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나이트 다이버
덴도 아라타 지음, 송태욱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대지진 당시 부모와 형을 잃은 세나 슈사쿠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금지된 다이빙을 합니다.

그는 보름달이 뜬 밤,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바다에 몰래 들어가

대지진 당시 휩쓸려간 소소한 유품들을 건져 올립니다.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비밀스런 부탁을 받은 슈사쿠는

어두운 밤바다로 들어갈 때마다 복잡한 심경에 휩싸이곤 합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그에게 있어 다이빙은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또는 슬픔을 씻어내는 슈사쿠만의 엄중한 의식인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남편의 유품을 찾지 말아달라는 여인이 나타납니다.

슈사쿠는 그녀로 인해 욕망, 갈등, 회한 등 크나큰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 ● ●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벌써 6년 반이 넘게 지났습니다.

그동안 몇몇 일본 소설 속에 그날의 참사의 여파가 조심스럽고 짤막하게 등장하곤 했지만,

문나이트 다이버, 여전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긴 하지만,

2011311일의 비극, 그리고 그날 이후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성격은 달라도,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 독자 입장에서 이 작품을 읽는 일은

여러 가지로 힘들기도 하고, 과도하게 감정이 이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참사의 흔적들로 가득한 밤의 바다 속을 유영하는 슈사쿠의 모습은

목숨을 걸고 진도 앞바다를 드나들었던 잠수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문나이트 다이버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슈사쿠는 허리 통증 때문에 대지진 당일 바닷가에 나가지 않아 살아남았지만,

하필 그때 고향에 내려왔던 형이 그를 대신해 쓰나미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부모와 형의 사체를 직접 확인한 이후 슈사쿠의 삶은 온통 회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삶 자체가 망가지진 않았지만, 더는 웃을 수 없는, 웃어선 안 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슈사쿠의 아내는 그가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신 따위는 없다는 슈사쿠에게 그녀는 신이 있기에 당신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슈사쿠는 다이빙이 거듭될수록 점점 더 삶과 욕망에 집착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아내의 항변에 담긴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때론 이해되기도, 때론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슈사쿠에게 유품 회수를 의뢰한 유족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왜 자신이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이 죽었는지, 이렇게 살아남은 것 자체가 죄는 아닌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혼란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슈사쿠에게 남편의 유품을 찾지 말아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한 여인은

남편의 친구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은 일 때문에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한편으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미련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합니다.

 

이렇듯 덴도 아라타는 살아남은 여러 인물들을 통해 추억, 미련, 이별, 정리, 새 출발 등

삶과 죽음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감정들을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그들 하나하나의 죄책감과 슬픔을 깊고 묵직하게 짚어가면서도

덴도 아라타는 그 감정들의 원천은 죽은 자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 때문이라고,

그러니 힘들어도 조금씩 지금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슈사쿠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있을 때 잠수하고 싶습니다.

전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이라면 제대로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아마 사람이 웃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잠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단 하나, 영원히 자신의 추억이 되는 것을 가져오고 싶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은 작가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소재지만,

동시에, 누구도 쉽게 쓸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다룬 이야기를

다른 작가가 아닌 덴도 아라타의 문장으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불과 두세 작품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내면 깊은 곳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 글 솜씨에 충분히 반했던 바 있고,

문나이트 다이버는 그런 그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매력적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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