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모노가따리 1
무라사키 시키부 지음, 이승웅 옮김 / 다산글방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 출간된 다른 번역본과 달리 이 작품은 제목, 작가 이름, 본문에 모두 경음(,,,)을 사용하고 있는데, 서평에서는 편의상 격음(,,,)으로 표기하겠습니다.)

 

언젠가 한번쯤은 읽고 싶었던 일본의 고전 겐지모노가타리’(原氏物語)를 말 그대로 맛보기정도로 만나봤습니다. 11세기 초, 그러니까 1,000년도 전에 지어진 작품으로 현대적 의미의 소설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지만 작가가 여성이란 사실, , 서민들 사이에 구전되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작품집일 거라는 (아무 근거 없는) 예상과 달리, 후궁의 아들로 태어난 히카루 겐지의 일대기, 그중에서도 수많은 여성들과의 로맨스를 그렸다는 점에 꽤나 놀랐습니다.

모두 354권으로 구성돼있다는데, 제가 읽은 다산글방의 겐지모노가따리 1’1부 중 8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겐지의 출생부터 그의 여성편력의 절정기에 이르는 시기를 그리고 있는데, 실제 문장에는 음란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가만히 행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란하다고 할 정도로 여러 여성들과 관계를 갖는 겐지의 행보가 그저 파격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태어난 후로 제(,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탓에 황자(皇子)가 될 수 없었던 겐지는 궁 밖에서 신하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의 첫사랑이자 진실한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인 제()가 어머니 대신 새로 들인 후궁입니다. ()는 일찍 세상을 떠난 후궁 기리쓰보(겐지의 어머니)를 잊지 못하다가 그녀와 꼭 닮은 후지쓰보를 후궁으로 맞이했는데, 겐지는 그 후지쓰보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할 사랑이란 걸 인정한 겐지는 고위관료의 딸과 결혼한 후로도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물론, 후지쓰보를 대신할 존재로 그녀의 조카인 10살 소녀 무라사키노우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키운 끝에 결혼에 이릅니다. (결혼 부분은 제가 읽은 1권에는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 당시의 도덕이나 예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겐지의 행보는 파격과 문란 그 자체입니다. 계층과 나이를 불문하고 겐지에게 있어 여성은 평가의 대상 또는 관계의 대상으로만 그려져서 당시(헤이안 시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사료라는 점 외에 이 작품이 문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졌다는 건지 잘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소설이며, 겐지와 관계를 갖는 여성들의 지난한 삶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는 세간의 평가를 보면, 아무래도 54권 중 겨우 8권만을 읽은 제가 함부로 예단해선 안 되는 의미와 가치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한글로 번역됐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독해의 수준이 필요합니다. 이름과 호칭이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고,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직역에 가깝게 번역돼있어서 문장 자체가 난해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기다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와카(和歌, 하이쿠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시가)를 통해 주고받는 은유적인 대목들도 많고, 그걸 설명하기 위한 각주도 그만큼 많아서 평범한 책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고전이다 보니 함부로 일반독자 눈높이에 맞춰 현대적인 문장으로 번역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먼저 내용을 이해한 뒤 원작에 가까운 번역문을 읽는다면 좀더 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만끽할 수 있을 거란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대로 이해도 못한 고전에 평점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인터넷 서점의 경우 서평 올리려면 평점 체크가 필수적이라) 매기긴 해야 해서 가장 무난한 별 4개를 줬는데, 큰 의미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으로선 2권까지 읽을 자신은 없는 게 솔직한 심정인데, 저 같은 독자를 위해서라도 쉽게 읽는 겐지모노가타리같은 번역작이 출간된다면 그저 고마운 일일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