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목격자
E. V. 애덤슨 지음, 신혜연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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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노골적으로 공개한 칼럼으로 인기와 비난을 동시에 얻으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저널리스트 젠 헌터는 그동안 감춰왔던 치명적인 비밀 하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한낮의 유명 관광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자살사건의 목격자가 되고 맙니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젠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절친인 벡스는 오래 전부터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여온 젠이 걱정되지만, 오히려 젠은 직접 목격한 사건을 기사로 쓸 계획을 세웁니다. 누군가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음을 암시하는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젠은 트위터를 통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분투합니다.

 

훤한 대낮에, 그것도 자신을 포함하여 다섯 명이 코앞에서 목격한 살인-자살사건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설정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물론 이 설정은 젠에게 날아온 트위터 메시지에 의해 제기된 것일 뿐 초반부터 확정된 상황은 아닙니다. 40대 초반인 젠이 젊은 시절부터 심리적인 불안정을 겪어왔다는 점에 착안한 독자라면 누군가의 악의적인 장난에 휘말린 젠이 지독한 심리 호러 서스펜스 서사를 이끌어갈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이 설정이 사실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누군가 두 연인을 조종하여 끔찍한 살인-자살극을 유도했을 가능성에 주목할 것입니다. 중반부까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던 작가는 이내 범인의 정체를 공개하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릴러로 방향을 확실히 잡습니다.

 

저널리스트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과장되게 까발린 칼럼으로 인기를 얻은 젠은 과잉공유욕구, 공황장애, 심리적 의존증을 겪는 유약한 인물입니다. 대학시절 만난 절친 벡스 덕분에 가까스로 안정된 삶을 유지해왔지만 얼마 전 연인인 로렌스와 끔찍한 방식으로 헤어진데다 해고통보에 이어 살인사건까지 목격하면서 심리적으로 완전히 붕괴 일보직전에 이릅니다. 그런 그녀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익명의 트위터 메시지를 받은 뒤 사건의 진상을 기사화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는 건 무척이나 역설적인 일입니다. 문제는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익명의 트위터를 통해 연이어 날아드는 스토킹에 가까운 협박장들입니다. 협박장을 보낸 익명의 존재가 실은 살인-자살극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한 젠은 벡스의 도움으로 유력한 용의자의 행적을 뒤쫓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젠의 마음속엔 진실 찾기를 넘어선 욕구가 자리 잡습니다. 그건 바로 복수심입니다.

 

이 작품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다양한 종류의 폭력이 등장합니다. 데이트 폭력, 가스라이팅, 스토킹, 가정폭력, 시기와 질투를 넘어선 집착, 그리고 죄의식 없는 살인이 그것입니다. 대부분의 폭력은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출발하며, 그 욕구가 자기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물리적 수단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젠과 그녀의 절친인 벡스는 물론 살인-자살사건의 목격자들 대부분 이런 식의 폭력으로 인한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데, 그 때문에 젠은 조사를 거듭할수록 다분히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살인을 목격한 뒤 협박을 받아가며 진상을 밝히려는 처지에서 스스로 극단적인 폭력을 저지르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젠의 일거수일투족은 말하자면 폭력에 관한 심리 스릴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목격자가 있는 사건이지만 실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설정 자체는 독특하고 매력적이며, 심리 스릴러의 미덕도 함께 녹아있어서 500여 페이지의 분량을 금세 완주할 수 있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아쉬움이 남았는데, 하나는 사건의 성격이나 규모에 비해 과도한 분량입니다.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러 인물의 심리를 강조하기 위해 이야기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적어도 100페이지 정도는 사족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막판 반전을 위해 동원된 개연성 부족한 우연입니다. 차라리 상투적인 엔딩이었다면 이해됐겠지만 희박한 우연에 기댄 반전을 위한 반전은 앞서 읽은 이야기들을 다소 허망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아쉬움만 없었더라면 적어도 4.5~5점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니 설정에 흥미를 느낀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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