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의 다이어리
리처드 폴 에번스 지음, 이현숙 옮김 / 씨큐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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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처처는 로맨스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정작 본인은 제대로 된 로맨스를 맛본 적도 없고 가족의 사랑조차 결핍된 인물입니다. 어릴 적 형의 죽음 이후 우울증이 극심해진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는 쫓기듯 집을 떠났고, 제이콥 자신도 16살 때 영문도 모른 채 한밤중에 어머니에게 내쫓겼습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제이콥은 어머니의 부고와 함께 그녀가 살던 집을 상속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호더(hoader, 저장강박증 환자)였던 어머니가 남긴 산더미 같은 물건들을 치우면서 제이콥은 평생을 품어 온 의문 왜 자신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일까? - 을 떠올립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물건들을 치우던 제이콥에게 레이첼이란 여성이 찾아옵니다. 한때 이 집에서 살았던 자신의 생모를 찾으러 왔다는 레이첼에게 제이콥은 알 수 없는 연민과 동정, 그리고 그 이상의 감정을 품게 됩니다.

 

장르물 편식이 심한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로맨스 소설이지만 크리스마스 소설의 제왕”, “고전적인 로맨스의 탁월한 재해석이란 외신의 평가를 보니 왠지 제가 좋아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연상시키는 설정인 것 같아 관심이 생긴 작품입니다. 자신을 내쫓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회한에 잠기는 베스트셀러 작가 제이콥과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뒤 뒤늦게 자신의 생모를 찾아 나선 레이첼의 조합은 로맨스 소설의 정석에 가까운데다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도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 여러 모로 러브 액츄얼리와 닮은 작품이었습니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묶어준 건 레이첼의 생모 노엘이 남긴 다이어리입니다. 노엘은 피치 못할 이유로 임신한 상태에서 제이콥의 가족과 함께 지냈었고, 당시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절절하게 다이어리에 기록했던 것입니다. 노엘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제이콥의 아버지뿐입니다. 레이첼을 위해 오래전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만나야만 하는 제이콥과 생모를 만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빠진 레이첼은 서로 복잡한 심경으로 긴 여정에 나섭니다. 그 여정은 두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을 기회를 선사하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당혹스런 상황과 마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해피엔딩은 절대 쉽게 그들을 찾아오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수년 전에 저질렀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라.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인생의 이야기를 쓰도록 내버려뒀어.’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어요.” (p288)

 

제이콥과 레이첼의 이야기는 달달한 로맨스이자 가슴 아픈 상처 극복기이자 누군가에게 억눌리고 빼앗겼던 자신을 되찾는 성장소설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끝내 화해의 손을 내미는 전통적인 가족 서사가 가미돼서 자칫 뻔한 로맨스가 될 뻔한 이야기를 한결 두텁고 훈훈하게 만듭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다고 하는데, 잘 만들어진다면 러브 액츄얼리못잖은 따뜻한 로맨스가 돼줄 것 같습니다. 또 이 작품은 노엘 4부작의 첫 작품이라고 합니다. 전형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제이콥과 레이첼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확장될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그들은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를 넘어선 새로운 로맨스 스토리가 기대되는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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