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
미야기 아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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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연상시키는 제목이 눈길을 끌긴 했어도 딱히 제 취향은 아니라서 패스하려다가 작가 이름을 보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집어든 작품입니다. 에도시대 유곽에서 몸을 팔던 유녀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노골적인 성애 묘사와 함께 그려낸 화소도중을 너무 인상 깊게 읽었던 탓에 미야기 아야코의 다른 작품들이 한국에 소개되기를 계속 기다려왔기 때문입니다. 2017교열걸이 출간되긴 했지만 왠지 제가 기대했던 화소도중풍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한데다 무려 세 권으로 분권된 탓에 건너뛰었는데, ‘혼외 연애와 비슷한 것은 분량도 짧고 제목에서 풍기는 살짝 불온하면서도 매력적인 기운 탓에 주저없이 집어든 것입니다.

 

35살 동갑인 다섯 여자가 한 챕터씩 화자를 맡은 연작소설로, 이들의 공통점은 아직은 메이저급 아이돌의 백댄서에 머물고 있는 미소년 예비 아이돌 스노우화이트의 광팬이란 점입니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스노우화이트는 이들에게 있어 모든 불만을 다스려줄 치유제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에센스.”입니다. 단순히 열광적인 팬이나 를 넘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다섯 여자의 핸디캡 혹은 불만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고급맨션에 사는 유복한 전업주부 사쿠라이는 평생 공부, 미모, 능력, 행복에 있어 만년 3등에 머무는 자신의 삶을 한탄합니다. 반면 스무 살에 낳은 중학생 아들에게 거지같은 아줌마!”라고 불리는가 하면 수차례 다단계 사기를 당한 무기력한 남편을 둔 마시코는 늘 끝에서 3등인 삶을 살아온 여자입니다. 또 모든 방면에서 1등의 삶을 살아온 스미타니는 누구에게도 흥미를 갖지 못하는 기벽 탓에 지금껏 미혼 상태로 살며 오로지 스노우화이트의 멤버 지카 짱에게만 몰두하는 여자입니다. 그 외에 평범함을 강요받으며 자란 탓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삶을 살다가 스노우화이트에 푹 빠져 BL소설까지 탐독하게 된 야마다, 지독한 가난에 얼꽝 뚱보라는 유전자까지 물려받은 BL소설가 가타오카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미소년 아이돌에 빠진 35살 여자들의 가벼운 가십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제각각의 상처를 지닌 채 중년을 목전에 둔 여자들의 고민과 상처가 진하게 배어있는 작품입니다. 이들은 외모, 직업, 지위, 수입은 물론 남편, 아이, 시어머니 등 가족 때문에 느끼는 불만에 이르기까지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기 힘든 자신만의 고민을 지니고 있습니다.

35살이란 나이는 젊다고도, 중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나이이자 뭔가를 바꾸기도,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도 애매한 그야말로 낀 세대를 상징합니다. 딸 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 동생뻘이 대부분인 팬들 사이에 끼어 자신이 숭배하는 아이돌을 향해 꺅꺅 소리를 지르기도 민망한 나이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지친 삶 가운데 유일한 빛이자 희망인 스노우화이트의 미소년들을 통해 진심 어린 위안을 받고 현실을 잠시 망각할 수 있는 기쁨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노우화이트의 팬이라는 교집합 덕분에 알게 된 서로를 향해 시기와 질투, 연민과 동정을 발산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스노우화이트와의 혼외 연애를 통해 35살의 고민과 불만과 절망을 조금이나마 치유받는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만년 3사쿠라이가 내뱉은 한마디는 극단적이긴 해도 그녀들의 진심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남자에게 아이돌은 자위행위용일지도 모르지만, 여자에게 아이돌은 디톡스다.” (p33)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낀 작품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화소도중의 매력과 여운을 맛볼 수 있는 미야기 아야코의 작품이 출간되기를 여전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노골적이고 지독하면서도 짙은 애수와 회한이 담긴 이야기가 분명 한 작품쯤은 있을 것 같은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한 번은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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