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슐리외 호텔 살인 클래식 추리소설의 잃어버린 보석, 잊혀진 미스터리 작가 시리즈 1
아니타 블랙몬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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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미국 남부 소도시에 자리한 리슐리외 호텔엔 괴팍한 독신녀 애들레이드 애덤스를 비롯 여러 장기투숙자들이 머무르고 있습니다. 부유한 미망인과 조카, 은행원, 갈등 중인 부부, 이혼한 요부,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딸, 그리고 바람둥이 영업사원이 그들입니다. 어느 날 1주일 전부터 호텔에 투숙해온 한 남자가 애들레이드의 스위트룸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됩니다. 그의 정체가 장기투숙객 중 한 명이 고용한 사립탐정으로 밝혀지면서 경찰은 그들 가운데 범인이 있다고 확신하곤 모두를 철저히 조사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연이어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경찰과 투숙객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특히 모든 살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탓에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된 애들레이드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아칸소가 낳은 범죄소설의 여왕이란 극찬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건 아니타 블랙몬이 1920~30년대에 활동한 작가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녀가 남긴 추리소설이 단 두 편뿐이기 때문입니다. ‘리슐리외 호텔 살인’(1937)돌아올 길이 없다’(1938)는 각각 2013년과 2016년에 미국에서 복간되면서 재조명됐다고 하는데, 그래선지 클래식 추리소설의 잃어버린 보석이라는 출판사의 홍보카피는 더없이 적절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전 추리 잔혹코믹극이란 타이틀은 자칫 이 작품의 진가를 가릴 수도 있어 보이는데, 분명 잔혹함을 상쇄하는 유쾌한 유머”, “긴장과 웃음이 교차하는 풍자와 반전”, 그리고 주인공인 50대 여성 애들레이드 애덤스의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가 빛나는 작품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믹극으로 분류하기엔 곤란한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범행은 끔찍할 정도로 잔인하고, 용의자 취급을 받으며 호텔에 구금상태에 놓인 장기투숙자들 사이의 의심과 갈등은 어떤 진지한 미스터리보다도 무겁고 어두운 기운을 발산합니다.

 

리슐리외 호텔의 장기투숙자들은 결코 가난하거나 오갈 데 없는 인물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유롭게 삶을 즐기는 쪽이 더 많은데, 그런 그들이 연쇄살인에 휘말린 것도 모자라 용의자로 몰려 호텔에 구금된 상황은 밀실이나 무인도보다 더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이 안에 범인이 있다!”라는 두려움은 늘 고상하게 모여 앉아 조식과 커피를 즐기던 그들 사이를 하루아침에 불신과 의심으로 갈라놓습니다. 또 첫 희생자인 사립탐정을 누가, 왜 고용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연이어 잔혹하게 살해된 사체들이 발견되면서 경찰의 수사마저 장벽에 가로막히자 기약 없는 구금상태를 못 이긴 끝에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리슐리외 호텔에서 가장 비싼 스위트룸에 머무는 주인공 애들레이드 애덤스입니다. 50대 중반으로 큰 덩치에 관절염을 앓고 있는 그녀는 노점에서 음식을 사먹은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가정교육을 제대로받은 미국 남부 숙녀임을 자부하는 인물입니다. 천박하거나 요염함을 감추지 않는 젊은 여성에겐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고, 젠틀하지 않은 남성들에겐 특유의 까칠함을 조금도 숨기지 않습니다. 주인공이긴 하지만 애들레이드는 탐정처럼 범인 찾기에 앞장서는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상한 기억력과 추리력을 통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까칠함 속에 깃든 의외의(?) 모성애와 인간미를 발휘하여 엔딩을 훈훈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여성이기도 합니다.

 

범인의 정체는 몇 차례의 반전이 거듭된 끝에 밝혀질 정도로 베일에 싸여있고, 살인사건의 진상 역시 겉으로 보였던 것과 달리 예상 밖의 동기를 품고 있어서 마지막 장까지 쉽사리 엔딩을 예상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1930년대 미국 남부의 분위기라든가 그 무렵의 다양한 세태도 별미처럼 맛볼 수 있어서 고전 미스터리의 향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기대 이상의 정취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의미나 맥락이 모호한 문장들 때문에 상황이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작가 특유의 스타일일 수도 있고 번역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단어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서 읽지 않으면 두어 번은 되읽어야 할 대목들이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재미있게 읽고도 별 1개를 뺀 유일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잊혀진 미스터리 작가 시리즈 1입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도 당연히 나오겠지만 가능하다면 아니타 블랙몬의 나머지 한 작품도 꼭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 작품에서 애들레이드 애덤스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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