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씽맨
캐서린 라이언 하워드 지음, 안현주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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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퇴직 후 현재 쇼핑센터 보안요원으로 근무 중인 63살의 짐 도일은 어느 날 한 고객이 들고 있는 책 낫씽맨 : 살아남은 자의 진실 탐구를 보곤 충격에 빠집니다. 20여 년 전 아일랜드 코크 시티에서 연쇄강간살인을 저지른 뒤 유유히 사라져버린 미제 사건의 범인 낫씽맨이 바로 짐 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책을 쓴 사람이 그의 마지막 범행인 일가족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당시 12살 소녀 이브 블랙이란 점 때문에, 또 그녀가 책을 통해 선언한 나는 낫씽맨에게서 살아남은 그 여자애였다. 이제 나는 낫씽맨을 잡을 그 여자다.”라는 일성 때문에 짐은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혼란에 빠집니다.

 

이 작품에 대한 여러 매체의 리뷰 가운데 영리한 스릴러라는 문구가 여러 번 눈에 뜨입니다. 낫씽맨에게 가족을 잃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온 이브가 쓴 책 내용이 책속의 책으로 전개되고, 그 책을 읽으며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는 완전범죄 연쇄살인마 짐 도일의 심리적 동요가 교차로 전개되는데, 사실 과거의 사건들은 거의 기록수준으로 묘사돼서 큰 긴장감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고, 심신이 노쇠한 초라한 60대 짐 도일은 중후반부까지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독자를 들었다 놓았다 할 만한 사건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의 완급을 영리하게조절함으로써 심리스릴러와 연쇄살인스릴러의 미덕을 잘 살려놓았습니다.

 

범죄로 가족을 잃은 이브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가 피부에 와 닿게 그려지고,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 하나로 고통스런 글쓰기를 감행한 그녀의 절실함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툭툭 끊겨 불완전할 뿐인 본인의 기억과 함께 당시 피해자나 관련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방대한 수사자료에 의지하여 완성한 이브의 책은 대체로 기록 수준에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입장에서 쓰인 범죄 다큐멘터리로서의 탄탄함과 진정성이 잘 녹아있어서 흥미로우면서도 아프고 간절하게 읽힙니다.

 

그에 못잖게 독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소시오패스 연쇄살인마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시각인데,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재미있게도 이 작품의 제목인 낫씽맨입니다. 애초 짐은 물적 증거는 물론 지문이나 모발 등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아서 낫씽맨이란 별명을 얻었던 건데, 작가는 이브와 그녀의 파트너인 형사 에드의 입을 통해 오히려 잡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Nothing) 남자일 것이라는, 즉 연쇄살인마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악마적 존재 같은 게 아니라 주차 딱지 때문에 체포된 희대의 살인마 샘의 아들처럼 실은 별 것 아닌 초라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피력합니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듯 진짜 아무 것도 아닌 남자짐 도일의 과거와 현재, 또 이브의 책을 읽으면서 겪는 그의 공포가 디테일하게 그려집니다. 피해자인 이브는 물론 연쇄살인마 짐 도일에게까지 감정이입이 가능했던 건 아마도 이런 흥미로운 설정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이브가 쓴 책속의 책은 긴장감 넘치는 범죄기록이긴 하지만 너무 정직하고 디테일한데다 속도감도 조금 떨어졌고, 그걸 읽는 짐 도일의 심리묘사도 다소 장황하거나 간혹 동어반복처럼 읽힌 경우가 있어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읽는 도중 살짝 느슨함이 느껴진 건 사실이지만 밀도나 긴장감 등 전체적인 완성도는 무척 높은 작품입니다. 특히 막판에 연이어 터지는 중형급 반전들은 이 작품의 영리함을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목들이라 그 앞까지의 느슨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입니다.

올해 읽은 스릴러 가운데 꽤 기억에 남을 작품일 것 같은데, 캐서린 라이언 하워드가 낫씽맨이전에 발표한 세 작품 모두 나름 성공을 거뒀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면 조만간 그녀의 새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난해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문장들 속에 촘촘하게 설계된 그녀의 스릴러를 꼭 한 번은 다시 만나보고 싶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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