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샤일록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꽤 중요한 초반 설정이 포함된 서평입니다. 출판사가 인터넷 서점에 이미 공개한 내용이긴 하지만, 아무 정보 없이 책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이 서평은 나중에 읽으시기 바랍니다.)

 

은행 입사 후 3년간 엘리트 코스를 밟던 유키 신고는 섭외부로 발령을 받자 당황합니다. 채권 회수가 주 업무인 섭외부는 공공연히 은행 내 비주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직속상관이 된 야마가 과장은 샤일록’(‘베니스의 상인의 고리대금업자)이란 별명으로 얻을 정도로 채권 회수에 관한 한 무자비하고 냉혹하며 뛰어난 실적을 자랑하는 인물이라 유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됩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회수 활동을 하며 유키는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진짜 샤일록같은 인물이지만 야마가에겐 돈과 은행에 대한 그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으며, 그것은 엘리트 코스만 바라보던 유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마가와의 동행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야마가가 칼에 찔려 살해됐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탐정 미스터리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던 나카야마 시치리가 이번에는 금융이란 테마에 살인사건을 접목시킨 독특한 이야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은행원으로서 꽃길만 걷다가 채권 회수라는 비주류업무에 투입된 3년차 은행원 유키 신고와 샤일록혹은 채귀’(債鬼)로 불릴 정도로 가차 없이 채무자를 압박하여 채권을 회수하는 베테랑 은행원 야마가를 앞세워 금융계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거기에다 야마가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를 얹음으로써 매력적인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합니다.

 

하지만 금융 미스터리 못잖게 눈길을 끄는 건 진정한 은행원으로서 거듭 나는 유키의 성장 스토리입니다. 유키는 생전의 야마가로부터 그리 많은 노하우를 전수받진 못했지만 돈과 은행에 관한 그의 철학만큼은 제대로 물려받았고, 덕분에 그가 담당했던 채무자들과 직접 부딪히면서 채권 회수에 성공하는 것은 물론 그의 철학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됩니다.

, 초반에 의외의 죽음을 맞이하며 조기 퇴장하긴 하지만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거나 채귀라는 말에 화가 났나? 회수 담당자는 그런 말을 들어야 제 몫 하는 거다.”라는 명언을 남긴 야마가 역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였습니다.

 

주제와 캐릭터 모두 다소 모범적이고 묵직해 보이지만 사실 이야기의 톤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전형적인 스타일대로 무척 경쾌하고 스피디합니다. 유키가 상대하는 악성 채무자들은 히키코모리 주식투자자, 경영 마인드가 부족한 중소기업가, 무능한 2세 경영인, 사악한 종교단체 지도자, 선거에서 참패한 전직 의원, 땅 투기에 실패한 야쿠자 등인데, 그야말로 악성 채무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온갖 부도덕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재미있는 건 이들의 논리 가운데 무책임하게 돈을 빌려준 은행을 탓하는 대목이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유키 역시 악덕기업으로서의 은행의 실상에 여러 번 분노하곤 하는데, 부실한 심사와 부적절한 커넥션으로 불량채권을 빚어낸 당사자가 은행이지만, 필요에 따라 당장 그 불량채권들을 회수하라며 직원을 압박하는 것도 은행이고, 막상 직원이 거친 방법으로라도 채권을 회수하려 들면 회사 이미지와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주의하라며 경고를 날리는 것도 은행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야마가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는 그리 큰 비중으로 그려지진 않고, 범인 역시 초반부터 대략 두세 명 정도로 압축할 수 있어서 긴장감이 덜 하긴 하지만 나카야마 시치리는 반전의 제왕답게 막판에 살짝 한 번 꼬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경찰이 등장하긴 하지만 야마가의 죽음의 진실을 최종적으로 알아내는 것은 유키의 몫인데, 결과적으론 그 추리 역시 야마가로부터 배운 교훈에 힘입은 덕분입니다.

 

독하고 세고 반전의 힘이 강한 나카야마 시치리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심심하고 밋밋한 건 사실이지만, 돈과 은행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건 의외로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빚을 갚을 생각이 전혀 없는 악성 채무자들을 상대로 당근과 채찍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기어이 채권을 회수하고 마는 유키의 활약도 소소하긴 해도 적당한 통쾌함을 선사하는 재밋거리입니다.

 

사족으로... 나카야마 시치리는 인물 혹은 사건들을 서로 다른 작품에 교차 출연시키곤 합니다. 유키가 상대한 악성 채무자 가운데 사악한 종교단체 지도자가 있는데, 그 에피소드가 너무 낯익어서 예전에 써놓은 서평들을 뒤져보니 다시 비웃는 숙녀가운데 두 번째 챕터인 이노 덴젠과 연결된 에피소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다시 비웃는 숙녀를 읽은 독자라면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