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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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쿠라는 범죄심리학을 가르치는 마흔여섯 살의 교수로 아내와 둘이 한적한 주택가에 산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경시청 형사 노가미가

8년 전에 일어난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에 대해 자문을 구한 후로

다카쿠라의 주변에서 이상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다.

형사 노가미의 실종, 스토킹을 당하는 제자, 앞집에서 일어난 화재와 의문의 사체,

그리고 옆집 소녀가 내뱉은 기이한 한마디 등...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공포의 서막에 불과했다.

(책 뒷면에 소개된 줄거리를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나름의 줄거리를 정리하지 못하고 책 뒷면의 소개글을 수정, 인용한 것은

그만큼 이 작품이 깔끔하게 줄거리를 정리하기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오싹한, 섬뜩할 정도로 기이한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만큼이나

이 작품은 스토리보다는 분위기에 의해 독자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 수를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무수한 희생자를 낸 악인이 등장하고,

일찌감치 그의 정체가 독자에게 공개되지만

실상 그의 동기나 범행 자체는 작품 안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타고난 사이코패스의 성정 때문인지, 돈 때문인지, 성욕 때문인지 모호할 뿐입니다.

오히려 작가는 범인의 존재와 그가 저지른 범행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포심을 느끼고 벌벌 떨게 되는지,

또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상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탐정 역을 맡은 범죄심리학 교수 다카쿠라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역할과 함께

그 자신과 가족이 범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화자인 다카쿠라의 행동이나 심리를 지켜보면서

말할 수 없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공유하게 됩니다.

동시에 모든 범죄가 나란히 선 옆집의 낯선 이웃의해 벌어진다는 설정은

옆집 사람의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 못하는 작품 속 다카쿠라는 물론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더욱 섬뜩한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누군가 내 옆집에 침입하여 그 집의 가장을 살해하곤

나머지 가족을 장악한 채 뻔뻔히 가장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면,

그런데, 정작 옆집에 사는 나는 그 자가 진짜 가장이라고 무심결에 넘기고 살아간다면,

그리고 그 자가 수도 없이 그런 짓을 이곳저곳에서 반복한다면...

언뜻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라 느낄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내 앞집 또는 옆집 가족의 얼굴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면, 그리 무리한 설정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마지막 장을 덮고도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읽은 것인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폭주하는 사이코패스의 살인과 범인을 쫓는 탐정 이야기는 물론,

낯선 이웃에 대한 두려움, 비극적인 가족사, 남녀 간의 치명적인 애증 등

쉽사리 엮이기 어려운 다양한 코드들이 범벅이 돼있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덕분에 줄거리는 머릿속에서 뒤엉키고, 남은 것은 크리피한분위기뿐이었습니다.

 

마에카와 유타카는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으로 먼저 만났는데

그 작품 역시 뭔가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사건과 인물들로 꽉 차있습니다.

다만 시체가~’가 비교적 명료한 줄거리를 지녔고,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는 설정이었다면

크리피는 사건과 인물 대신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명하고 깔끔한 줄거리와 엔딩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꽤나 당혹스러운 작품들이지만,

빈틈없는 논리 속에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믹스한 독특한 작품들이라

의외로 마니아층을 확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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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1-24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로 인상깊게 봤어요 . 제대로 짚어내는 말들이라 반박불가~! ㅎㅎㅎ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