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 쿤룬 삼부곡 2
쿤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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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이하 학교폭력 일기’)은 역시 독특한 제목을 가진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이하 청소지침서’)에 이은 쿤룬 3부곡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세 번째 작품 역시 업자에게 잊혀진 시체 보관기록이라는 엽기적이면서도 특이한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청소지침서가 희대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숭배하는 전 세계적인 살인집단 ‘JACK’의 조직원만 골라 죽이며 복수를 펼치는 결벽증 미소년 스녠의 활약을 그렸다면, ‘학교폭력 일기는 살인범에게 아버지를 잃은 뒤 지독한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살던 15살 여중생 장페이야가 무시무시한 살인마로 변신하여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쿤룬 3부곡이라는 시리즈 명에 걸맞게 두 작품에는 몇 가지 접점이 있습니다. 장페이야는 청소지침서에서 아버지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어린 남매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또한 부와 명예와 미모를 겸비한 심리치료사 닥터 야오, 그녀를 숭배하는 미스터리한 인물 이하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정보판매상 다비도프, 그리고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의 주인공이 될 시체수거업자등 눈길을 끄는 조연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계속 바뀌지만 크게 보면 한 편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즉 시리즈의 묘미를 한껏 살린 작품들이란 뜻입니다.

 

아버지를 잃고 동생과도 헤어져 고모 집에 머물게 된 장페이야는 고모 부부의 거칠고 탐욕스런 학대는 물론 전학 간 학교에서마저 지독한 폭력에 시달립니다. 그런 장페이야에게 유일한 위안은 편의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류촨한뿐입니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다정다감한 촨한 덕분에 장페이야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편안함과 안식을 얻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불청객 때문에 촨한의 어두운 과거가 밝혀지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장페이야와 촨한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때 고모집과 학교에서 더는 인내할 수 없는 사태들이 벌어진 상태에서 누군가 장페이야에게 손을 내밉니다. 복수하라고, 도와주겠다고.

 

가해자에 대한 복수는 오래된 소재이기도 하고 근래 들어 지나치게 자주 소모된 탓에 다소 식상한 면이 있지만, 그래선지 장르를 불문하고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설정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쿤룬 역시 그중 하나인데, 중화권 미스터리의 일반적인 특징 시끄럽고 잔혹하지만 블랙유머가 난무하고 대체로 쉽게쉽게 넘어가는 구성 등 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나름 흥미로운 캐릭터와 스토리를 자아냈습니다.

혹독한 성장기와 비극적인 사건 때문에 희대의 살인마가 된 청소지침서의 스녠이나 여린 모범생이었지만 끝이 안 보이는 지독한 폭력으로 인해 임계점을 넘은 끝에 피의 복수자가 된 학교폭력 일기의 장페이야는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임에 분명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 속에 연민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 가족, 연인, 미래에 대한 희망 등 - 을 배치하여 나름 적절한 방식으로 중화 효과를 이끌어냅니다. 또한 주인공들에게 (비위가 약한 독자라면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잔혹한 폭력을 거듭 가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그들을 응원하게 만들고 부디 복수해!”라며 등을 떠밀고 싶게 만들기도 합니다. 과도할 정도의 감정 이입을 조장함으로써 캐릭터의 비현실성을 망각하게 한다고 할까요?

 

잔혹한 스릴러 서사를 좋아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별 4개에 그친 가장 큰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것이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스포일러를 피해 이야기하자면 너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쉽게 오해하고, 너무 쉽게 살인마가 된다, 정도인데, 적잖은 중화권 미스터리에서 비슷한 아쉬움을 여러 번 느낀 걸 보면 아무래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대목들이 많아서 인상 비평에 가까운 서평이 되고 말았는데,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어도 중독성이 강한 이야기라 한 편이라도 읽으면 나머지 작품들도 찾아 읽게 될 게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저 역시 시리즈 마지막 작품까지 달릴 생각인데, 이 작품에서 장페이야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류촨한이 막판에 세 번째 작품을 위한 큰 떡밥을 남겨서 더욱 기대감을 갖게 됐습니다. 과연 세 번째 작품에서 장페이야가 류촨한과 재회할지, 또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될지, 그럼으로써 첫 번째 작품의 주인공 스녠과 연결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1~2편의 모든 인물이 집합하여 화려한 대결을 펼친다.”고 하니 1~2편보다 더 세고 독하고 잔혹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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