 자신의 삶이 불안정하고 위태롭다는 정보를 얻은 에드워드가

과거를 복수하거나 현재를 조롱하기 위해 이 소설을 보냈다는 식으로 알아서반응합니다.

소설을 보면 딱히 그럴만한 단서도 흔적도 없는데 말이죠.

(두 차례에 걸친 막간챕터에서 난해한 문장들로 묘사된 수잔의 심리는

에드워드의 책에 대한 수잔의 반응을 강조하려는 부연설명처럼만 보입니다)

 

몇몇 분의 서평을 몇 편 읽다보니, 좀 심하게 말하면,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소설에선 채 깨닫지 못했던 점들이 꽤 상세하게 분석돼있었는데

어떤 부분은 , 이렇게 해석되는 거였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토니와 수잔의 접점만큼은 끝까지 이해 안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에드워드가 던진 수수께끼 같은 질문 -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 - 에 대해서도

수잔은 답을 찾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저로서는 질문과 답 사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앞서 말한 대로 취향의 문제또는 독해능력 부족중 한 가지가 이유겠지요.

(어쩌면 톰 포드가 연출한 영화를 보면 저의 몰이해가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작품 역시 예외 없이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홍보 문구에 삽입했더군요.

부부가 등장하고, 한쪽이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설정만 나오면

너도나도 나를 찾아줘의 승계자(?)인 것처럼 자처하는데,

이젠 그 홍보 문구가 보이면 오히려 기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스스로의 완성도와 함량만으론 독자에게 어필할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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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컬렉터 링컨 라임 시리즈 1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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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가 탄생시킨 링컨 라임 시리즈의 11번째 작품입니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방대한 지식과 최첨단 장비를 활용한 미량의 단서 찾기를 통해

그는 미궁에 빠진 뉴욕의 범죄를 해결하는 천재적인 범죄학자로 활약 중입니다.

이번에 그가 마주한 살인마는 문신을 이용하여 독살을 자행하는 스킨 컬렉터입니다.

 

● ● ●

 

범인은 피해자들의 복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신을 남겨놓고 사라집니다.

현장은 대부분 복잡한 미로 같은 뉴욕의 지하이고,

범인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뒤처리를 한 탓에 링컨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합니다.

연이어 희생자가 나타나고 예외 없이 문신이 발견되지만 그 의미는 뒤늦게나 밝혀집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무작위적인 희생자 선정, 기괴하게 세팅된 범행 현장,

오래 전 링컨이 해결했던 본 컬렉터 사건과 연관 있는 듯한 단서들,

그리고 링컨 본인은 물론 파트너인 색스와 주변인들을 향한 범인의 공격 등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을 확대되어갈 뿐입니다.

 

● ● ●

 

언제나 그렇듯 미량의 단서를 통한 최첨단 과학수사와 번득이는 추리력의 조합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가 아니면 누가 해결했을까?’라는 질문이 생각날 정도로 대단합니다.

현장요원이자 링컨 라임의 연인인 아멜리아 색스의 활약도 매력적이고,

(읽진 못했지만) 시리즈 첫 작품 본 컬렉터에서 어린 소녀로 등장했던 팸은

성인으로 재등장하여 갈등과 위기를 초래하는 불씨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조연으로서 링컨을 돕는 뉴욕 경찰들 역시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미션을 적절히 수행합니다.

다양한 경찰 캐릭터의 좌충우돌은 살벌한 이야기 속에서 유일한 재미덩어리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독극물을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르며 의문의 문신을 남기고 사라지는 범인의 행각은

색다른 소시오패스의 캐릭터라 읽는 내내 궁금증과 긴장감을 유지시켜줍니다.

