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 스트리트 베라 스탠호프 시리즈
앤 클리브스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뉴캐슬의 눈보라 치는 성탄 전야, 딸 제시와 함께 복잡한 열차에 탑승한 형사 조 애쉬워스는

혼란스런 열차 안에서 딸이 발견한 살해된 노파 마가렛의 시신에 경악한다.

현장에 도착한 조의 상관 베라 스탠호프 경감은 이 복잡하고 특이한 사건에 의문을 느끼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며칠이 지나가고 두 번째 피해자가 발생한다.

사건의 단서는 첫 피해자 마가렛에게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주변을 철저히 탐문하던 베라에게

하버 스트리트의 주민들은 누구도 증언을 꺼려하고

그럴수록 베라는 마가렛의 과거에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보진 못했지만) 영국 인기 범죄드라마 베라의 원작소설이며,

노섬벌랜드의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경감 베라 스탠호프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모두 8편의 시리즈가 출간됐고, ‘하버 스트리트는 그중 6번째 작품입니다.

 

소도시 마들에 자리한 항구거리 하버 스트리트에서 연이어 두 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베라를 비롯 그녀가 가장 아끼는 후배 조 애쉬워스, 홀리, 찰리 등이 수사를 벌입니다.

작고 폐쇄적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하버 스트리트역시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그래서 애증으로 복잡하게 엮인 여러 사람들이

용의자 혹은 방관자 혹은 고발자 등의 역할을 맡아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특히 베라가 첫 희생자의 비밀투성이 과거에 집착하면서

수십 년 전 하버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꽤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데,

문제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그 과거사를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베라와 팀원들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번갈아 집요하게 탐문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단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굳게 닫힌 하버 스트리트 사람들의 입은 거의 요지부동입니다.

 

베라는 딱히 과학수사에 목을 매지도, 직감이나 본능에 의지하지도 않는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단서가 가리키는 대로 지시를 내리고 스스로도 기꺼이 발품을 파는 모범적 상관입니다.

수사가 끝나면 아침저녁으로 회의를 열어 결과를 보고받고 후속 수사를 계획합니다.

말하자면, 스마트폰 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라와 그녀의 부하들은 어딘가 시대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탐문형 수사팀의 모습입니다.

물론 사건 자체가 소도시 항구에서 벌어진데다 개인적 원한이 바탕에 깔린 듯한 사건이라

크리미널 마인드‘CSI’ 같은 수사기법이 어울릴 리 없지만

지시하고 지시받고, 수사하고 보고하고, 회의하고 계획 짜고식의 루틴이 반복되는데다

베라를 비롯 모든 경찰 캐릭터 자체가 눈에 띄는 개성이 부족한 탓인지

이야기 전체에서 올드함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 베라 스탠호프는 분명 드라마 주인공이 될 만한 특이한 캐릭터이긴 합니다.

옆집 아줌마 같으면서도 부하들이 알아서 쩔쩔 매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감이기도 한 그녀는

여성성이 강조된 기존의 여자 경찰 캐릭터와는 거의 180도 반대의 모습을 지닌데다

작가의 말대로 현실적이고 진짜 살아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영웅처럼 그려지지도 않고, 누구나 저지를 법한 실수도 현실감 있게저지릅니다.

탐문 대상이나 부하들을 대할 때에도 대체로 능숙한 심리전을 구사하는 편이지만,

때론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훅 앞질러 나가기도 하는 평범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시리즈를 첫 편부터 읽었다면 베라의 진면목을 좀더 잘 알 수 있었겠지만,

하버 스트리트만 놓고 보면 베라의 현실감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오히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보였다는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두 번째 주인공처럼 보인 조 애쉬워스나 톡톡 튀는 홀리도 대체로 평면적이었습니다.)

 

사건은 역시나 독자의 예상을 한참 빗나간 방식으로 해결되는데,

문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보다 좀 억지 같다는 기분이 강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 읽은 뒤에 생각해보면 작가가 곳곳에 단서를 뿌려놓았다는 게 떠오르긴 하지만

막판에 드러난 범인의 정체나 동기는 앞서 펼쳐진 이야기들을 좀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고,

하버 스트리트의 30여 년 전의 과거사와 작위적으로 엮인 느낌도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 베라와 조가 범인의 윤곽을 떠올리는 과정이 비약적이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아무리 앞뒤를 다시 읽어봐도 그럴 만한계기나 단서가 보이지 않았는데,

딱 한 가지 추정할 만한 근거는 (스포일러라 언급하긴 어렵지만) 너무 쉽고 안이하게 보여서

설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곧 시리즈 최신 편인 ‘The Seagull’을 출간할 계획이며,

이어 1편부터 차례대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심리를 다뤘다는 걸 보면

대체로 하버 스트리트와 비슷한 서사의 작품들일 것으로 보이는데,

베라의 매력이나 부하들의 캐릭터가 궁금해서라도 한 편 정도는 더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영국추리작가협회의 평생공로상인 다이아몬드 대거 상 수상자인 작가의 이력만 보면

단 한 편의 작품으로 지레 선입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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