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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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이지만, 청소년 버전으로 출간된 추리소설에 흠뻑 빠졌던 때가 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도 매력적이었지만,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와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루팡’(그땐 루팡이라는 표기가 표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은 어린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을 만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문학과 담을 쌓은 채 젊은 날을 보내면서 홈즈도 뤼팽은 기억에서 사라졌고, 뒤늦게 찾아온 장르물에 대한 관심은 온통 일본 미스터리와 현대 영미권 스릴러에 집중됐습니다. 그동안 뤼팽이 여러 곳에서 전집 혹은 단행본으로 출간됐어도 딱히 관심을 갖진 않았었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코너스톤에서 출간된 전집 소식을 접하곤 오랜만에 제대로 한번 완독해야겠다는 욕심이 들어 10권의 시리즈를 덥석 구매해버렸습니다.

 

그 첫 편인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은 아직 명성을 얻지 못한 뤼팽의 초기 활동부터 영원한 숙적 가니마르 형사와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대결, 그리고 세기의 라이벌인 헐록 숌즈(아마도 셜록 홈즈의 창조자 코난 도일의 허락을 받지 못한 탓에 이렇듯 괴이한 이름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와의 짜릿한 첫 대결에 이르기까지 9편의 단편을 수록해놓았습니다.

화려한 부유층과 부도덕한 지배층을 터는 도둑의 이야기는 픽션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일반인에게는 환영받는 소재입니다. 특히 그 과정이 귀신 뺨치듯 기막힌 트릭으로 포장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더구나 몇월 몇일 몇시에 귀하를 방문하겠다.”며 대담한 도둑 예고장을 날리는 대목에선 호기심과 함께 영웅의 출격을 지켜보는 듯한 흥분까지 맛보게 됩니다.

 

뤼팽은 천재적 지능에 덧붙여 마술사, 화학자, 변장의 천재, 무술유단자 등 다양한 능력을 갖춘 완벽한 캐릭터로 묘사되어 불세출의 도둑에 오르게 됩니다.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은 이런 뤼팽의 캐릭터를 골고루 맛볼 수 있게끔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꾸며져 있습니다.

유람선에서 체포된 뒤 수감생활을 하며 경찰을 멋지게 희롱하다가 기어이 아무도 예상 못한 방법으로 탈옥에 성공하는 3부작이 있고, 도둑 견습생으로서 처음 뤼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프리퀄 같은 단편도 있습니다. 열차 안에서 강도에게 습격당해 우스운 꼴이 되거나 뤼팽의 인생에서 딱 한 번 겪었다는 최악의 실수를 담은 에피소드도 있고, 타고난 직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약간은 판타지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물론 압권은 셜록 홈즈와의 기념비적인 첫 대결을 다룬 '헐록 숌즈, 한발 늦다'입니다. 비록 얼굴을 맞댄 것은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천재의 불꽃 튀는 대결은 재회를 고대하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수록작 한두 편에서 느꼈던 번역의 아쉬움(제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번역이 너무 앞서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외엔 오랜만에 뤼팽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소개글에 실린 뤼팽에 대한 찬사는 뤼팽을 모르는 독자에겐 과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볼 때는 소설 속 뤼팽에 관해 이보다 간결하고 적확한 표현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건을 훔치고 사기 행각을 일삼지만 그 방법이 우아하고 예술적이라 감탄을 자아낸다. 공권력은 뤼팽에게 어떠한 힘도 미치지 못하며 도리어 신랄한 조롱을 받기 일쑤다. 하지만 뤼팽은 조국 프랑스에 무한한 애국심을 보이고, 약한 존재가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거절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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