 

페이지도 잘 넘어가고, 전체적인 인상만 보면 역시 제프리 디버라는 소리가 절로 나지만

나름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있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스킨 컬렉터는 시리즈 1편인 본 컬렉터’, 7편인 콜드 문과 밀접히 연관돼있는데

두 작품 모두 못 읽은 터라 100% 몰입해서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연관성만이 아니라 등장인물간의 오랜 구원(舊怨)과 갈등까지 다뤄서 그런지

작가가 (저 같은 독자를 위해) 적잖은 분량을 할애하여 친절하게 설명해줬지만,

아무래도 감정적인 이입은 수박 겉핥기 이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독자의 문제(?)라 작품 자체가 주는 아쉬움은 아닙니다.^^)

 

진짜 아쉬움은 제프리 디버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듭된 반전에 기인합니다.

약간만 언급해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두루뭉술한 말밖에 못하겠지만,

전작인 킬 룸이 후반부에 연이어 터지는 반전 때문에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면,

스킨 컬렉터의 클라이맥스와 엔딩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란 느낌만 전해줬습니다.

뭐랄까, 앞서 읽은 이야기들을 좀 허망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추측이지만) 그런 부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번역하신 유소영 님도 옮긴이의 글을 통해

거듭된 반전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때로 인위적이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는데..”라는

언급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 상, 최첨단 과학과 두뇌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보다는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처럼) 몸으로 직접 뛰는 스타일을 좋아하다 보니

간혹 링컨 라임의 천재성이나 과학수사의 위대함에서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와 아멜리아 색스와 뉴욕 경찰의 팀플레이는

다른 작품에선 맛볼 수 없는 특별하고도 중독성 있는 매력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11편의 시리즈 가운데 이 작품까지 5편밖에 읽지 못했지만,

혹시 나머지 작품 역시 인위적인 반전이 깔려있다고 해도

역시 안 읽고는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똑같은 아쉬움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작 소식이 들리기 전에

책장에 꽂혀있는 나머지 시리즈들을 얼른 챙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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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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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금지된 욕망을 풀어보려던 한 평범한 중년 남자가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로 뭉친 괴물 리카를 만나면서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인들까지 수렁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비극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심플하지만 간결하면서도 눈앞에서 목격하듯 생생히 묘사된 공포 덕분에

옮긴이의 말대로 다음 챕터를 읽는 게 무척이나 불편하고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평범한 한 남자의 그릇된 선택과 일탈 하나가 평화롭던 일상을 산산조각 내고,

가족과 직장이라는 삶의 기반을 통째로 붕괴시키는 대목에서는

그저 착하게 살자라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는 본문에서도 몇 번씩 언급되는 설명인데,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인 리카를 설명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터무니없이 부족한 표현이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자기애와 악의만으로 그만한 공포를 자아낼 수 있을까?

그것이 아무리 일그러지고 순수한 형태라고 해도 그만한 원념(怨念)을 가질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길수록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 들어 부족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리카는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심연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악의 정령 같은 인상도 준다는 점입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등장하는 간호사 애니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미쓰다 신조 작품 속의 초현실적인 악령도 함께 연상시킨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분명 명백한 리얼 호러물을 읽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시로 장르를 뛰어넘어 판타지의 세계를 드나드는 느낌을 갖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작품이 일본 호러 서스펜스 대상을 받은 2002년만 해도 공포물로서의 매력은 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당하기 시작한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한 터치 때문에

나름 큰 주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오늘날의 눈높이에서 보면 익숙한 서사와 캐릭터, 더는 새롭지 않은 설정들 때문에

신선한 호러의 폭주를 기대한 독자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전형적인 호러물 주인공처럼 꾸며진 리카의 비주얼인데,

오히려 그 또래의 평범한 여성으로 설정했더라면 훨씬 더 센 캐릭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다 읽은 뒤에 책 뒷날개를 보니 리턴’, ‘리버스로 이어지는 3부작이 완성됐더군요.

제목에서 느껴지듯 돌아온 리카가 계속 맹활약(?)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후속작들이 각각 2013, 2016년에 출간된 것을 보면 꽤 공백이 길었는데,

리카의 악의가 얼마나 진화했을지, 또 어떤 참극들이 벌어질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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