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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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의 작은 섬 월금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도모코는 18세가 되자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양아버지 다이도지 긴조가 사는 도쿄 대저택으로 갈 준비를 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인 19년 전 절벽에서 사고로 추락사한 친부의 죽음에 늘 의문을 품어왔던 도모코는 섬을 떠나기 직전 그 당시 어머니가 봉인했던 방에서 살인의 흔적을 발견하곤 충격에 빠집니다.

한편, 도모코의 양부인 다이도지 긴조와 그의 후원자 앞으로 기묘한 협박편지가 날아듭니다. 19년 전 도모코 친부의 죽음의 비밀에 대한 암시와 함께 도모코가 도쿄에 와선 안 된다는, 그럴 경우 그녀 주변의 남자들이 참혹한 죽음에 이를 거라는 협박이 담겨있습니다.

긴조의 변호사를 통해 도모코의 수행을 의뢰받은 긴다이치 코스케가 분투하지만 이후 한 달에 걸쳐 (협박장 내용대로) 도모코 주변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1951~52년에 연재됐으니 태어난 지 꼭 70년이 된 작품이지만 여느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지금 읽어도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그 시대의 아날로그 정취와 함께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를 한껏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인데, 어수룩한 외모와 더벅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캐릭터는 이 시리즈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최고의 매력이자 미덕이기도 합니다.

 

여왕벌은 이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구도를 갖고 있는데, 사건이 한 공간에서 벌어지고 그 안에서 다양한 트릭이 난무한 게 이전 작품들의 특징이라면, ‘여왕벌은 외딴 섬 월금도, 옛 화족 저택이었던 고급 호텔, 가부키 극장, 도쿄의 대저택 등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독특한 스타일을 구사하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성격이나 범행 동기도 이전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 패전 직후를 배경으로 전통과 근대성의 충돌, 그리고 인습과 미신으로 불거져 나오는 불쾌한 살의라는 점에서 벗어나 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에 충실한 편이라 이 시리즈의 팬 입장에선 색다른 맛과 함께 좀더 팽팽하고 긴장감 넘치며 농밀한 미스터리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절세미인을 둘러싼 2대에 걸친 집요한 욕망과 저주를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필체로 그린 작품이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은 여왕벌의 특징을 잘 압축해놓은 한 줄 카피라는 생각입니다.

 

도모코를 차지하려는 정혼자 후보들이 살해되고, 도모코 본인에게도 월금도로 돌아가라는 협박장이 날아드는 가운데 긴다이치 코스케마저 범인에게 살해당할 위협에 빠지면서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치닫는데, 이 모든 사건의 진실이 결국 19년 전 도모코 친부의 죽음의 비밀과 연관돼있다는 설정 덕분에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타듯 전개됩니다. 또 막판에 공개되는 결정적 반전은 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크고 깊은 비극을 자아낼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반전의 충격이상의 여운을 남깁니다.

 

지금까지 읽은 어느 작품보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도 매력적으로 그려졌는데, 단순히 명탐정의 역할을 넘어 사건 뒤에 도사린 비극성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지켜보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참극의 중심에 내던져진 도모코와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애잔할 정도로 공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 세상에 공개된 사실과는 다른, 그만이 포착한 진실을 그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모습 역시 다시 한 번 그에게 푹 빠지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줬는데, 뭐랄까, 한 뼘 이상 훅 성숙한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난 듯한, 그런 훈훈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트릭들은 다소 쉬워 보이기도 하고 그 구조 역시 특별히 정교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공감도 되고 납득하기도 쉬웠는데, 이 작품의 매력이 명탐정의 트릭 깨기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낳은 참혹한 비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쉽고 단순한 트릭이 더 잘 어울려 보이기 때문입니다. ‘본격의 맛을 기대한 독자들에겐 다소 아쉬운 대목이긴 하지만, 이야기의 힘과 재미 면에선 그 어떤 작품에 못잖은 명품이니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만난 적 없는 독자라면 이 작품을 통해 시리즈에 입문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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