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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워크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평점 :
저만의 독서계획 ‘해리 보슈+@ 다시 읽기’의 두 번째 “+@”인 ‘블러드 워크’입니다.
(“+@”는 ‘시인’, ‘블러드 워크’, ‘보이드 문’, ‘허수아비’입니다.)
‘보슈 시리즈’를 다시 읽는 계획에 정작 보슈가 등장하지 않는 “+@”가 포함된 것은
이 작품들 속 주인공들이 이후 ‘보슈 시리즈’에 주요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인데,
‘블러드 워크’의 주인공 테리 매케일렙은 보슈 시리즈 7편인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과
10편인 ‘시인의 계곡’에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탠드얼론이지만 ‘보슈 시리즈’의 외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FBI 프로파일러 테리 매케일렙은 뛰어난 현장요원이라기보다는
서류, 사진, 영상 등 자료를 통해 연쇄살인을 해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전성기인 40대 중반에 조기 은퇴를 해야만 했고,
다행히도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뒤로는 아버지가 남긴 보트에서 지내는 중입니다.
어느 날, 그래시엘라라는 여인이 찾아와 동생 글로리아의 살인범을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민간인에 불과한 매케일렙은 더 이상 FBI요원이 아니라며 냉정하게 거절하지만,
살해된 동생이 자신의 ‘두 번째 심장’의 주인이었다는 그녀의 말에 동요하고 맙니다.
단순 강도살인사건으로 종결됐던 글로리아의 죽음에서 수상한 흔적들을 발견한 매케일렙은
얼마 안 돼 연쇄살인의 단서를 포착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의 공통점까지 찾아냅니다.
하지만 사건이 확대되자 FBI와 LA경찰국은 매케일렙의 수사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익명의 제보를 근거로 매케일렙을 주요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기까지 합니다.
‘블러드 워크’(피의 작업)는 FBI 연쇄살인 전담요원들이 자신들의 일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피로 진 빚은 반드시 피로 갚아야 했다.”는 매케일렙의 표현대로
요원들은 “끔찍한 환상을 현실로 옮긴 놈들이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분노를 에너지 삼아 연쇄살인범 체포에 큰 공을 많이 세운 매케일렙이었지만
죽음의 위기에서 극적인 심장이식수술로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그는
더는 과거의 분노와 공과에 매달리지 않고 안온한 삶을 선택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두 번째 삶이 ‘한 여자가 살해된 덕분’이란 걸 알게 된 뒤
매케일렙은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FBI 시절의 분노를 곱씹으며 위험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장기이식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나 휴먼스토리를 꽤 여러 편 봤지만
전직 요원이 자신을 살린 장기기증자가 살해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구도는
그 발상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만든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특히 그 사건이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며 특별한 목적을 가졌음을 파악하는 매케일렙의 여정은
민간인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게 팽팽한 긴장감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매케일렙의 수사에 가장 큰 암초는 바로 자신이 몸담았던 FBI와 LA경찰입니다.
글로리아 사건을 방치하듯 뒷전으로 미뤄뒀던 LA경찰은
매케일렙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자신들의 실수가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며 훼방질을 시작했고,
연쇄살인이 입증된 시점에선 FBI까지 끼어들어 매케일렙을 전선 밖으로 몰아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인맥과 ‘부적절한 방법’까지 동원한 매케일렙의 조사는 거침없이 진행되면서
양측의 갈등과 긴장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위험한 수위까지 치닫습니다.
막판에 몇 차례의 반전을 통해 드러나는 글로리아 살인사건의 진실은 꽤 충격적입니다.
미궁 속으로 숨어들었던 잔혹한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밝혀냈다는 짜릿함이라든가
훼방꾼이던 FBI와 LA경찰을 속 시원하게 짓뭉갰다는 통쾌함을 채 느끼기도 전에
오히려 참담하게 절망하는 매케일렙의 애잔한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범인 찾기’에 그치지 않고 비장미와 비극적인 서사로 결말을 장식하는
마이클 코넬리 특유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는 ‘끝내주는’ 대목인데,
그 무게감과 깊이는 ‘보슈 시리즈’의 어느 작품과 견줘도 절대 밀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중반부까지의 약간은 지루한 동어반복과 느린 전개입니다.
민간인으로서의 매케일렙의 한계라든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헛발질’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가 꽤 많은 정성과 분량을 할애했다는 얘긴데,
이 부분만 견뎌낸다면 중반 이후 폭주하듯 달려가는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습니다.
매케일렙의 FBI 시절 활약상을 설명하는 대목 가운데 ‘시인’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는데,
(제 기억력의 문제인지 ‘시인’에서는 매케일렙을 못 본 것 같지만)
나중에 보슈 시리즈 10편인 ‘시인의 계곡’에 그를 등장시키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입니다.
그 전에 보슈 시리즈 7편인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에도 매케일렙이 모습을 나타내는데,
과연 어떤 역할로 보슈와 협업을 하게 될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다만 무척 아쉬운 건 ‘시인의 계곡’ 이후 어느 작품에서도 매케일렙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인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이어졌다면, 이라는 부질없는 뒷북을 두드려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