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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고뇌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5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0년 11월
평점 :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가 이끄는 이과 미스터리 ‘갈릴레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인 ‘갈릴레오의 고뇌’는 전작인 ‘용의자 X의 헌신’과 ‘성녀의 구제’와 달리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작품집입니다. 시리즈 1~2편인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의 형식으로 다시 돌아간 건데, 단편 특유의 맛과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장편을 기대했던 터라 처음 이 작품을 읽었던 무렵에도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여자의 추락사가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놓고 벌이는 미스터리(떨어지다), 저택 별채에서 일어난 의문의 폭발과 화재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조준하다), 대학 동창이 운영하는 펜션에 초대받은 유가와가 한 남자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밀실 트릭 미스터리(잠그다), 다우징(dowsing, 도구를 사용하여 지하수나 광맥을 찾는 일종의 점복占卜)을 할 줄 아는 소녀가 노파 살인사건의 진상을 찾아가는 이야기(가리키다),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유가와에게 복수하기 위해 희대의 살인사건을 일으키는 이야기(교란하다) 등이 실려 있는데, 절반쯤이 유가와 특유의 이과 미스터리라면, 절반쯤은 천재 물리학자가 아니라 셜록 홈즈처럼 활약하는 정통 미스터리라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수록작은 ‘용의자 X의 헌신’의 감동과 여운을 느끼게 만든 ‘조준하다’인데, 그 누구도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범행수법이 정교했던 것은 물론 거듭된 반전을 통해 밝혀진 범인의 진짜 동기는 유가와는 물론 독자의 눈가까지 뜨끈하게 만들어서 ‘용의자 X의 헌신’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꼈던 울컥함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가와를 노린 한 남자의 복수극을 그린 ‘교란하다’는 미스터리 자체는 고만고만했지만 연쇄살인범의 타깃이 유가와라는 점 때문에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갈릴레오의 고뇌’의 가장 큰 특징은 세 번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여형사 우쓰미 가오루의 맹활약입니다. ‘성녀의 구제’에서도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우쓰미는 이번 작품에선 선배이자 ‘서열 2위’인 구사나기 슌페이를 따돌리고 유가와와 콤비에 가까운 비중과 역할을 맡았습니다. “여자라면 대개는 알고 있을 겁니다.”, “여자란 그런 동물이거든요.”, “그런 반지를 제 손으로 사는 여자는 없어요.”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투척하면서도 정작 여자라고 해서 특별 취급받는 건 누구보다 싫어하는 우쓰미는 뛰어난 직감과 관찰력을 지녔으면서도 과도한 상상과 고집 때문에 늘 구사나기에게 꾸중을 들어왔지만, 이번 작품에선 수시로 구사나기를 코너로 몰아붙이며 자신의 장점과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유가와에게도 재능을 인정받은 우쓰미가 이후 작품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거침없이 폭주하는 그녀의 매력 때문에 이 뒤로 이어지는 작품들에 대해 더 큰 기대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시리즈 3편인 ‘용의자 X의 헌신’이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정점을 찍은 탓에 그 앞뒤로 나온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건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갈릴레오의 고뇌’ 역시 이과 미스터리의 미덕과 단편의 매력을 겸비하고 있긴 하지만, 두어 작품을 제외하곤 기대에 살짝 못 미친 게 사실입니다. 럭비공처럼 통통 튀며 종횡무진 수사를 펼치는 우쓰미 가오루가 없었다면 아쉬움이 훨씬 더 컸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희미한 기억에 따르면 후속작인 시리즈 6편 ‘한여름의 방정식’은 꽤 흥미롭게 읽은 장편인 듯한데, 부디 저의 그 희미한 기억에 오류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