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의 법칙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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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능력을 갖췄지만 최악의 속물이기도 한 변호사 미키 할러는 또 한 번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축하 파티 직후 귀가하던 중 순찰경관에게 제지당합니다. 무슨 연유에선지 자동차 뒤 번호판이 사라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의 트렁크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샘 스케일스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희대의 사기범이었던 스케일스는 할러의 고객 중 한 명이었고, 끝이 안 좋게 헤어진 일이 있는 악연의 인물입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할러는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고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습니다. 스스로를 변호하기로 한 할러는 후배인 제니퍼와 함께 대응에 나서지만 모든 정황은 그를 꼼짝없는 살인범으로 지목합니다.

 

변론의 법칙은 미국에서 2020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미키 할러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배심원단의 미국 출간이 2013년이니 무려 7년 만에 나온 신작인 셈인데, 그 사이 마이클 코넬리는 해리 보슈 시리즈르네 발라드 시리즈에만 주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미키 할러 시리즈’ 7편인 ‘Resurrection Walk’2023년에 출간됐습니다.)

 

의뢰인이 악당이라 하더라도 수임료만 맞으면 기꺼이 변호를 맡고 특유의 재능으로 무죄 혹은 형 감경을 이끌어냈던 미키 할러는 사방에 적이 많습니다. 그런 그가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의 처지가 되자 그 적들이 날뛰기 시작합니다. 할러에게 두 번이나 물을 먹었던 판사는 일반적인 보석금보다 두세 배 높은 금액을 책정해 그의 보석을 원천봉쇄했고, 할러에게 보복할 날만 기다려온 검찰은 사형집행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강력부 스타 데이나 버그를 투입하여 그를 완전히 매장하려 합니다. 검찰 못잖게 악당을 위한 변호사할러를 증오해온 경찰 역시 그의 몰락에 쾌재를 부릅니다. 피고인 할러가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긴 건 재판을 맡은 판사 워필드가 다혈질에 독선적이긴 해도 비교적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물이란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러는 단순히 무죄를 입증하는데 그치지 않고 진범을 직접 밝혀내기로 결심합니다.

 

변론의 법칙은 이른바 미키 할러 어벤저스의 맹활약을 그린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섯 번째 증인에서 법대를 졸업한 지 10개월 된 풋내기로 등장했지만 이제 9년차 변호사가 되어 할러와 함께 공동변호인이 된 한 제니퍼 애런슨, 할러의 두 번째 아내이자 사무장인 로나, 유능한 검사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휴가를 내고 할러의 변호를 맡은 첫 번째 아내 매기, 그리고 이복형인 해리 보슈에 이르기까지 할러 주위의 인맥들이 총출연합니다. 로스쿨에 다니는 할러의 딸 헤일리, 경찰학교에 다니는 보슈의 딸 매디, 충직한 수사관 시스코까지 가세한 ‘‘미키 할러 어벤저스의 전방위적인 활약은 사건 못잖게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전작인 배심원단이후 7년 가까이 할러의 연인이었다가 헤어졌던 켄달이 오랜만에 그의 곁으로 돌아와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장면들도 아슬아슬한 로맨스의 묘미를 선사합니다.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제한된 활동밖에 할 수 없지만 특유의 재능을 발휘하여 팀원들을 움직이는 할러의 활약도 매력적이고, 할러를 매장하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사형집행인이란 별명의 검사 데이나 버그의 맹공격도 화려하게 그려져서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읽힙니다. 전처인 매기와 로나, 현재의 연인인 켄달과의 미묘한 4각 로맨스도 재미있고, 성장기 내내 아빠 할러와 갈등을 겪었던 헤일리가 법정 안팎에서 할러를 응원하는 대목은 시리즈를 쭉 읽어온 독자에겐 그저 애틋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을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법정 스릴러의 교과서를 방불케 하는 상세한 재판 과정 묘사들이 간혹 느슨하고 지루하게 읽힐 만큼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꼭 필요한 설명들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미키 할러 시리즈에 비하면 다소 과해 보였습니다. 그 부분들이 조금만 축약됐다면 훨씬 더 슬림하고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상대적으로 미스터리의 핵심인 살인사건 자체는 분량에 비해 단선적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가장 기대된 점은 할러의 딸 헤일리의 미래입니다. 후속작인 ‘Resurrection Walk’가 이 작품 이후 3년 만에 출간됐으니 현재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헤일리는 어엿한 변호사가 돼있을 것 같지만 어쩌면 정반대로 엄마인 매기의 뒤를 이어 검사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가 됐다면 할러와 제니퍼의 동료가, 검사가 됐다면 할러의 이 되는 셈입니다. 어떤 사건이 할러를 궁지에 몰아넣을지도 궁금하지만 애초 가족이었다가 해체의 상처를 겪었던 할러-매기-헤일리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가 더 궁금해지는 건 미키 할러 시리즈의 팬이라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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