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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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똑같은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기억이란 기제는 그것을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과장시켜서 혹은 왜곡시켜서 뇌리에 남겨두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난 그냥 웃자고 한 소리였어.”라고 기억하는 일을 누군가는 네가 내 인생을 망가뜨렸어.”라고 기억하는 건 설령 CCTV나 몰래카메라로 그 상황을 찍어놓았다고 해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네 편의 단편은 과거에 대한 상이한 기억들 또는 상이한 판단들로 인해 한없이, 또 불쾌하게 어긋나버리는 대화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 만에 재회한 인물들은 때론 반갑게, 때론 설렌 마음으로, 때론 초조한 기분으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이내 자신과 전혀 다른 과거를 기억하는 상대방으로 인해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기대했던 만남이 불쾌함으로 가득 찬 악몽으로 변질되는 걸 목격합니다.

오해나 기억의 오류 탓이라면 어떻게든 바로 잡을 수 있겠지만, 어긋난 대화를 초래한 과거는 이미 각자의 뇌리 속에서 전혀 다른 색깔로 고착돼버린 탓에 지울 수도, 덧칠을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걸.”이란 후회와 씁쓸함만 남는 이야기들이라 이야미스(イヤミス, 불쾌한 기분이 남는 미스터리)라 불리는 작품들보다 더 찜찜하고 지저분한(?) 뒤끝을 맛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이런 뒤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많은 설정이긴 합니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 치곤 꽤 야박한 평점을 줬는데, 소재나 주제 때문에 나름 긴장감이 넘치긴 해도 소설로서의 재미는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과거에 관한 어긋난 대화와 그로 인해 벌어진 불쾌한 상황자체가 전부라 딱히 기승전결이라 할 만한 굴곡도 별로 없는, 다소 밋밋한 나열식 이야기란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 지나치게 생생한 현실감도 소설적 재미를 떨어뜨린 원인일 수 있는데, 그래선지 소설이라기보다 자전 에세이나 회고록처럼 읽힌 것도 사실입니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팬에게는 필독서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읽기 전에 다른 독자들의 서평도 두루두루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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