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편혜영과 한강의 작품을 출간 순서대로 완독하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첫 작품을 읽은 것이

1년 전, 그러니까 아오이 가든이 작년 8, ‘여수의 사랑이 작년 10월의 일입니다.

편혜영의 두 번째 작품집인 사육장 쪽으로를 끝내는데 무려 1년이 걸렸습니다.

장르물에 대한 편식과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어쩌면 읽고 싶은 욕망과 피하고 싶은 무의식의 충돌이 진짜 이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서점이나 블로그를 찾아보면 아오이 가든은 말할 것도 없고,

사육장 쪽으로역시 극과 극을 달리는 서평들이 게시돼있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체, 악취, 피와 뼈로 범벅이 된 불편한 풍경 속에 지어진 아오이 가든에 비해

사육장 쪽으로의 경우 평범한 일상을 무대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리적인 반발감과 문학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꽤 많았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지만, 무의식 속 어딘가에 저 역시 그런 반발감과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에

하루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단편집을 1년을 끌어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썩은 저수지 인근의 폐가, 역병에 잠식된 채 하늘에서 개구리가 쏟아지는 도시 등

명백히 인공적이고 혐오감을 주는 아오이 가든의 공간들에 비해

사육장 인근의 전원주택, 도심 속 아파트 단지, 재개발 중인 소도시, 평범한 기업 사무실 등

사육장 쪽으로의 공간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또는 우리가 직접 머물고 있는 곳들입니다.

물론 늑대 사냥이 벌어지는 도시, 유적지로 둘러싸인 채 모든 것이 정체된 도시처럼

여전히 어딘가 불온한 기운이 깃든 연극무대 같은 공간도 일부 등장하긴 합니다.

 

등장인물 역시 검은 물과 붉은 피 속의 시체들과 뒹굴던 아오이 가든속의 별종들 대신

도시의 한복판에서 마음은 분열되고, 몸은 피로에 찌든 채 하루하루를 무력하게 살아가는,

주변에 흔하게 널린 평범한 인간들 또는 우리의 자화상 같은 인간들이 등장합니다.

몇 번씩 취소됐던 여행을 드디어 떠나게 된 청춘남녀,

감언이설에 속아 신작로 곁의 전원주택으로의 이사를 감행한 파산 직전의 가장,

도시의 유적지 때문에 집수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

인형의 탈을 쓰고도 늘 웃어야만 하는 동물원의 퍼레이드 요원들,

직장과 가정의 붕괴를 코앞에 둔 위기의 중년남자 등

대체로 일그러진 현대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겪는 사건도 아오이 가든에 비하면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인물들은 제각각 희망에 들떠 모종의 일을 벌입니다.

미뤄뒀던 여행을 떠나고, 전원주택이라는 판타지를 쟁취하고, 망가진 집을 고치고,

난생 처음 겨냥할 목표가 생기고, 승진을 위해 불법적인 미션에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고,

닭장 같은 삶을 하룻밤이나마 잊게 만들어주는 게임 친구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은 어이없는 실수로 망가지거나

애초 그렇게 운명 지어진 것처럼 갈수록 진창을 헤매며 끝없는 늪으로 사라져버립니다.

전원주택은 사육장을 탈출한 개들이 날뛰는 악몽의 무대가 되고,

여행은 불의의 사고로 엉망진창이 되며, 망가진 집은 고칠수록 더 망가지고,

상사의 기쁨과 자신의 승진을 위해 전력을 다한 서류는 졸음 덕분에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마지막 수록작까지 다 읽고 나면 왜 사육장 쪽으로를 표제작으로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우선, 등장인물 대부분이 처한 현실적 공간 고속도로, 전원주택, 동물원, 아파트 단지,

회사 사무실, 재개발 지역 은 하나같이 닭장이나 사육장과 닮은꼴들입니다.

도망칠 수도 없고, 도망친다고 해도 더 나은 현실과 만날 가능성이 없는 곳들입니다.

결국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비좁은 닭장과 사육장에 갇힌 채,

삶과 죽음은 물론 희망과 고통, 감정마저 전지전능하게 통제하는 주인 밑에서

자신의 발을 쪼아대며 출구 없는 먹먹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심지어 그리고 그들은 그 뒤로도 여전히 불행할 것이 분명하다.”는 식으로,

절대 해소되지 못할 불편함만 잔뜩 남겨놓은 채 이야기는 막을 내려버립니다.

이 남겨진 불편함은 편혜영의 비호감 편에 선 독자들에게는 짜증과 찜찜함으로,

호감 편에 선 독자들에게는 그녀만의 특별한 미덕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아오이 가든의 충격을 한 번 더 맛보고 싶었던 독자에겐 다소 아쉬움과 실망감을 줬겠지만,

아마 두 번째 작품집에서도 하늘에서 개구리가 비처럼 쏟아지는 장면이 보였다면,

개인적으론 그것이 편혜영의 한계라고 규정지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평범한 인물과 일상 속의 이야기를 담은 사육장 쪽으로

전혀 모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 많았고,

다음 작품에서는 그녀가 또 어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까?”, 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줬기에

오히려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진 작품집입니다.

 

개인적인 선호작을 꼽아보자면,

아오이 가든의 후계자라는 면에서는 사육장 쪽으로밤의 공사가 기억에 남았고,

무심한 얼굴로 잔인한 현실을 풀어놓은 분실물금요일의 안부인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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