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살인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이 집필된 90년대 초반은 한국에서도 천리안이나 하이텔

PC통신이 새로운 문명기의 시작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일으켰는데 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초반부터 정체가 공개된 범인 시나 도시오는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중독에 히키코모리의 특징을 겸비한 예비 소시오패스입니다.

그는 가상공간에서 만난 닉네임 CAT O’NINE TAILS라는 존재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낍니다.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지만, 오직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친구이며,

그와 나눈 대화, 그와 함께한 체스 게임은 시나 도시오의 귀중한 보물이 됩니다.

CAT과의 만남을 통해 봉인돼있던 금지된 욕망을 발산하게 된 시나 도시오는

더 이상 위선적이기만 한 인간적 탈을 벗어던지고 쇠망치를 든 채 거리로 나섭니다.

시나 도시오와 CAT이 몰고 온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은

무차별 살인, 눈속임 살인, 정신이상자 범행, 비밀결사의 제재 등 숱한 추정만 불러일으킬 뿐

희생자들 간의 연관성도, 범행 목적도,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수사진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 ● ●

 

‘0의 살인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코믹 코드가 섞인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먼 취향이라

후속작인 뫼비우스의 살인의 출간 소식에도 관심이 덜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서평과 카페 및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맛보기 식으로 훑다보니

이번에는 코믹 코드의 역할은 줄어든 반면,

범죄는 사악해지고 하야미 3남매는 진지해졌으며, 전대미문의 소시오패스가 등장하는데다,

살육에 이르는 병의 슬랩스틱 버전이라는 독특한 작품이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니 앞서 확인한 서평과 소개글 그대로였습니다.

‘0의 살인도 기이한 연쇄살인사건을 다뤘지만 어딘가 연극적인 분위기가 지배했던 반면

뫼비우스의 살인은 훨씬 더 리얼하고 참혹한 연쇄살인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하야미 3남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추리는 여전하지만,

‘0의 살인에서처럼 독자들의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도쿄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살인마를 잡으려는 진지한 수사의 일환으로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코믹 코드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어

이런 종류의 재미를 기대한 독자에게도 충분한 만족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신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던 하야미 교조가

수사1과 최초의 여성 주임 후보인 기지마 레이코와 좌충우돌 엮이는 장면들은

‘0의 살인에 못잖은 재미를 주는 대목입니다.

 

이 작품이 살육에 이르는 병의 슬랩스틱 버전으로 불린 이유는

살인마 시나 도시오의 소시오패스적인 캐릭터와 참혹한 살인행각 때문입니다.

반전이나 구성 등 큰 틀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시나 도시오라는 인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살육에 이르는 병의 향기(?)가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신체훼손을 일삼던 살육에 이르는 병의 범인에 비하면 시나 도시오는 얌전한 편에 속하지만

작가 스스로 뫼비우스의 살인을 쓰면서 살육에 이르는 병의 플롯을 구상했다고 한 걸 보면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나 도시오의 캐릭터를 진화시킴으로써

작가의 대표작이자 반전의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드러난 시나 도시오와 그의 파트너 CAT O’NINE TAILS의 연쇄살인의 실체는

살육에 이르는 병과 비교해도 그렇고, 요즘의 눈높이로 봐도 신선한 반전에는 못 미치지만

이 작품이 출간된 90년대에는 충격과 함께 논란의 여지를 많이 남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시나 도시오의 스토리가 하야미 3남매 시리즈가 아니라

살육에 이르는 병의 톤으로, 그러니까 정색하고 19금 판정 수준으로 적나라하게 집필됐다면

훨씬 더 파괴력이 큰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취향이 코믹 코드보다는 잔혹한 미스터리 쪽에 있다 보니

그런 아쉬움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하야미 3남매 시리즈 중 일본에서 제일 먼저 출간됐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 안 된 ‘8의 살인은 어떤 톤의 작품일지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코믹 코드가 짙겠지만, 3남매의 첫 데뷔라 기대감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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