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쉬운 미래
우라가 카즈히로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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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 해의 베스트 11’으로 꼽았던 수면의 감옥의 우라가 카즈히로 작품입니다.

그 이후로 신간 소식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는데

띠지 앞면에 적힌 우라가 카즈히로 유작이란 문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20202월에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이 작품까지 단 두 편만 소개돼서 생소하게 여길 독자들이 훨씬 많겠지만

개인적으론 너무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유명 만화가 진나이 류지는 어느 날 갑자기 약혼녀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패닉에 빠집니다.

어마어마한 팬을 보유하고 있던 연재만화의 여주인공을 허망하게 죽이는가 하면

더 이상 자신의 삶은 물론 인생의 전부였던 만화에 대해 애정 하나 안 남을 정도에 이릅니다.

그런 그에게 당신의 약혼녀는 이틀 후에 죽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가 전달됩니다.

문제는 그 편지의 발신날짜가 약혼녀가 죽기 이틀 전이란 점입니다.

즉 누군가 약혼녀의 죽음을 예지했단 건데, 발신자를 만난 진나이는 더 큰 충격에 빠집니다.

한편, 진나이의 광팬인 한 남자는 숭배하던 여주인공을 함부로 죽인 진나이를 증오한 끝에

그를 죽이겠다는 각오와 함께 차근차근 살인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원제는 こわれもの’(, ), 즉 파손된 물건, 파손되기 쉬운 물건이란 뜻인데

깨지기 쉬운 미래는 내용과 주제를 잘 담아낸 번역 제목이란 생각입니다.

현재는 물론 모든 것이 밝고 환하던 진나이의 미래는 약혼녀의 죽음과 함께 깨지고 말았고

그녀의 죽음을 예지했던 자는 미래라는 게 얼마나 쉽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진나이에게 재차 확인시켜 줌으로써 그에게서 미래의 의미를 모두 빼앗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실제로 진나이의 미래를 박살내고 빼앗으려는 한 광팬의 살의가 구체화될수록

독자는 그에게 과연 미래라는 게 남아있을까, 라는 불안한 의문에 휩싸이게 됩니다.

 

가까이 있는 자의 죽음을 예지하는 능력자가 등장하지만 SF나 판타지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예지력 자체가 거듭되는 반전의 결정적 재료로 이용되는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수면의 감옥이 이중 구조, 클로즈드 서클, 교환살인 등 다양한 미스터리 코드가 뒤섞였다면

깨지기 쉬운 미래는 예지력과 미스터리가 정교하게 믹스돼 반전의 맛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실은 작가는 초중반까지 비교적 쉬운 힌트를 교묘하게 잘 위장해놓았는데

다소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목에 주목하다 보면 의외로 빠른 해답을 얻을 수도 있지만,

수면의 감옥에서도 그랬듯이 결국 독자는 마지막 한 방을 맞고 나서야

그 힌트들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되는 미스터리의 쾌감을 만끽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약혼녀가 갑자기 죽었다고 그녀를 투영했던 인기 여주인공을 갑자기 죽인 진나이도,

숭배하던 여주인공을 죽인 만화가를 직접 살해하겠다고 나선 오타쿠 기질의 광팬도

실은 다소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어서 100% 공감하긴 어려웠지만

그 점 외에는 그다지 길지 않은 분량을 순식간에 완주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신작을 만나볼 수 없게 됐지만

한국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그의 대표작 안도 나오키 시리즈를 통해서라도

우라가 카즈히로의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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