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머리 사이클 - 청색 서번트와 헛소리꾼, Faust Novel 헛소리꾼 시리즈 1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표지와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작품입니다.

사실 라노벨의 정의도 잘 모르고, 읽어본 작품도 거의 없다 보니

니시오 이신의 헛소리꾼 시리즈가 라노벨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는데다 어딘가 파격적인 냄새가 솔솔 풍긴 덕분에

중고서점에서 시리즈를 일괄 구매했습니다.

 

이야기 구도는 심플합니다.

절해고도 젖은 까마귀 깃섬으로 초대받은 천재들이 한 명씩 머리가 잘린 채 살해당하고,

독특한 캐릭터의 두 주인공, 쿠나기사와 이짱이 밀실살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미스터리의 실체도 새롭거나 기발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전에 가까운, 또는 요즘의 눈높이로 볼 땐 설마, 소리가 나올 만큼 진부합니다.

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심지어 에필로그마저 반전의 무대가 된다는 점이나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등장인물들의 판타지 같은 캐릭터,

심오한 듯 하지만 어딘가 허무한 헛소리처럼 들리는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논쟁,

두 주인공의 숨겨진 과거사와 멜로 라인에 대한 작가의 감질 나는 떡밥 등

그동안 읽은 미스터리 작품들과는 다른 신선한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께서는~”, “나란 분은~”이라며 스스로를 극존칭하는 화법을 쓰고,

고작 19살이지만 한때 전 세계를 들썩였던 전설적인 해커 팀의 팀장이라는 이력을 지닌데다

코발트색 긴 머리를 휘날리는 기이한 외모의 천재소녀 쿠나기사 토모는

독자의 시선을 한꺼번에 휘어잡는 극강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인물입니다.

또한 쿠나기사의 보호자이자 작품의 화자인 헛소리꾼 이짱은

섬에 모인 천재들과 비교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19살 소년에 불과하지만

여러 가지 비밀을 간직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밀실살인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명탐정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 외, 재벌가에서 의절당한 후 이름도 독특한 젖은 까마귀 깃섬의 여주인으로 살아가며

수시로 천재들을 초대하여 여흥을 즐기는 아카가미 이리아,

여주인 이리아를 보필하는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네 명의 메이드,

그리고 그녀에게서 초대를 받은 5명의 여자 천재 등

개성을 넘어 신비함까지 느껴지는 등장인물 면면만으로도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밀실의 트릭과 진범의 정체 등 사건 해결 과정은 딱히 특이하지 않지만

캐릭터의 힘만으로도 한 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입니다.

다만, 이런 계열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니시오 이신의 천재성이 돋보이겠지만,

미스터리 고유의 힘과 정통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가볍고 어딘가 짝퉁 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삶과 죽음, 존재와 관계 등에 대한 장황한 철학적 묘사는

의도된 포장술이나 현학적 자만심의 구현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 역시 몇몇 대목에서 이런 아쉬움들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인지... 누가 진짜고, 누가 거짓인지...”라는

후반부의 이짱의 독백을 읽으면서 내가 이해를 못한 게 아니라 이게 작가의 의도였군.’ 하며

스스로 안심(?)하며 자위하기도 했습니다.

 

앞선 서평들을 보니 호불호가 거의 극과 극으로 나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구매한 남은 시리즈들을 연이어 읽을 생각은 없지만

때로 간식처럼 색다른 이야기가 생각날 때면 한 편씩 차례대로 읽어볼 계획입니다.

중독성 강한 쿠나기사 토모와 이짱의 캐릭터, 또 이후 두 사람의 활약과

5년 전 그들이 겪은 사건이 궁금해서라도 그리 오래 미뤄 두진 못하겠지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