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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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부터 절친으로 지내온 7명의 T대학 졸업반 친구들. 그 중 한 명인 쇼코가 자신의 원룸에서 사체로 발견됩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불명확한 상태에서 가가를 포함한 나머지 친구들은 나름 진실을 찾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은사의 집을 찾은 일행이 다도 모임을 갖는 가운데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사망원인이 차에 든 독으로 밝혀지지만 경찰은 일행 중 그 누구에게서도 물증이나 단서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두 사건의 연관성마저 불투명한 가운데 가가는 냉정한 태도와 날카로운 추리, 그리고 약간의 행운을 통해 점차 진실에 다가갑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가가에게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안겨줍니다.



 

설월화(雪月花) 살인게임이란 부제가 붙은 졸업1985방과 후로 데뷔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두 번째로 내놓은 작품입니다. 20대 후반이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참신함과 도전정신도 엿보이고, 신선한 트릭을 위해 골몰한 흔적과 함께 약간의 치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80년대라는 아날로그 분위기 탓도 있지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데뷔작의 부담 때문에 조금은 무리한 트릭을 구사하느라 치기를 부린 게 아닐까, 제 멋대로 추정해봅니다.) 또 작가 본인과 같은 또래인 주인공들, 특히 졸업이라는,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통과의례를 앞둔 7명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청춘 미스터리로서의 면모도 맛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리즈를 다 읽은 독자로서 중년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가가의 파릇파릇한 대학졸업반 시절을 만나는 건 다시 읽기만의 특별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두 절친의 죽음, 풀리지 않는 밀실트릭, 다도 모임을 이용한 독살,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서로 전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살아남은 친구들의 자책과 회한 등 다양한 코드들이 버무려진 가운데 가가는 아마추어지만 베테랑 형사 못잖은 추리력과 판단력을 발휘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간미 넘치는 형사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허술하게 넘기지 않는 냉정함을 겸비한 가가는 절친들은 물론 얼마 전 프로포즈 한 여학생에게도 가차 없는 의심을 보냅니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불과해서 그런지 가가는 감정의 진폭도 크고, 속내를 확실히 감추지도 못하는 어리숙한 초짜티를 내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캐릭터에 익숙한 독자에겐 낯선 일이지만, 오히려 그런 대목이 더 신선하고 재미있게 읽힌 게 사실이긴 합니다.

 

가가의 개인사, 특히 시리즈 마지막 편을 장식한 비극적인 가족사의 단초를 읽을 땐 소름이 돋기도 했는데, 경찰인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고 확신한 탓에 경찰이 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를 지망하는 가가의 모습은 먼 훗날 그가 겪을 고통을 알고 있는 독자에겐 그저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허세와 자신감을 앞세워 당당히 프로포즈하는 모습이라든가 검도에서 빼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대목은 젊은 날의 가가에게서만 맛볼 수 있는 장면들이라 그의 개인사로 인한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을 충분히 상쇄해주기도 했습니다.

 

남겨놓은 메모를 보니 다음 작품인 잠자는 숲에서 가가는 형사로 등장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무척 기대가 되는데, 우선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가가가 어떤 경위로 경찰이 된 것인지, 그의 프로포즈는 어떤 전개를 보였는지, 졸업잠자는 숲사이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등 다수의 작품을 집필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이 얼마나 일취월장했을지 등 지켜봐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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