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 세트 - 전2권 왼팔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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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의 소개글에 따르면 방진호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소설 분야에서 전설적 마니아층을 거느린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2018년이었는데, 엄청난 살상력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소심한 공처가이기도 한 살인청부업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방의강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죽어도 되는 아이를 통해서입니다. 이후 앞서 발표된 세 작품을 연이어 읽었고, 그 뒤론 신작 소식을 궁금해 하며 기다리게 될 정도로 홀딱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왼팔을 비롯하여 적잖은 작품이 있는 걸 알게 됐고, 이미 절판되어 중고서점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그를 전설적 마니아층을 거느린 작가로 만든) ‘왼팔을 읽게 됐습니다. 더 놀랐던 건 처음 접했을 때 생소한 이름이라 대략 데뷔 5년 안팎의 신인과 중견 사이라고 여겼던 방진호가 왼팔을 처음 출간한 게 2001년이란 점입니다. ‘한국이라는 무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액션 스릴러와 피와 뼈가 난무하는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구축해온 방진호의 저력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할까요?

 

왼팔은 독자에 따라 ‘SF 액션 스릴러로 규정할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1960년대부터 비밀리에 존재해온 국방부 산하의 기관은 각종 실험체를 통해 가공할 인간 살상병기를 만들어왔고, 거기엔 인간과 맹수의 유전자를 조합한 괴수, 좀비처럼 피를 필요로 하며 극강의 재생력까지 지닌 존재, 그리고 흥분이 임계점을 넘으면 온몸이 금속으로 변이하는 괴물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피조물들이 포함돼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슬로터라 불리는 그들은 중무장 시 1개 대대와 맞먹을 정도의 살상력을 지니고 있는데, ‘왼팔의 주인공 장도검은 그 슬로터 중에서도 최강의 능력을 지녔던 남자로, 터미네이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각종 무기가 장착된 기계 팔과 기계 눈을 가진 인물입니다.

 

기관과 그 산하의 연구소가 첨예하게 갈등을 벌이던 10년 전, 장도검은 목숨을 걸고 기관과 대결을 벌인 뒤 그곳을 뛰쳐나왔고, 지금은 연구소출신 주장서가 운영하는 레드아이라는 피자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거구의 몸집에 (기계 눈을 가리기 위해) 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데다 성대가 망가진 탓인지 스피커 소리와도 같은 음성을 내뱉는 등 겉으론 꽤나 위협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실제 그의 직업은 절반쯤은 피자집 종업원이고, 절반쯤은 심부름센터 수준의 의뢰를 받는 소소한 청부업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장도검 주위에선 끊임없이 대형 사건들이 터집니다. ‘기관이 파견한 슬로터가 장도검을 제거하기 위해 달려들기도 하고, 봉인해둔 실험체가 탈출하여 끔찍한 사건들을 일으킨 탓에 장도검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그때마다 방진호 특유의 잔혹한 액션 스릴러와 하드보일드 누아르가 펼쳐지고, 독자는 피와 살이 난무하는 장면들이 내뿜는 쾌감을 만끽하게 됩니다.

 

이런 살벌한 서사를 중화시켜주는 건 피자집 레드아이에서 벌어지는 막간극 같은 코미디입니다. 개인적으론 방의강 시리즈에서 맛봤던 영국식 블랙유머 혹은 촌철살인 같은 독설만큼 짜릿하진 않았지만, ‘기관과 얽힌 쓰라린 과거를 지녔거나 큰 사건에 휘말려 상처를 입었던 인물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며 소박한 코미디를 펼치는 장면들은 딱딱하게 굳을 정도로 힘이 들어갔던 두 어깨를 잠시나마 쉬게 해주는 맛깔난 양념입니다.

또 사방팔방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벌어지다 보니 경찰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서울 중앙서 강력범죄수사팀의 막내형사 이명희(남자형사입니다)는 신경질적인 팀장 주인환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출하면서도 날카로운 관찰력과 행동력을 갖춘데다 장도검 및 레드아이멤버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는 인물이라 등장할 때마다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냅니다.

 

1~2권 합쳐 9개의 챕터로 구성돼있고, 각 챕터마다 사건이 설정돼있어서 연작단편의 형식이긴 하지만 실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 장편이나 다름없습니다. 두 권을 합치면 748페이지의 적잖은 분량이지만 워낙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빨라서 하루 안에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저런 설정이 가능하다고?”라고 반문할 독자도 있겠지만, 그런 반감만 지워낸다면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오락성 강한 액션 스릴러+하드보일드 누아르라서 그쪽으로 관심 있는 독자라면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강렬한 여운과 함께 뒷이야기를 위한 대형 떡밥만 남긴 채 막을 내린 건 무척 아쉬웠지만, 찾아보니 3부작으로 출간된 적경왼팔의 후속작인 것 같아 오늘부터 부지런히 중고서점을 다시 뒤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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