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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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 평범한 토요일. 신주쿠 중앙공원에서 폭탄이 터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대낮부터 공원에서 위스키를 마시다가 참상을 목격한 알코올중독자 바텐더 시마무라는 1971년 자신의 눈앞에서 터졌던 폭탄을 떠올리며 충격에 빠집니다. 그를 더욱 놀라게 한 건 공원 사망자 가운데 과거 함께 대학투쟁을 벌였던 구와노, 유코가 포함돼있다는 점입니다. 시마무라는 2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3총사가 한날한시에 폭탄이 터진 공원에 있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그 앞에 죽은 유코의 딸 도코가 나타나 자신도 진실 찾기에 나서겠다고 주장합니다.

 

60년대 반정부투쟁 조직인 전공투(全共闘)의 동지이자 진한 우정을 나눴던 도쿄대 3총사 기구치(=시마무라), 구와노, 유코는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신주쿠 중앙공원의 폭탄 테러로 인해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려 재회합니다. 특히 기구치와 구와노는 1971년에 일어난 폭탄 사건 때문에 오랫동안 경찰의 추격을 받아왔는데, 기구치는 시마무라로 이름을 바꾼 뒤 도망자처럼 지내며 허드렛일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작은 바의 바텐더로 일하는 중이고, 구와노는 당시 프랑스로 도망친 바 있습니다. 유코의 경우 당시 동거하던 시마무라에게 메모 한 장만 남긴 채 소식을 끊었는데, 시마무라는 폭탄테러 사건을 계기로 만난 그녀의 딸 도코를 통해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들으며 깊은 회한에 잠깁니다.

 

무차별 살상을 노린 듯 하지만 한편으론 목표물이 명확했던 폭탄테러가 일어난 가운데 여러 인물들이 긴장감 넘치는 행보를 보입니다. 공원의 조각난 사체에서 구와노의 지문이 발견된 탓에 22년 전 폭탄 사건이 소환되면서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 시마무라, 엄마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다며 막무가내로 시마무라의 조사에 끼어든 유코의 딸 도코, 그리고 시마무라를 찾아와 충고와 도움을 전하는 전직 경찰이자 현직 야쿠자 아사이와 신주쿠 역 인근의 노숙자 무리 등이 그들입니다. 특히 시마무라는 공개 수배된 가운데 기자와 경찰을 사칭해가며 피해자 유족과 목격자를 직접 탐문하고, 유코를 비롯한 피해자들 사이의 공통점을 확인합니다.

 

폭탄테러범을 추격하는 단선적인 구조처럼 보이지만, 22년 전 세 사람의 우정과 비극적인 폭탄사건이 밑바탕에 깔려있고, 현재의 시마무라 주위에 야쿠자와 노숙자, 유코의 딸 도코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꽤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작가의 정교한 설계도에 놀랄 때도 있지만, 간혹 ?” 소리가 날 정도로 사건과 인물관계가 헷갈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한눈에 쏙 들어오는 문장들이라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나름 집중하지 않으면 몇몇 인물들의 언행을 놓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작가의 의도도 그럴 거라고 추정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폭탄테러 자체보다 22년 전 빛나는 청춘과 우정을 나누며 무장투쟁을 함께 했던 세 인물이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이를 먹어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하거나 성장하거나 일그러지는 과정입니다. 뛰어난 엘리트였던 그들은 그 누구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한순간의 비틀림으로 인해 약속된 미래를 모조리 파괴당했고, 끝내 중년에 이르러서는 한날한시에 비극을 맞이하고 맙니다. 비루한 알코올중독자가 된 시마무라가 전공투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가장 깊게 기억에 남은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유일무이하게 나오키 상과 란포 상을 동시에 수상한 이력답게 문학적 완성도와 미스터리의 견고함이 잘 배어있는 작품입니다. 꽤 복잡한 구도와 다수의 등장인물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번에 완주할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니 출판사의 소개글에 눈길이 끌리는 독자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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