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
한새마 지음 / 북오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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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어선에서 어린아이들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강시호는 광역수사대 3팀장이 된 지금도 당시의 범인을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유일한 단서는 범인이 강시호의 등에 새겨 넣었던 라플레시아, 일명 시체꽃 문신입니다. 비슷한 문신의 소유자들은 꽤 있었지만 산스크리트어로 꽃잎을 채운 진짜 시체꽃 문신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한편 고급 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맡은 강시호와 3팀은 여러 사람을 용의선상에 올리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해 고전합니다. 그러던 중 피살자가 과거 사이비 종교에 몸담았던 사실이 밝혀지고, 그 부분을 추적하던 과정에서 강시호는 충격적인 사실과 직면합니다.

 

그동안 여러 편의 앤솔로지나 수상작품집에서 이름만 눈여겨보곤 했던 한새마의 첫 장편입니다. 아쉽게도 읽은 작품이 없어서 성향이나 장점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장편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강시호와 광역수사대 3팀이 수사하는 고급 아파트 살인사건이고 또 하나는 12년 전 인생의 밑바닥을 살던 김민서가 우연히 만난 또래 여성을 통해 종교에 입문하며 겪은 미스터리한 일들입니다. 이에 덧붙여 시체꽃 문신 살인마를 쫓는 강시호의 개인적인 수사가 간간이 끼어들면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풍성한 서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관 없어 보이던 세 개의 미스터리는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한줄기로 묶이면서 강시호에게 큰 충격과 시련을 안깁니다.

 

일단 강시호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가장 눈길을 끕니다. 20년 전의 참혹한 사건은 강시호의 몸과 마음에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희생된 아이들 중엔 여동생도 있었기에 강시호의 트라우마와 복수심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날것처럼 생생합니다. 범인이 등에 새겨 넣은 끔찍한 시체꽃 문신을 일부러 지우지 않은 것은 강시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20년 전의 참극에서 살아남은 뒤 최연소 광역수사대 팀장이 되어 문신 살인마를 쫓는다는 설정도 매력적이고, 다혈질이지만 필요할 때마다 냉정과 이성을 되찾는 점이나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대단한 폭력 재능과 함께 뛰어난 추리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미스터리 주인공의 필수 스펙은 빠짐없이 장착한 인물입니다. 문신 살인마에 집착한 나머지 잔혹한 살인사건이라면 자청해서 맡는 강시호 덕분에 3팀이 잔혹범죄전담팀이라는 별명을 얻은 설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만약 이 작품을 기점으로 잔혹범죄전담팀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강시호라는 캐릭터 덕분일 것입니다.

 

다만 재미있게 읽긴 했어도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가장 큰 건 짧은 분량에 세 개의 미스터리를 담다 보니 서사의 깊이나 밀도가 얕고 옅어 보인 점입니다. 고급 아파트 살인사건은 막판에 여러 차례의 반전을 거쳐 진범이 드러나긴 하지만 메인 사건이라고 하기엔 전개나 해법 모두 다소 가볍고 급해 보였습니다. 장편보다는 단편에 어울리는 소재였다고 할까요?

12년 전 김민서가 종교에 입문하며 겪은 미스터리는 고급 아파트 살인사건은 물론 강시호의 개인적인 수사와도 접점을 이루는 중요한 이야기지만 왠지 그 접점을 위한 도구처럼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접점에 자리 한 인물이나 사건 모두 필연적이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딱 떨어지는 쾌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느낌입니다.

강시호의 개인적인 수사 역시 그녀가 20년을 짊어졌던 죄책감과 복수심에 비하면 너무 쉽게 마무리됐습니다. 물론 그녀의 수사는 완결되지 않았고 후속작에서 계속 이어질 거라는 떡밥이 남겨지긴 했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찜찜함이 남은 게 사실입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인물, 사건, 심리(감정) 묘사가 가볍거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듬성듬성 이뤄지는 미스터리에는 좀처럼 몰입하기가 쉽지 않은데,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역시 그런 인상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강시호의 트라우마와 고통이 진심으로 전해지지 않은 점도, 고급 아파트 살인사건의 발단이 된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하기 어려웠던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강시호의 두 번째 이야기는 지금보다 100페이지 이상 분량이 늘어나도 좋으니 좀더 디테일하고 깊이 있는 서사와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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