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귀 1 - 각성편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진환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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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중학생 집단 피살사건 이후 악마의 산으로 불리며 인적이 끊겼던 후타바산(双葉山). 이곳에 자리 잡은 낡은 산장에 ‘TC 멤버스라는 친목단체 회원 8명이 합숙을 옵니다. 첫날 밤, 무서운 괴담놀이를 하던 중 누군가 과거 중학생들을 살해하고 종적을 감춘 후타바산의 살인귀를 언급하자 여대생 아카네는 알 수 없는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힙니다. 그 살인귀에 대한 이야기는 말해서도, 들어서도 안 될 것만 같았고, 왠지 그 순간 산장 주위가 기묘하고 강력한 힘에 의해 왜곡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산장 인근에서는 온몸이 끔찍하게 해체된 숱한 시체들이 발견됩니다. 하나둘씩 일행들이 종적을 감추는 가운데 아카네와 남은 일행들은 천둥과 번개 속에서 최악의 공포에 빠집니다.

 

잔혹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유명 작가, 노골적인 제목, 엽기적인 표지 등 모든 것이 호기심을 일으키는 살인귀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1989년에 발표한 살인귀1권 각성편, 2권 역습편으로 이뤄진 시리즈인데, 19금 딱지를 받을 정도로 잔혹한 묘사가 압도적입니다.

악마의 산으로 불리는 곳에 합숙을 온 친목단체 회원들이 정체불명의 살인귀에게 하나둘씩 살해당하는 장면은 인간의 상상력이 닿을 수 있는 한계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하고 상세하게 그려집니다. 찌르고, 베고, 잡아 뜯고, 부숴버리고, 터뜨리는 등 그야말로 지옥도 그 자체입니다. 잔혹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고백하자면 꿈에 나타날까 겁이 날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에 수시로 한기를 느꼈는데, 동시에 반복되는 살인귀의 무차별 만행에 문득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의 편집자 역시 처음 번역원고를 읽곤 이걸 왜 출판해야 하지?’라는 자괴감과 함께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라는 담당 편집자의 말에 출판을 묻어두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슬래셔 혹은 스플래터 호러의 극단을 치닫는 이 작품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독자의 호기심에 영합하려는 신인작가의 치기가 아니라 당시 이미 관 시리즈로 명성을 얻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인 만큼 단순히 피와 살과 뼈가 날아다니는 자극적인 오락물 이상의 미스터리로서의 미덕을 갖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스스로 약간의 장난기로 심어 놓은 미스터리적인 장치가 이 작품의 막판 반전을 장식하고 있는데, 꽤 흥미롭고 놀랍긴 해도 아야츠지 유키토나 시마다 소지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다소 황당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익숙한 저조차도 !!!”라는 냉소가 터져 나온 걸 보면 미스터리로서의 퀄리티는 고만고만해 보인다는 게 솔직한 평가입니다. 그래서인지 다 읽은 뒤에도 기괴하고 잔인한 슬래셔 호러의 인상이 더 강하게 남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재미있게 읽긴 했으니 애초 가졌던 호기심이 어느 정도 충족된 것 역시 사실인 셈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아야츠지 유키토가 이 작품을 쓴 계기 중 하나로 언급한 80년대 후반의 호러 사냥입니다. 떠들썩한 흉악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서 범인의 집에 잔혹 호러영화 비디오가 많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아야츠지 유키토가 발끈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책과 영화를 불문하고 호러물에 대한 마녀사냥이 들끓었는데 그에 대한 반발심이 이 작품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됐다는 얘깁니다. “아이들을 무균실에서 키우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금지해야 할 건 오히려 국회 중계방송!”이란 그의 일성은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발언입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떡밥은 후속작인 살인귀 2 : 역습편을 위한 것일 텐데,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보면 3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과연 후속작에서도 피와 살이 난무하는 슬래셔 호러가 이야기를 지배할지 아니면 좀더 고급스런 미스터리가 등장할지 궁금해지는데, 연이어 피비린내를 맡는 건 아무래도 거북한 일이라 일단 말랑말랑한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한 편쯤 읽은 뒤에 살인귀 2’를 읽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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