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야?”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정말 인상 깊었던 영화 한 편을 콕 찝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동안 봤던 영화들을 차례로 떠올리며 뭘 ‘1순위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연출, 시나리오, 배우 아니면 재미, 메시지 등 사람마다 ‘1순위의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가장 첫 번째 기준은 머릿속 기억이 아니라 내 마음이 기억하는 만큼이란 생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악평을 하고 온갖 부족함을 지적한 영화라 하더라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하게 자리 잡았다면 그 영화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아닐까요?

 

이 작품의 제목인 영화처럼이란 말은

흔히들 비현실적인 일을 가리키거나 이뤄지기 힘든 소망을 바랄 때 쓰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 수록된 다섯 편의 중단편 모두 이런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판타지 같기도 하고, 해피엔딩이 정해진 어른용 동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잔혹한 미스터리와 폭력적인 스릴러를 무척 좋아하지만 정서적 균형(?)에 대한 갈망 때문인지

가네시로 가즈키나 아사다 지로의 따뜻한 이야기 역시 그에 못잖게 좋아하는데,

10여년 만에 다시 읽은 영화처럼은 기대한대로 수시로 제 눈가를 뜨뜻하게 달궈줬습니다.

 

조총련 계열의 민족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의 상처를 지닌 두 소년이

영화로 맺어진 인연 덕분에 평생의 친구가 돼가는 이야기를 그린 태양은 가득히’,

남편의 자살로 혼란을 겪던 여자가 영화감독을 꿈꾸는 비디오대여점 알바생과의 만남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되찾는 이야기를 그린 정무문’,

영화 속 히어로처럼 자신을 구해준 아줌마 라이더덕분에 새 삶을 얻은 한 소년의 이야기와

아줌마 라이더의 비극적인 과거와 통쾌한 복수극을 그린 페일 라이더’,

그리고 홀로 남은 할머니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서 세기의 명작 로마의 휴일상영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사랑의 샘

영화로 맺어진 인물들의 극적인 이야기가 담긴 다섯 편의 중단편이 수록돼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영화는 모든 수록작에 등장하는 로마의 휴일입니다.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마지막 수록작 사랑의 샘에서 소개되는)

구민회관에서 열리는 로마의 휴일상영회에 참석합니다.

누군가는 구원을 받기 위해, 누군가는 설레는 데이트를 위해, 누군가는 우연한 행운 덕분에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배우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로마의 휴일을 만끽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따뜻한 감동과 여운은 그들의 삶에 크든 작든 좋은 에너지를 남겨놓습니다.

‘1순위는 아니더라도 누군가 물어오면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고 이야기할 만큼 말이죠.

 

대부분 상처나 결핍 또는 간절함을 지닌 등장인물들은

인생에서 만난 몇 편의 영화 덕분에, 그리고 그 영화가 맺어준 인연 덕분에

말 그대로 영화처럼치유와 희망을 얻습니다.

현실 속에서 이런 영화 같은 기적을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소설을 통해 누군가 그런 기적을 만나는 일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사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은 늘 이와 비슷한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겨주곤 했는데,

유쾌함이 좀더 강조된 매력적인 시리즈 더 좀비스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잠시 현실을 잊고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에 기대고 싶은 독자라면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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