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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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는 에도시대의 괴담을 다루는 미야베 월드 2중에서도 가장 편수가 많은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입니다.

 

에도 간다 미시마초에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는 흑백의 방이라는 객실에 손님을 초대하여 조금 특이한 괴담 자리를 마련해왔다. 이야기꾼이 한 명에, 듣는 이도 한 명. 하는 이야기는 하나뿐. (중략) 그 자리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만 그치고,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하여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듣는 이는 받아든 무거운 짐을 흑백의 방에서만 듣고 잊는다.” (p 9)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야기, 너무나 고통스럽거나 무서워서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 등 흑백의 방을 찾은 화자들의 사연은 듣는 것조차 사뭇 힘들고 괴로운 내용들입니다.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고.”라는 흑백의 방의 원칙은 이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화자는 이야기함으로써 고통과 번뇌를 버릴 수 있고, 청자(聽者)는 들어주긴 하지만 그것을 흑백의 방 밖으로 흘리지 않고 그대로 버릴 뿐입니다.

 

이 특이한 괴담 자리는 애초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인 17세 소녀 오치카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괴로운 기억을 품은 채 고향을 떠나 친척의 가게인 미시마야에 머물게 된 오치카는 이 세상의 온갖 기구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며, 상처 입은 마음을 봉합하고 그 흔적을 안고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인 눈물점부터는 미시마야의 차남이자 오치카의 사촌인 도미지로가 청자의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청자이자 주인공으로서 세 번째 작품을 맞이했지만 도미지로는 여전히 어리숙하고 순진할 뿐입니다. 더구나 이번 수록작 세 편 모두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들이라 도미지로는 때론 대놓고 놀라거나 화자 앞에서 구토를 하는 등 숙맥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사위와 등에

저주에 걸린 누나를 구하려다 그 자신이 저주에 걸려 오직 신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노름의 마을에 끌려간 11살 소년 모치타로는 언젠가 현세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고용일꾼처럼 부지런히 일을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파국뿐입니다. 그날 이후로 모치타로는 웃는 방법을 잃은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아왔습니다.

 

질냄비 각시

거친 강물을 오가는 나룻배 선장인 기요마루와 누이동생 오토비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는 질냄비로 인해 운명이 뒤바뀌고 맙니다. 그 질냄비 안에는 상상도 못할 기이한 것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입동 아침, 연못에서 건져 올린 시체가 되살아나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시체의 공격을 받은 인간은 시체와 똑같이 괴물이 돼버립니다. 17살 소년 신고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인간이 아닌 자들과 대적합니다. 하지만 기괴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무수한 인간이 아닌 자들이 나타나자 큰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주사위와 등에는 스토리는 전혀 다르지만 미야베 월드 2미인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한 색감과 이세계 시공간을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질냄비 각시는 전형적인 괴담이지만 거친 강물과 그곳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의 마력이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표제작인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는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미야베 미유키 표 좀비물입니다. ‘미야베 월드 2외딴집괴수전이 저절로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한데, 스케일이나 여운 등 모든 면에서 두 작품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또한 괴물과 나쁜 정치는 사람의 목숨을 뿌리째 베어내는 것으로는 똑같은 해악이다.”라는 작품 속 한 줄에서 감지할 수 있듯 흥미로운 사회파 호러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선지 다분히 후쿠시마 오염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다음 편에는 오염된 바다를 그린 사회파 호러를 기대하며라는 삼송 김사장 님의 편집자 후기는 시원한 사이다처럼 읽혔습니다.)

 

미야베 월드 2은 저의 최애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도 미시마야 변조 괴담은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데, “다음 작품인 9권이 일본에서 예약판매 중이라 2024년 봄쯤에는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라는 편집자 후기를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들뜰 따름입니다. 아홉 번째 작품에선 미시마야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 청자였던 오치카의 출산, 오랜 시간 집을 나가있던 장남 이이치로의 복귀, 차남이자 현재 청자인 도미지로의 신상 등 미시먀야 전반에 크고 중요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과연 어떤 괴담들이 흑백의 방을 서늘하게 만들지, 그 괴담들이 미시마야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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