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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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와카타케 나나미는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에서 이치노세 다에코라는 여성을 만납니다. 화려하고 거침없는 인상의 다에코는 와카타케에게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자고 제안하지만, 정작 얼마 후 자살을 시도한 끝에 의식불명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알게 된 날, 와카타케는 다에코가 우편으로 보낸 수기를 받습니다. 거기엔 마음속에 차가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한 독살범의 고백과 함께 다에코가 기록한 충격적인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단 하루, 그것도 몇 시간 만난 게 전부지만 다에코의 수기를 읽은 와카타케는 그녀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탐정역할에 뛰어듭니다.

 

나의 차가운 일상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로 유명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한국에서 세 번째 개정판으로 나온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19913,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나의 차가운 일상이 그해 10월에 출간됐으니 불과 7개월 만에 연이어 나온 셈입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 이름이 작가와 동명인 와카타케 나나미인데, 그래선지 한국에선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로 명명됐습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12편의 단편을 통해 사보 편집자인 와카타케 나나미와 익명의 작가 사이에 벌어지는 추리의 향연을 그리고 있다면, ‘나의 차가운 일상은 직장을 그만둔 와카타케 나나미가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에서 만난 미지의 여인 때문에 탐정 역할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지금까지 읽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그 어느 작품과도 뚜렷이 차별될 정도로 형식과 내용 모두 독특한 작품입니다. 23중의 서술트릭과 밀실트릭이 등장하고, ‘진범 찾기자체보다 수기를 남긴 채 의식불명에 빠진 다에코의 삶을 역추적하는 이야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와카타케 나나미 특유의 냉소적이거나 돌발적인 서사는 여전한데, 특히 오지랖 넓은 좌충우돌 탐정 하무라 아키라를 꼭 닮은 아마추어 탐정 와카타케의 캐릭터는 다소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도 수시로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는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다에코는 왜 이 수기를 쓴 것일까? 왜 나에게 이 수기를 보낸 것일까? ‘수기속 무자비한 독살범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일까? 수기는 다에코의 유서일까, 아니면 그녀를 살해될 운명에 빠뜨린 흉기일까?

 

여러 의문에 휩싸인 가운데 누가 다에코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하려 했나?”, “수기에 등장하는 독살범은 누군가?”가 와카타케의 1차 미션이지만, 정작 그녀의 집요한 탐문이 얻어낸 결과는 팩트보다는 다에코의 삶 이면을 지배해온 어둡고 차가운 그 무엇이 대부분입니다.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다에코가 어떤 사람인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 그녀가 정말 살해된 건 맞는지, 만일 자살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 수습할 수 없는 혼란이 와카타케를 괴롭힙니다.

또한 억압과 폭력에 의해 일그러진 가족, 바보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한 한 독살범의 증오와 살의, 진심인지 허언인지조차 모호한 왜곡된 사랑, ‘제대로이어진 거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인간관계 등 다에코를 둘러싼 심리적인 요인들이 워낙 이리저리 꼬여있어서 와카타케는 명쾌한 탐정소설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복잡 미묘한 심리 미스터리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가련한 여주인공처럼 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막판에 와카타케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긴 하지만 이런 설정들 때문에 독자로서는 개운함과는 거리가 먼, 무척이나 씁쓸한 여운을 맛보게 됩니다. 마치 여러 사람의 심연을 한꺼번에 들여다보다가 스스로 괴물이 될 뻔한 순간에 가까스로 발을 뺀 느낌이랄까요?

 

전부는 아니지만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은 메모가 필요할 정도로 무척이나 복잡하고 산만한 구성을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복잡함과 산만함을 해독하고 해석하는 게 와카타케 나나미 읽기의 진짜 매력이긴 하지만 때론 이야기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이 독자의 호불호를 가르는 경계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의 차가운 일상은 팩트나 단서보다 심리적 요인들이 많이 개입돼서 그런지 같은 페이지를 두세 번씩 되읽은 경우가 더 많았는데, 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꽤 있어서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꼭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런 뒤에 다시 한 번 읽는다면 이 작품의 진가를 좀더 확실히 맛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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