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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평점 :
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금지된 욕망을 풀어보려던 한 평범한 중년 남자가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로 뭉친 ‘괴물 리카’를 만나면서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인들까지 수렁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비극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심플하지만 간결하면서도 눈앞에서 목격하듯 생생히 묘사된 공포 덕분에
‘옮긴이의 말’대로 다음 챕터를 읽는 게 무척이나 불편하고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평범한 한 남자의 그릇된 선택과 일탈 하나가 평화롭던 일상을 산산조각 내고,
가족과 직장이라는 삶의 기반을 통째로 붕괴시키는 대목에서는
그저 ‘착하게 살자’라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는 본문에서도 몇 번씩 언급되는 설명인데,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인 리카를 설명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터무니없이 부족한 표현이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자기애와 악의만으로 그만한 공포를 자아낼 수 있을까?
그것이 아무리 일그러지고 순수한 형태라고 해도 그만한 원념(怨念)을 가질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길수록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 들어 ‘부족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리카는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심연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악의 정령 같은 인상도 준다는 점입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등장하는 간호사 애니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미쓰다 신조 작품 속의 초현실적인 악령도 함께 연상시킨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분명 명백한 리얼 호러물을 읽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시로 장르를 뛰어넘어 판타지의 세계를 드나드는 느낌을 갖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작품이 일본 호러 서스펜스 대상을 받은 2002년만 해도 공포물로서의 매력은 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당하기 시작한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한 터치 때문에
나름 큰 주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오늘날의 눈높이에서 보면 익숙한 서사와 캐릭터, 더는 새롭지 않은 설정들 때문에
‘신선한 호러의 폭주’를 기대한 독자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전형적인 호러물 주인공처럼 꾸며진 리카의 비주얼인데,
오히려 그 또래의 평범한 여성으로 설정했더라면 훨씬 더 센 캐릭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다 읽은 뒤에 책 뒷날개를 보니 ‘리턴’, ‘리버스’로 이어지는 3부작이 완성됐더군요.
제목에서 느껴지듯 ‘돌아온 리카’가 계속 맹활약(?)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후속작들이 각각 2013년, 2016년에 출간된 것을 보면 꽤 공백이 길었는데,
리카의 악의가 얼마나 진화했을지, 또 어떤 참극들이 벌어질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