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 교실 -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정말 이상한 소설뿐이지만, 나는 쓰는 동안 이런 일이 언젠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들은 매우 이상하지만, 내게는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전작인 살인출산소개글에 실린 무라타 사야카 본인의 말입니다. 10명의 아이를 낳으면 합법적인 살인권을 얻게 되는 세상, 세 사람의 사랑에서만이 쾌감과 정화를 느끼는 사람들, 섹스리스 부부의 섹스 없는 임신도전기, 의학의 발달로 자살만이 유일한 죽음의 방편이 된 세상 등 다소 불편하고 불쾌한 주제들을 상상을 초월하는 설정과 스토리를 통해 다뤘던 살인출산이 무척 인상 깊게 남았는데, 그 덕분에 무성 교실이라는 역시나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새 단편집을 찾아 읽게 됐습니다.

 

네 편의 수록작은 살인출산소개글에 실린 작가의 말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동일한 세계관을 그립니다. 27년 전 만화를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한 마법소녀놀이를 36살이 된 현재까지 지속하며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용해제로 사용 중인 여성, 초등학생 때 품기 시작한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파괴하기 위해 첫사랑 당사자를 실제로 파괴하기로 결심한 여성, 성인이 될 때까지 학교에서 성별 노출을 금지시킨 세상에 살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은 물론 사랑의 방법에 관해 큰 혼란을 겪는 여고생, 그리고 분노라는 감정 자체를 느끼지도, 알지도 못 하는 젊은 세대에게 큰 충격을 받은 40대 여성의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건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라는 생각입니다. 공교롭게도 출판사 소개글에도 바로 이 문구가 등장하는데, 매 수록작마다 초반엔 비정상으로 보이던 주인공이 갈수록 정상처럼 느껴지거나 반대로 정상으로 보이던 주인공이 점차 비정상으로 느껴지는 전개가 거듭됐기 때문입니다. 36살에도 마법소녀놀이를 그만두지 않는 여성이나 첫사랑의 환상을 파괴하기 위해 첫사랑 당사자를 실제로 파괴하는 여성이 전자라면, 성별이 금지된 학교에서 홀로 정상처럼 보이던 여고생이나 분노가 사라진 이상한 세상에서 홀로 정상적인 감정을 유지하고 있는 중년여성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감정이입의 대상인 주인공들이 이렇듯 정상과 비정상을 오락가락하는 동안 독자는 그들보다 더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곤 이런 일이 언젠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라는 작가의 말대로 리얼리티 충만한 판타지라는 역설적인 느낌까지 받게 됩니다.

 

살인출산이나 무성 교실은 일반적인 독자에겐 쉽고 편하게 읽힐 작품은 아닙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크레이지 사야카라는 별명까지 얻은 걸 보면 그녀의 전공(그녀 표현대로라면) “매우 이상하지만,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인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야미쓰(イヤミス, 불쾌한 기분이 남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제 취향과 일정 부분 맞닿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작품을 계속 찾아 읽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도발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개글을 읽게 된다면 찜찜함 속에서도 관심을 갖게 될 게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무라타 사야카의 이상한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라면 살인출산을 먼저 읽을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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