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명 - 추억이 만들어지는 시간 증명 시리즈
정석화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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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보안 4는 경찰이면서 경찰이 아닌 독립적인 조직입니다.

경찰청장은 물론 국정원 등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으며 고유의 임무를 수행할 뿐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프레데터, 즉 인간사냥꾼이라 불리는 특급 연쇄살인마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수사 과정에 기괴한 살인사건들이 끼어들면서 수사는 혼선을 겪게 됩니다.

장기가 모두 사라진 채 살해된 사람들,

참혹하게 토막살해 됐지만 피 한 방울 발견되지 않은 변사체들,

지문과 기억이 사라진 채 외진 국도에서 발견된 여자,

그녀를 보호하면서 사랑에 빠지지만 그로 인해 보안 4과에 의해 프레데터로 지목받는 남자...

밑그림이 다른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한데 뒤섞인 것처럼 혼돈 그 자체이던 인물과 사건들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그 끔찍한 악연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 ● ●

 

제가 봐도 참 모호한 줄거리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모티브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 보니

이렇게 앞뒤 맥락도 없는 어정쩡한 줄거리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 모티브를 언급한다 하더라도 이 작품의 인물과 사건은

일반적인 서평을 쓰기에는 거의 곤란할 정도로 무척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물의 경우 크게 보면,

프레데터를 쫓는 보안 4과의 멤버들,

지문과 기억을 잃은 채 사라라는 이름을 불리게 된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게 됐지만 그로 인해 보안 4과의 레이더에 걸린 중혁,

보안 4과가 쫓는 프레데터와 거대한 어둠의 조직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이 쫓거나, 연루되거나, 일으키는 사건들은 단지 현재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수십 년 전의 비극과도 닿아 있어서 이야기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단순히 겉멋을 부리기 위해 뒤엉키게만든 수준이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연결시킬 생각을 했을까?”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교하고 빈틈없이 설계됐다는 뜻입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뒤엉킨 가닥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일으키는 반전들은

(때론 작위적인 대목도 분명 있지만) 단순한 반전 이상의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특히 인물들의 관계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밝혀지는 부분은 압권이었습니다.

또한 더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전작들과는 다른 낯선 방식으로 접근한 참신한 아이디어도 호평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초반부입니다.

인물 소개나 사건 묘사 과정에서 조금은 설익은 느낌의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오기도 했고,

국정원도 못 건드린다는 보안 4과 멤버들의 수준은 평범한 형사와 별 다를 바 없었으며,

별로 중요하지도 놀랍지도 않은 상황에 대해 작가 혼자 심각해하는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스케일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었겠지만

중후반부에 밝혀지는 어둠의 조직의 실체라든가 일부 인물들의 정체 폭로 과정 역시

작위적이거나 허술해 보인 것은 물론 지나치게 과대 포장된 나머지 현실감을 잃었습니다.

종합하자면, 아이디어와 구성은 훌륭한데 그것을 글로 구현하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소재라든가 문장에 대한 취향 때문에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몇몇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면에서는 분명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춤추는 집을 아직 읽지 못했는데

어떤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담긴 작품일지 일단은 궁금해집니다.

한국추리문학상 대상까지 받은 작품이라니 더욱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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