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성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3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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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코너스톤에서 출간한 아르센 뤼팽 전집중 세 번째 작품인 기암성입니다. 1~2편인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를 읽고 5년 반 만이니 좀 과한 공백이 있었던 셈인데, 달리 해석하면 그만큼 먼저 읽은 두 편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셜록 홈즈의 경우 청소년 판으로 읽을 때부터 바로 팬이 됐지만, ‘괴도 루팡’(예전엔 이렇게 불렀습니다.)도둑이 주인공?”이라는 호기심과 기대에 비해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던 탓에 이렇게 뒤늦게야 전집으로 만나게 된 건데, 아무래도 제 성향은 역시 셜록 홈즈 쪽이라는 걸 재확인한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스브르 백작의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놓고 예심판사, 검사대리, 현지 경찰은 물론 파리에서 파견된 가니마르 경감마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17살 천재소년 이지도르 보트를레가 범행의 목적과 방법을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더구나 보트를레는 범인의 우두머리가 뤼팽이란 사실까지 적시하여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하지만 보트를레가 사건현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암호 쪽지는 이후 사건의 양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갑니다. 뤼팽을 꺾은 천재소년으로 칭송받게 된 보트를레는 뤼팽과의 끝장대결을 위해 암호 쪽지를 단서로 그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끝내 노르망디 해안에 자리한 기암성, 즉 뤼팽의 요새에 다다르게 됩니다.

 

기암성은 아르센 뤼팽을 안 읽은 독자라도 그 이름은 여러 차례 들어봤을 만큼 시리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계기로 뤼팽의 매력에 한껏 빠져들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진 게 사실인데,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엔 여러 가지 면에서 기대에 못 미친 아쉬움만 잔뜩 남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호흡만 빠르지 상황이나 감정을 전혀 이해시키지 못한 하이라이트 요약본같은 문장들이 내내 거슬렸습니다. 어떤 인물도 자신의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고, 중요한 상황 대부분은 앞뒤 맥락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과하게 압축, 요약돼있습니다.

당연히 사건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의 행보도 정신없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는데, 고교생인 보트를레가 애초 어떻게 사건현장에 나타날 수 있었던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가 굳이 뤼팽과의 전면전에 목숨을 건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주인공인 뤼팽은 이 작품에서 신출귀몰한 도둑으로서의 면모는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사랑을 쟁취하려는 순정남으로 그려지지만, 작품 내내 통 잘 보이지도 않고, 그나마 나타났다 하면 말도 안 되는 변장술만 부리고, 감정은 전부 제 입으로만 설명하고 있으니 도둑이든 순정남이든 어느 하나 매력적인 면모가 없었습니다.

 

기암성서평 대부분에서 지적되는 조연들의 문제도 굉장히 실망스러웠는데, 뤼팽의 숙적인 헐록 숌즈(코난도일의 동의를 못 얻은 탓에 셜록 홈즈가 이런 식으로 표기됩니다.)는 멍청한 헛발질만 하다가 말도 안 되는 악행까지 저질러서 이럴 거면 왜 나온 거야?”소리를 저절로 나오게 만들었고, 역시 뤼팽을 쫓는 단골 추격자 가니마르 경감은 늘 뒷북만 치거나 그 뒷북마저 아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해서 위기감은커녕 헛웃음만 나오게 만들고 있습니다.

 

뤼팽의 요새이자 은신처인 노르망디 해안의 기암성은 터무니없는 역사와 그 용도 때문에 오히려 현실감이라곤 조금도 없는 억지 그 자체로만 보였습니다. 그저 뤼팽을 신격화하기 위한 황당무계한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서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읽으면서도 조금도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애초 제스브르 백작의 저택에서 벌어진 사건이 어떤 과정을 겪어서 기암성에서의 마지막 대결까지 연결됐는지조차 애매모호할 따름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 그 중요한 대목들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제 기억력과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거나 아니면 이해도 공감도 얻지 못한 채 억지에 억지를 거듭하며 그저 빨리 달리기만 한 이야기탓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리즈 다음 작품은 기암성못잖게 유명한 ‘813’인데, 솔직히 그 작품을 언제쯤 읽게 될지는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분명 매력적인 괴도 뤼팽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 있을 텐데, 한 편이라도 그런 작품을 만난다면 스스로를 달래서라도 이 시리즈를 마스터하고 싶은 욕심이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리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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