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주인공 사이키는 해외 동향을 분석하는 정보지 회사 소속의 르포라이터입니다. 7개 국어에 능통한 덕분에 1년에 100일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내며 독특한 문물을 소개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사하라 사막의 소금 교역로, 흑해 인근 오지에 자리 잡은 러시아 정교회 소속 여자수도원, 남미 아마존에 거주하는 50명 남짓한 소수민족, 그리고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동티모르 등 그의 취재 여정은 낭만적인 해외문물 소개와는 거리가 먼 힘들고 고통스러운 고행에 더 가깝습니다. 문제는 그 취재 여정 중에 사이키가 번번이 기이하고 끔찍한 사건들을 겪게 된다는 점입니다.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에는 연쇄살인, 실종, 폭력이 등장하는데, 이 사건들은 밀실트릭, 서술트릭, 정통 미스터리 트릭 등 다양한 코드들로 버무려집니다. 사이키는 르포라이터임에도 불구하고 꼼꼼하고 세심한 탐정 역할을 맡아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각 사건들의 진실을 파헤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수록작인 기도는 험난한 취재 여정 중 사이키의 무의식속에 차곡차곡 쌓여온 끔찍한 사건들의 여파가 예상치 못한 비극을 낳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독특한 작품입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여행 미스터리정도인데, 사이키의 여행은 어느 모로 보나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데다 종군기자의 그것에 가까운 고행으로 점철돼있고, 그 여정을 그린 문장들은 고급스런 순문학의 향기가 짙게 배어있어서 단순히 여행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것은 대단한 결례(?)처럼 여겨집니다. 오히려 대서사시 혹은 철학적인 기행문에 미스터리가 살짝 끼어든 느낌이랄까요?

물론 정통 트릭에서부터 서술트릭, 밀실트릭, 그리고 문장 곳곳에 정교하게 배치된 작가의 등 사이키가 겪은 살인사건이나 실종사건은 미스터리의 미덕에 충실한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누가? ?”라는 강렬한 궁금증을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독특함 외에는 별 매력을 못 느낀 작품이었습니다. 험지를 누비다가 끔찍한 사건들과 마주치는 주인공 사이키는 지나치게 객관적인 시선만 유지한 탓에 정작 그의 내면이나 감정을 도무지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르포라이터로서의 목표나 가치관도 모호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개성조차 무척이나 희미합니다. 특히 사이키에게 부여된 두 개의 중요한 캐릭터(여행자이자 이야기꾼)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은 점이 너무 아쉬웠는데, 요약하면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 사건들 가운데 일부는 억지스러운 해법을 통해 마무리되거나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엔딩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좀 과하게 해석하자면 사건 자체도,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도 우아하고 고급스런 순문학 스타일의 문장의 힘에 기대어 스리슬쩍 얼버무려진 느낌이었습니다.

 

외침과 기도는 일본에서 출간된(2010) 직후 대형 신인의 탄생!”이라는 격찬과 함께 꽤 이름 있는 미스터리 상들을 휩쓴 작품입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을 가졌던 건데, 깊이 있는 문장과 묵직한 서사는 분명 작가의 엄청난 강점이지만 그것들이 미스터리와 결합되는 과정은 기대 이하의 실망감만 남겼습니다. 검색해보니 이 대형 신인2010년 데뷔 이후 단 한 편의 단행본(‘リバーサイド・チルドレン’, 리버사이드 칠드런, 2013)과 두 편의 단편, 그리고 다섯 편의 앤솔로지에 참여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순문학으로도, 미스터리로도 만족스런 결과를 못낸 셈입니다.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쉬운 작가인데, 1983년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언젠가는 데뷔작을 능가하는 작품으로 독자를 찾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족이지만... 어쩌면 제가 진정한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독자라서 이런 서평을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 관심이 가는 독자라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꼭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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