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몰리션 엔젤 모중석 스릴러 클럽 28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박진재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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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폭탄전문가 캐롤 스타키는 3년 전까지만 해도 LA경찰국 폭발물처리반에서 근무했지만, 그녀의 연인이자 파트너였던 슈거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사고 이후 범죄음모수사과에서 근무하는 중입니다.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스타키는 홀로 살아남은 죄책감을 못 이기고 술 담배에 찌든 채 냉소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어느 날, 폭발물처리반의 한 요원이 LA 실버레이크에서 폭탄 제거 중 폭사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스타키는 폭탄에 대한 조사와 함께 주변 탐문을 벌입니다. 그러던 중 ATF(주류-담배-화기 단속국)에서 파견된 잭 펠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 사건은 미스터 레드라 불리는 폭탄 사이코패스의 범행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데몰리션 엔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7년에 읽은 로버트 크레이스의 ‘L.A. 레퀴엠때문입니다. ‘L.A. 레퀴엠은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가 주인공인 작품이지만,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못잖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조연이 바로 이 작품의 히로인이자 폭탄전문가인 캐롤 스타키입니다. 다른 독자의 서평을 통해 캐롤 스타키가 로버트 크레이스의 스탠드얼론 데몰리션 엔젤의 주인공이란 걸 알게 된 뒤 빨리 읽고 싶은 조바심이 일었지만, 게으름을 부리다가 결국 5년 만에 캐롤 스타기를 만나게 됐습니다. (참고로 원작 기준으로 ‘L.A. 레퀴엠1999, ‘데몰리션 엔젤2000년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물의 구도를 갖춘 데몰리션 엔젤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폭탄에 환장한 사이코패스와 화이트 사이코패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괴의 쾌감과 돈을 위해서라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미스터 레드가 희대의 폭탄살인마라면, 캐롤 스타키는 유능한 수사관이자 폭탄처리전문가지만 동시에 폭탄과 단 둘이 있을 때면 자신을 폭탄의 일부로 느끼며 안도감을 느끼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대결에 끼어드는 세 번째 주인공은 ATF 요원 잭 펠입니다. 그는 7건의 폭탄사건을 일으킨 미스터 레드를 집요하게 쫓고 있으며, LA 실버레이크 사건 역시 그의 짓이라고 확신합니다. 안 그래도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스타키가 볼 때 사건을 빼앗으려는 듯한 잭 펠은 눈엣가시입니다. 하지만 잭은 수사의 주도권을 스타키에게 넘긴 채 조력자로 남습니다. 스타키를 못미더워하는 경찰 상부는 여차하면 사건을 강력과로 넘길 태세지만 스타키와 잭은 사소한 단서들을 통해 점차 진실에 다가갑니다.

 

로버트 크레이스의 대표작인 엘비스 콜 & 조 파이크 시리즈에서도 여러 번 맛봤지만 그의 액션 스릴러는 단순명쾌하고 시원한데다 엄청난 속도로 폭주합니다. ‘데몰리션 엔젤은 그런 미덕에 더해 캐롤 스타키라는 주인공의 트라우마까지 더해져 더욱 눈길을 끕니다. 3년 전 연인 슈거를 폭발사고로 잃은 정신적 트라우마는 말할 것도 없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줄 없는 전신의 끔찍한 상처는 그녀로 하여금 절망 이상의 심연에서 허우적대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스타키는 당시 245초 동안 심장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맞닥뜨린 미스터 레드사건은 스타키에겐 한편으론 동료를 죽인 범인을 잡겠다는 절실함을 발동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론 3년 만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 싶은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해직과 징계를 각오하면서까지 미스터 레드를 잡기 위해 수사에 집착하는가 하면, 잭 펠 때문에 흔들리는 자신의 감정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는 스타키의 캐릭터는 사건 자체보다 더 흥미롭게 읽히는 대목임에 분명합니다.

 

제가 잘못 아는 게 아니라면 캐롤 스타키의 다음 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없습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데몰리션 엔젤자체가 단 한 방에 그녀의 매력과 에너지를 모조리 소진시킨 탓에 더 이상 강렬한 이야기를 자아낼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아직 시리즈 전체(19) 가운데 단 4편만 한국에 소개된 엘비스 콜 & 조 파이크 시리즈에서 카메오로라도 좋으니 스타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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