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의 시선
서미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어디까지 내용을 소개하는 게 적당한지 가늠할 수 없어서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글을 보니

스포일러가 아닐까?’라고 우려했던 내용이 전부 노출돼있어서 그 수준에 맞춰 서평을 씁니다.

조금이라도 찜찜한 분들은 제 서평은 물론 책 소개글도 건너뛰고 작품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20년 전, 살인범의 만행으로 가족은 몰살당하고 본인도 27곳의 자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이제 서른이 된 여자 최아린은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꿈을 통해, 또는 환시를 통해 남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서 아무 때나 불쑥불쑥 일어나곤 합니다.

그 능력은 때론 지독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지만,

때론 그 자체가 독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미쳤다, 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진술이었지만 최아린의 특별한 느낌에 끌린 오성준 형사는

그녀가 언급한 장소에서 토막 난 여자의 시신을 발견하곤 충격을 받습니다.

그녀의 특별한 능력을 눈에 보이는 대로 믿어야 할지,

숱하게 봐온 사기꾼들과 다를 바 없다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결국 최아린의 특별한 능력에 계속 의지하게 된 오형사의 수사는 나름 진전을 보이지만

어느 순간 오형사는 오히려 최아린이 유력한 용의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 ● ●

 

어떤 여자가 경찰서 강력반 형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꿈에, 살인사건 피해자가 암매장 된 곳을 봤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하면...”

현실이라면 바로 여경들에게 끌려 나가거나 심하면 병원으로 직행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픽션에서는 심심찮게 다뤄지는 캐릭터이기도 하죠.

공교롭게도 유사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일본 장르물을 본 직후에 이 작품을 보게 돼서

저도 조금은 얼떨떨한 느낌이었는데,

어쨌든 비현실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서미애 작가는 나름의 근거와 사례를 통해

아린의 특별한 능력을 제법 현실적인 것으로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이야기는 단순해보이면서도 어딘가 몽환적인 느낌을 갖게 만드는데,

그것은 현재의 토막 살인사건과 20년 전 아린이 겪은 사건이

현실과 꿈, 환시를 수시로 오가며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형사의 수사에 도움을 주는 현실의 아린이 있는가 하면,

꿈을 통해 20년 전 사건 당시의 참상을 낱낱이 지켜보는 아린도 있고,

길을 가다 문득 환시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들여다보는 아린도 있습니다.

세 명의 아린은 챕터가 바뀔 때마다 예고도 없이 툭툭 나타나

독자로 하여금 시점과 화자가 제멋대로 달라진다고 느끼게 만드는데,

이는 당혹감과 호기심,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기 위해 적절한,

즉 작품의 내용과 딱 들어맞는 구성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미애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서평을 찾아보니 대체로 뛰어난 구성에 대해 호평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아린의 시선역시 그런 점에서 미덕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현실의 사건에 적절히 몰입하면서도

아린이 겪은 20년 전 사건의 비밀과 그녀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도

조금도 쉴 틈 없는 호기심을 갖고 작품을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나란히 병행되는 두 개의 서사가 그만큼 잘 교차하며 녹아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전직 심령술사이자 현재 아린을 돕는 루나의 캐릭터가

조금은 필요에 따라 설정된 것처럼 작위적으로 느껴진 점인데,

그 외엔 꿈이나 환시 능력에 대해 원초적인 거부감을 가진 독자만 아니라면

누구나 서미애 작가가 펼쳐놓은 정교한 미스터리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적절한 조연들의 배치와 무리하게 설정되지 않은 형사 캐릭터들,

반전은 물론 상처투성이 아린에게 희망의 끈을 남겨놓은 엔딩 등

많지 않은 분량에 여러 가지 미덕을 채워 넣은 서미애 작가의 필력 덕분에

그녀의 전작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린의 시선의 후속작, 그러니까 아린 시리즈가 출간될 수도 있다는,

조금은 이른 기대감도 갖게 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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