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력사건이라곤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해변 소도시 하자키. 그곳에 자리한 목련빌라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자 빌라 주민들은 물론 경찰도 큰 충격을 받습니다. 형사반장 고마지와 신참 경사 히토쓰바시가 수사를 주도하는 가운데, 사건 당일 태풍이 들이친 데다 빌라 자체가 다소 외진 곳에 자리한 탓에 범인은 빌라 주민일 가능성이 높아졌고, 모두 열 채로 이뤄진 목련빌라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그러던 중 또 한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주민들은 두려운 가운데에도 범인이 누구인지 자신들만의 추리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1999년 작품으로 한국에선 2010년에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습니다. 당시엔 원제(ヴィラ・マグノリアの殺人)를 그대로 직역해서 사용했지만 2022년 개정판엔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이란 다소 엉뚱한 제목이 붙은 셈인데, 이어지는 시리즈들(‘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진달래 고서점의 사체’,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도 모두 마찬가지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지 미스터리를 싫어하진 않아도 딱히 찾아 읽는 취향은 아니지만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때문에 팬이 된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이라 늘 관심권에 두고 있었고, 이번에 마침 개정판이 나온 걸 계기로 순서대로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가 내린 코지 미스터리의 정의는 작은 동네를 무대로 하여 누가 범인인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폭력행위가 비교적 적고 뒷맛이 좋은 미스터리입니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에 관한 한 대부분 맞는 이야기지만 적어도 뒷맛이 좋은 미스터리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복수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드러난 진실은 독자에 따라 오히려 더 씁쓸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코지 미스터리의 틀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서 엽기적이거나 잔혹한 장르물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용의자가 너무 많다는 한 챕터의 제목대로 열 채로 이뤄진 목련빌라 주민들 대부분이 용의선상에 오르다 보니 인물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담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성들이 워낙 강해서 식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용의자 취급과 함께 경찰의 집요한 탐문에 시달리면서도 누가 범인일까?”라는 궁금증을 숨기지 않고 아마추어 탐정처럼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주민들 각자가 숨겨온 내밀한 비밀들이 연이어 폭로되면서 수사의 방향이 요동치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살이나 실종 등 비극적인 가족사를 지닌 자가 있는가 하면, 과거의 불륜이나 일그러진 애정관계가 폭로되는 경우도 있고, 파국 직전임이 드러나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사연은 어딘가 현재 벌어진 살인사건들과 미묘하게 맞닿아있어서 경찰 수사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개성 강한 주민들도 코지 미스터리의 한 축을 담당하지만, 수시로 웃음을 자아내는 건 다름 아닌 경찰 주인공들입니다. 서장을 호구처럼 대하는 만사태평 스타일의 형사반장 고마지와 그런 형사반장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신참 경사 히토쓰바시는 마치 만담을 나누듯 의견을 나누며 수사를 전개합니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두 사람의 초반 행보는 과연 이들이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드는데, 그래서인지 아마추어 탐정처럼 추리를 발전시키는 빌라 주민들에게 더 믿음이 가게 되는 상황들도 종종 등장합니다. 물론 고마지와 히토쓰바시가 주고받는 만담 속엔 나름 가시가 들어있고, 그것들은 막판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며 진실을 폭로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단순한 구도의 미스터리 같지만 다 읽은 뒤에 복기해보면 실은 무척 복잡하고 배배 꼬인 이야기임을 알게 됩니다. 주요 등장인물만 23명에, 빌라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삼은 데다 각자 지닌 사연들까지 부여한 점을 감안하면 이 모든 재료들을 어떻게 엮어낸 건지 신기할 정도인데, 이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통해 익숙해진 저조차도 와카타케 나나미의 설계 능력에 새삼 놀라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재료들과 복선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리수가 엿보이기도 했고, 고마지-히토쓰바시 콤비가 진실을 설명하는 막판 클라이맥스에선 보통사람은 깨닫기 힘든 비약이 동원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마지막 장까지 완주한 걸 보면 재미 면에선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못잖은 매력이 있는 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인 취향만 놓고 보면 와카타케 나나미는 그리 궁합이 잘 맞는 작가는 아닙니다. 이 작품까지 모두 다섯 편을 읽었지만 별 5개를 준 건 이별의 수법이 유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콕 찝어 설명할 수 없는 와카타케 나나미만의 묘한 마력 때문에 계속 찾아 읽게 되곤 하는데, ‘하자키 시리즈역시 확 끌리는 지점은 없더라도(심지어 코지 미스터리 계열인데도) 개정판으로 출간된 작품 모두 조만간 읽을 예정입니다. 고마지-히토쓰바시 콤비가 계속 활약해준다면, 또 목련빌라 주민들이 조연이나 카메오로 등장해준다면 훨씬 더 흥미진진한 책읽기가 돼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