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 마을에서
사노 히로미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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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이와타의 조사원인 마사키는 보육원에서 갓 독립한 소녀 마키와 함께 하토하 지구라는 부유한 마을로 향합니다. 19년 전 하토하 지구에서 살다가 자신을 보육원에 맡기곤 갑자기 실종돼버린 가족을 찾아달라는 마키의 요구 때문입니다. 얼마 전 보육원을 나오자마자 가족 찾기에 나섰던 마키는 가까스로 어머니 료코와 절친이던 변호사 이와타를 찾아냈고, 이와타는 왠지 껄끄러워 하면서도 마사키에게 마키를 도우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사키와 마키가 찾아간 하토하 지구는 외부인에게 지독히도 폐쇄적인 것은 물론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마을에서 실종사건 같은 건 없었다고 잡아뗍니다. 즉 마키의 가족은 19년 전 자발적으로 마을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사키와 마키가 당시 이웃이던 기모토 지하루와 접촉하면서부터 상황은 급변하고, 그때부터 두 사람을 향한 마을 전체의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이 작품의 세부 장르는 동조 압력 미스터리입니다. 즉 그것이 잘못된 일이나 생각임을 알면서도 동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집단 심리에 휘둘린 끝에 심각한 오판을 저지른 자들을 다룬 미스터리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다니던 자동차 회사의 결함 은폐를 알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눈감아버렸던 마사키, 학폭 피해자가 되기 싫어서 가해자 편에 섰다가 참혹한 비극을 맞이하고 만 마사키의 딸 에리, 업계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진실 찾기를 포기했던 변호사 이와타, 그리고 죽은 아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 위해 이웃의 비극에 눈감았던 기모토 지하루 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대부분이 이른바 동조 압력의 피해자들이자 동시에 공범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현재의 이야기로, 19년 전 벌어진 마키 가족의 실종을 조사하는 마사키의 행보이고, 또 하나는 과거의 이야기로, 22년 전 유치원생 아들 다카유키가 납치 살해된 시점부터 19년 전 마키의 가족이 옆집으로 이사 온 뒤 실종되기까지의 사건들을 1인칭 시점으로 설명하는 기모토 지하루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현재 시점의 하토하 지구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22년 전의 유치원생 납치살해, 19년 전의 일가족 실종, 현재의 사건 등 모두 세 개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 사건들은 하토하 마을에서 벌어졌다는 공간적 공통점뿐 아니라 실은 모두 동조 압력이라는 집단 심리에 의한 것이라는, 즉 크게 보면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 있는 비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품 속 하토하 지구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기이한 마을입니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남편, 전업주부이자 현모양처인 아내, 자녀는 둘 이상!”이라는 입주조건은 말할 것도 없고, 방범대를 조직하고 외부인에게 철저히 배타적인 것은 물론 마치 집단 세뇌에 걸린 사람들처럼 획일적인 사고와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기 때문입니다. 마을의 지향점에 동조하지 않는 자에겐 노골적인 왕따를 퍼부어 굴복시키거나 떠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로든 이 마을에 남아 살아가는 자들은 이런 기이함을 당연한 일인 듯 받아들이며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마을에서의 삶을 긍정적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맹신과 동조가 마을 내부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마저 오판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을에 납치살해범이 있을 리 없다!” “우리 마을에서 실종사건 같은 건 절대 벌어질 리 없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20여 년에 걸친 끔찍한 비극들이 양산된 것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무척 좋아해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왔지만, 동조 압력이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여러 가지 사건과 잘 엮어냈다는 점에서 누군가 이 마을에서는 오래 기억에 남을 개성 넘치는 작품입니다. 서론이 다소 길어 보였고, 하토하 마을의 비현실성이 자꾸만 발목을 잡은 점 때문에 별 1개를 빼긴 했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긴 점도 이 작품의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만약 내가 하토하 마을에 살았더라면, 또 만약 내가 동조 압력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여러 인물들의 처지에 있었더라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과 행동을 했을까?”라는 자문이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계속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노 히로미는 한국에는 처음 소개된 작가지만 후속작이 출간된다면 꼭 찾아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이왕이면 마사키-이와타 콤비가 다시 한 번 활약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라면 좋겠지만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더라도 나름 기대되는 바가 큰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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