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2008살인 방관자의 심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가 2021년 개정판이 나온 건데, 초판의 경우 각 수록작의 제목들을 원제와 무관하게 의역한데다, 원작과 달리 엉뚱한 작품을 표제작으로 내세운 바람에 개정판과 서로 다른 작품으로 오인할 여지가 많습니다.)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된 경찰소설의 대가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입니다. 비록 경찰(혹은 사법기관)이 등장하진 않지만 깊고 묵직한 미스터리를 만끽할 수 있는 수작입니다. 제목인 진상은 수록된 작품 중 한 편의 제목이지만 실은 모든 수록작들을 아우르는 화두이자 주제이기도 합니다. 다섯 작품 모두 과거와 현재에 걸쳐 벌어진 참혹하고 안타까운 비극을 다루고 있는데, 그 비극들은 하나같이 고의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교묘히 은폐된 진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늦게 드러난 그 진상은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 후련함이나 속 시원한 엔딩보다는 더욱 더 고통스러운 상처와 암울한 미래를 남겨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전과자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집주인에게 쫓겨나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선의 덕분에 집이라는 안식처를 얻게 되지만 숙명처럼 다시 찾아온 불행에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타인의 집), 전도유망한 공무원 자리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자체장 선거에 나섰지만 14년 전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18번 홀), 아들을 살해한 범인이 10년 만에 체포됐다는 소식에 오히려 회한과 비통함에 빠진 아버지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뒤 오히려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드는 이야기(진상), 정리해고 당한 뒤 불법 아르바이트로 위태로운 삶을 유지하던 한 남자가 방화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겪게 되는 아이러니하고도 서글픈 이야기(불면), 대학시절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체육부 합숙과정에서 친구를 잃은 남자들이 12년이 지나서야 마주치게 되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진실에 대한 이야기(꽃다발 바다) 등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동안 읽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들은 장편(‘64’, ‘그림자밟기’, ‘빛의 현관’, ‘사라진 이틀’, ‘클라이머즈 하이’)의 경우 사건과 서사는 무척 묵직하고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깊은 여운과 따뜻한 감동도 함께 남겨준 반면, 단편집(‘얼굴()’, ‘종신검시관’)은 경찰(혹은 사법기관 종사자)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다소 가볍고 읽기 편한 느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상은 일반인들이 주인공을 맡고 있긴 해도 각각 전과자, 살인 은폐자, 살인사건 유족, 정리해고자, 학폭 피해자 등 어두운 과거를 지닌 캐릭터들인데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수록 오히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 세례라도 받은 양 더욱 더 큰 고통을 겪게 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그의 어느 장편보다도 무겁고 스산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 중 뒷맛이 가장 씁쓸했다고나 할까요? 물론 미스터리의 재미와 긴장감은 그에 못잖게 대단하지만 말입니다.

 

개정판을 제외하고 한국에 출간된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은 모두 12편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4편 가운데 루팡의 소식3의 시효는 책장에 오랫동안 방치해놓은 상태인데, 게을러서라기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나중에 먹으려고 일부러 아껴둔, 그런 심정으로 방치해놓은 게 사실입니다.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만 요코야마 히데오의 신간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면 아까워서라도 기약 없이 계속 방치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그의 작품들이 한 편이라도 더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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